*월간조선 10월호 사진입수/최인규-3.15 부정선거 주도/곽영주-시
위대에 발포 명령/이정재-폭력배 동원 야당탄압/조용수-혁신계 민족일
보 사장/임화수-영화계 쥐고흔든 깡패 영화인 18일 발매되기
시작한 월간조선 10월호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후 혁명재판
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최인규(3.15 선거 당시 내무부장관)씨 등
사형수 8인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을 입수, 공개했다.
5.16직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사형수의 교수형집행사진이 공개되기
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진은 3.15 부정선거관련자 최인규 자유당정권
내무부장관, 경무대앞 시위대에 대한 발포사건 관련자 곽영주 경무대
경무관, 정치깡패 두목 이정재, 4.18 고대생 습격사건관련자 임화수
, 좌익사건관련자 조용수 당시 민족일보 사장, 최백근 사회당간부의 교
수형 직전 최후진술하는 모습과 교수직후 검진을 위해 사체가 끌어올려지
는 모습 등을 찍은 것들이다. 또 서울 동양극장앞에서 부정선거를 규탄
하는 시위학생을 때려 숨지게 한 폭력배 신정식과 사회기강 확립차원에서
엄벌한 밀수범 한필국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장면도 있다. 자유당말
기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1960년 3월15일 실시된 정-부통령선거에서
이승만 박사의 러닝메이트였던 이기붕 국회부의장의 당선을 위해 조직적
인 부정을 감행한 혐의로 4.19혁명 후 민주당정권하 검찰에 의해 기
소됐다가 5.16이 나면서 혁명재판소 로 넘겨져 심판을 받았다. 사
실상의 지휘자 이기붕 국회의장이 자살한 뒤여서 부정선거책임자로서 여론
의 표적이 됐다. 곽영주 경무대경무관은 1956년이래 이승만 대통령
의 경호책임자로 부부통령 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권세를 부리면서
정치깡패의 비호자로 지목받던 인물. 4.19당일 경무대앞 시위대에
대해 경찰발포를 명령한 혐의로 극형을 받았다. 정치깡패 두목 이정재
는 5.16세력이 좌익인사와 함께 엄벌대상 최우선순위로 꼽았던 인물이
었다. 이기붕 국회의장의 총애와 곽영주 경무대경무관의 비호아래 유지광
-최창수 등 폭력배를 동원, 야당인사를 탄압하고 선거와 정치에 개입했
던 자유당 비리정치의 부산물이었다. 이정재는 5.16후 제정된 특정범
죄처벌에 관한 특별법위반혐의로 사형에 처해졌다. 임화수 역시 폭력배출
신으로 정치강패 이정재와 곽영주 경무대 경무관의 지원을 받아 한국영화
계를 좌지우지했던 깡패영화인 . 임화수는 1961년 4월18일 부정
선거규탄시위를 마치고 귀교하는 고려대생 10여명을 부하폭력배를 동원,
무차별 난타하도록 한 혐의로 심판을 받았다. 조용수 민족일보사장은
좌익인사척결을 우선시했던 5.16세력에 의해 상징적으로 희생된 인물
. 남북교류와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혁신계신문의 하나였던 민족일보를
혁명검찰 은 특수반국가행위를 하는 단체로 규정하고, 책임자인 조용수사
장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일본 명치대학을 졸업하고 60년 7.29총선
에서 혁신계 정당 사회대중당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던 조사장은 사형당시
32세의 청년이었다. 혁신계정당 사회당의 최백근 조직-의안부장 역시
특수반국가행위 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혁명검찰 의 조사결과, 19
48년 남북협상때 김구 선생의 북행을 유도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
지기도 했다. 8인의 사형수중 이정재-신정식이 가장먼저 1961년 1
0월19일 서대문형무소내 사형집행장에서 교수됐으며 같은해 12월21일
에는 최인규 곽영주 임화수 조용수 최백근 등 5명이 같은 장소에서 형
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밀수범 한필국은 이듬해 4월26일 사형이 집행
됐다. 독자의 제보로 입수한 이들 사진은 하나의 사진첩에 수록돼 있
었다. 사진 뒤쪽에 CIA라는 영문자와 단기 연월일을 표시하는 숫자를
새긴 둥근 고무인이 찍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서대문형무소에 상주
하고 있던 중앙정보부 요원이 찍은 것으로 보인다. 김연극 기자
입력 1995.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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