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엔 실제 활동했던 일본감독 이름뿐...영화도 대중흥행용 ##.

"민족영화 '아리랑'(1926년작) 연출자는 나운규가 아니라 일본 영화
감독 스모리 슈이치이다", "아리랑은 항일 영화라기보다는 잘 만든 흥행
영화다.".

우리 영화 선구자로 추앙받는 춘사 나운규(1902∼1937)와 그의 작품
에 대해 조희문 상명대교수(영화학 박사)가 펴는 충격적 주장이다. 조교
수는 이번주 출간할 저서 '나운규'(한길사간)에서 '나운규 신화'의 전면
재평가를 시도했다. 그의 주장은 뜨거운 논란 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조교수는 당시 모든 '아리랑' 광고나 관련 기사가 '감독 스모리 슈이
치'로 표기하고 있음을 첫째 근거로 내세운다. 개봉때인 1926년 10월1일
자 조선일보, 3일자 매일신보부터 이 일본인 감독 이름을 내세웠다. 이
때문에 80년대엔 아리랑 연출자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초 발견된 나운규의 글 '아리랑을 만들 때'('조선영화'
1936년 11월호)가 "메가폰을 잡고…"라는 표현을 쓰며 연출-주연했음을
밝히면서 논란은 종지부를 찍는 듯했다. 안종화씨는 63년 저서 '한국영
화 측면비사'에서 '일제 검열을 피하려 일본인 이름을 대신 내세운것'이
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 교수는 이번 저서에서 몇가지 근거를 새롭게 제시하고 있
다. 26년12월16일 일본 영화잡지 키네마준보에 실린 컬러광고, 26년부터
36년까지 '아리랑'이 14차례나 재상영되면서 게재된 신문 광고 등 새 자
료들도 일관되게 '스모리 슈이치 감독'으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스모리 슈이치'라는 인물이 연출 능력이 있는지 의심돼 왔지만 원로
배우 윤봉춘씨 글 '나의 고백적 자전'(71∼72년 주간경향)에서는 슈이치
가 '영화 감독으로 활동했던 인물'이라는 부분도 드러났다. 이를 종합해
볼 때 나운규는 '아리랑'의 주연과 각색을 맡았을뿐 연출자는 슈이치로
봐야 옳다고 조교수는 주장한다.

그는 나운규를 민족운동가로, '아리랑'을 항일민족 영화로 보는 시각
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그 근거로 ▲나운규 스스로 '조선 영화들은 따분
하다. 하품이 난다. 그래서 외국영화 흉내를 낸 아리랑이 당시 조선관객
에게 맞았다'('아리랑을 만들 때'중)고 밝혔고 ▲1942년 일본 홋카이도
탄광회사가 주최한 '조선인 노무자 위안 프로그램'에서조차 '아리랑'이
'위안용 영화'로 공식 상영됐으며▲일제 당국이 '아리랑' 내용을 문제삼
아 제재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을 내세운다.

그는 "당시 관객들이 '아리랑'에 열광한 것도 민족의식을 일깨워서라
기보다는 사극 영화만을 대하다 농촌현실, 지배계급에 대한 공격을 사실
적으로 담아낸 '아리랑'에서 보는 재미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
했다.

조교수는 "그렇다 해도 나운규가 우리 영화계 최초의 걸출한 스타였
다는 사실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민
족영화 연출자로서가 아니라 초기 영화산업이 대중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데 기여한 개척자라는 점에서 내려져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