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한것으로 보이는 론 브라운
미상무장관(54)은 지난 92년 대선때 빌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
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흑인 법률가.
지난 89년 흑인으로는 최초로 민주당 의장을 역임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으로 흑인이라는 약점을 극복한 브라운 장관은 93년 1월 상무장관에
임명된 뒤 전세계를 누비며 상무장관직을 슈퍼 세일즈맨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장관 취임 이후 공화당 정치공세의 주요 목표가 돼 뇌물수
수설에 휘말리는가 하면 현재까지도 특별검사로부터 개인적인 축재과정에
대한 조사를 받는 등 끊임없는 구설수에 시달리고 있었다.
또한 봅 돌 공화당 상원 원내총무를 비롯한 공화당 의원들의 상무
부 폐지 움직임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지난 41년 8월 워싱턴에서 태어난 브라운 장관은 듀크 앨링턴과 같
은 재스스타들이 드나들던 할렘가에 있는 아버지 소유의 한 호텔에
서 유년기를 보냈으며 의 미들베리 대학에서 수학했다.
브라운 장관은 미들베리 대학 재학시절 자신의 반에서 유일한 흑인
이었으며 한국과 독일에서 근무한 4년간의 군복부기간 동안 자신의 부대
에서 유일한 흑인장교이기도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야간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브라운 장관은 80년
정계에 입문,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의 대통령선거운동원에 합류해 정
치경험을 쌓고난 뒤 워싱턴의 로비스트로 활약했다.
브라운 장관은 이후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나선 제시 잭슨과 마이클
듀카키스를 지원한데 이어 89년에는 흑인으로는 최초로 민주당 의장에 선
출되는 영광을 맛보기도 했다.
브라운 장관은 지난 92년 대선때에도 민주당을 거대정부와 높은 세
금을 추진하고 있는 정당으로 몰아부치는 공화당의 공세를 새로운 중도
파의 이미지 창출로 극복하는 등 빌 대통령의 당선에 큰 기여를
했다.
브라운 장관은 지역 라디오방송국에 근무하는 부인 앨마 및 마이클
과 트레이시 등 2자녀와 함께 워싱턴에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