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6시 굉음속 "살려달라" 신음소리만 ##
## 장대비-칠흑하늘...구조 못한채 발동동 ##.
【중부전선=문갑식-방성수-이동혁기자】이틀동안 내린 4백여㎜의 집중
호우로 60여명의 국군장병이 매몰된 철원군 근남면 마현리 주둔
육군 제15사단 38연대는 사고발생 10여시간이 지난 27일 오후 4시까지도
통신이 완전두절됐다. 국방부 상황실 무전기에 찌찌거리는 잡음을 타고
가늘게 흘러나오는 15사단과 2군단 상황실 요원들의 목소리는 『모든 것
이 엉망…, 아직 정확한 상황을 알수없다』는 말뿐이었다. 이날 마현리
일대에서만 하루만에 공병부대원 26명, 15사단 38연대 수송부대원 10명,
보병중대 17명 등 57명이 매몰돼 그중 16명이 사망하고 4명의 실종됐으
며 36명이 부상했다.
공병부대원 26명이 곤히 잠자고 있던 2동의 철제조립식 아이솔막사는
이날 새벽 6시쯤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암흑속에 빠져들었다. 부
대원들이 누워있던 막사는 대성산(1천1백74m)중턱의 속칭 「말고개」 해발
8백여m고지로 산비탈과의 거리는 채 50m도 되지않았다. 평소 튼튼하기만
했던 대성산은 그러나 이틀동안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퍼부은 호우를 견
디지 못하고 슬금슬금 무너지기 시작, 단숨에 잠자던 장병들의 안식처를
덮쳤다.
구조된 한 병사는 『느닷없는 굉음을 듣는 순간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 오려고 했으나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기만 했다』며
『곳곳에서 「탈출, 탈출」하는 목소리가 들렸고 「살려달라」는 신음소리가
뒤엉켜 아수라장이었다』고 몸서리쳤다. 일부를 제외한 병사 대부분은 속
수무책 막사안으로 밀려드는 진흙더미에 눌려 구조의 손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고가 나자 인근에서 근무중이던 초병은 긴급무전을 타전, 15사단
사령부와 2군단에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각 15사단 사령
부에는 근남면 일대 수송부대원 10명, 보병중대원 17명, GOP(일반전초)
소초원 4명도 매몰됐다는 비보가 동시에 날아들었다. 곧 「뚜」하는 사이
렌소리와 함께인근 부대로 무전교신이 이뤄지고, 각 부대가 보유한 포크
레인, 불도저, 덤프트럭 등 구조장비가 징발됐다.
구조에 나선 한 지휘관은 사고현장의 모습을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참혹했다』고 말했다. 막사는 마치 둔기로 얻어맞은 것처럼 보기 흉하게
찌그러져있었고, 뻘건 진흙더미 사이로는 병사들의 군화와 운동화, 군복
과 모포등이 널려 사고 당시의 참상을 짐작케했다. 진흙더미 속에서는
가늘게 「살려달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곳곳에서 더구나 사고직후부터
비는 더욱 거세졌고 하늘도 검은 장막을 두른듯 컴컴해 한치앞을 내다볼
수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병사들은 발만 동동 구를뿐 본격적인 구조작업
은 계속 늦어졌다. 게다가 통신마저 두절된 최악의 상황이었다.
10시간여의 필사적인 구조끝에 매몰된 아이솔 막사가 치워지자 하나
둘 매몰된 병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사망자들의 시신은 막
사와 진흙이 내려덮친 충격으로 인해 신원 확인조차 불가능했다. 국방부
는 이날 오후 4시까지 사망자들의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부상을 당한 18명은 사망자들의 시신과 함께 부대옆 들판에 누워 의
무병들의 간호를 받았으나 교통이 완전두절돼 후방으로 수송될 형편이
못됐다. 국방부측은 『마현리 일대에서만 4개 부대가 매몰당하는 사고가
발생한데다 교통마저 끊겨 최악의 상황이 계속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