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2시(현지시각) 이스라엘 전역엔 2분동안 애도의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어 성도 예루살렘의 헤르츨 국립묘지에서 고이츠하크
라빈총리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예루살렘은 라빈총리가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다.

이날 장례식엔 중동 평화협상을 탄생시킨 빌 미대통령을 비
롯 부트 로스 부트로스 갈리 사무총장, 빅토르 체르노르미르딘 러시
아 총리, 존 메이저 영국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등 세계 정상
7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후세인 국왕과 무바라크 대통
령이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해 관심을 끌었다.
이들중에는 지미 카터와 조지 부시 전미대통령도 고인의 명복을 빌었으
며 이스라엘과 정식 외교관계가 없는 카타르와 오만의 조문 사절단도 포
함됐다 .장례식에 참석한 외국귀빈은 줄잡아 2천명정도.

후세인국왕은 『42년전 바로 이자리에서 할아버지의 암살을 목격했
다』면서 『당시의 참담한 심정으로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
다.그는 이어 『나의 친구 라빈총리가 이룩하려했던 중동평화는 어떠한
역경도 극복할 것』이라면서 중동평화협상이 예정대로 진행될 것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유태교 전통 모자 키푸를 쓴 대통령도 추도사에서 『
서명식 직전 넥타이를 잘못 맸다고 고쳐준 게 불과 6주전인데 이렇게
차가운 시신으 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통탄하면
서 『라빈총리는 평화의 순교자』라고 말했다.

손녀딸 노아 벤 아르치양도 『모두들 전쟁의 악몽에 시달리지만
나는 매일 아침 악몽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통곡했다.

장례식은 세계정상들이 한줌의 흙을 관에 쏟아붓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눈물이 메마른듯했던 레아여사도 마지막 순간 울음을 참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다.

이에앞서 이스라엘 정부는 5일과 6일 이틀간을 라빈 총리에 대한
국민 애도일로 선포했다.
이기간동안 모든 정부기관은 반기를 게양하고 유흥업소가 문을 닫으며
전국의 각급 학교도 하룻동안 임시 휴업했다.

정치적 암살을 처음 겪은 이스라엘인들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그의 유해가 안치됐던 이스라엘 국회의사당 앞에는 1백만여명이 몰려 흐
느낄정도.
한 TV기자는 목멘 소리로 『라빈이 다른 나라 사람도 아닌 바로 유태인의
손에 숨졌다』며 비통해했다.

이츠하크 라빈 총리가 암살된 것은 4일 저녁이었다.『아침해를 맞으
며/평화 의 노래를 부릅시다/…평화의 날을 기다리지만 말고/그날을 향
해 나아갑시 다.』 텔아비브 시청 앞 「이스라엘의 왕」 광장에서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는 군중 10만명과 함께 이 노래를 불렀다.
수줍은 성격의 그가 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은 전에 없는 일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가 마침내 도래했다』는 요지의 연설을 마
치고 그는 대기중이던 리무진 쪽으로 걸어갔다.
그 순간 세발의 총성이 울렸고 라빈 은 쓰러졌다.그는 평화를 거의 성취
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 있었던 듯했다.
최근 『라빈 총리를 암살하겠다』는 극우 분자들의 발언이 여러차례 있었
음에도 불구하고 『방탄 조끼를 착용하라』는 비밀경호대 신베트의 권유를
물리쳤다.
신베트 측에서도 범인 아미르를 이날 집회에 참석한 한 귀빈의 운 전기
사로 오인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이날 사건은 첫 이스라엘 지도자 암살이라는 불행한 기록을 낳은데다,
테러 예방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신베트의 명성에도 치명타를 입혔다
.

이스라엘과 대립관계에 있는 의 아사드 대통령은 『라빈 총리
의 죽음 은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말했으나 리비아 이라크 등
회교국들은 라빈의 죽음을 「시온주의자의 사망」이라며 환호했다.

팔레스타인 과격단체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아라파트 의장
도 라빈 총리처럼 곧 암살될 것이라고 경고, 중동평화에 어두운 그림자
를 던져주고 있다.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은 이스라엘 과격분자들의 공격을 우려해 라
빈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