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과∼꽃이 피이었습니다.…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사∼알
았죠∼." 가을 하면 떠오르는 꽃은 코스모스. 그러나 전에는 우리 가을
을 대표하는 꽃은 과꽃이었다. 누나 냄새 물씬 나는 과꽃은 한국이 원
산이면서도 세계로 퍼져나간 대표적인 꽃이다. 그러나 이제 과꽃은 시
중에 꽃꽂이용으로 일부에서 재배되고 있을 뿐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쪽빛 하늘'의 쪽. 우리 조상들은 옛부터 밭 귀퉁이에 쪽을 심고 약
용으로 쓰거나 푸르디 푸른 빛을 옷감에 들여 멋을 내기도 했다. 그러
나 그 쪽도 이제 일본에서 도입된 쪽에 자리를 거의 내줘 자생 쪽은 구
경하기 어렵게 됐다. 아니, 쪽이 뭔지 아는 이가 별로 없을 정도가 됐
다. 토종이 사라져가고 있다. 작물뿐 아니라 가축 곤충 야생동물 물고
기 등 무수한 우리의 생물 자원이 무분별한 개발과 무관심 때문에 없어
지고 있다.

● 수출 1위 미국 콩, 실은 한국콩 개량종.

우리나라가 원산지이면서 세계로 퍼져나간 대표적 작물로는 먼저 콩
을 들수 있다. 콩 수출 세계 1위인 미국 콩은 한국 콩을 개량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선 점차 푸대접을 받고 있다. 농촌진흥청 농업과학
기술원 유전자원과 안완식 책임연구원이 경북 상주군과 금릉군, 전남
고창군 지역을 대상으로 85년과 93년 두 차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주지역에서 85년 23종이었던 콩 종자 종류가 8년 후인 93년에는 5종
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무려 77%가 사라진 것이다. 금릉군과 고
창군에서도 거의 같은 결과가 나왔다. 콩뿐만이 아니다. 녹두 팥 수수
기장 등 주요 토종 작물들도 급격히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나라 토종 자원의 황폐화 현상은 종자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종자
수를 외국과 비교하면 금세 알수 있다. 현재 농진청 종자은행에 보관되
어있는 토종 종자는 2백11종 2만2천5백54점. 그러나 여기엔 아직 등록
돼 있지 않은 토종 작물이나 식물이 적지 않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세
계주요 식물의 유전 자원을 확보하고 있는데, 공식적으로는 8천6백여종
에 44만4천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한다. 그 중 한국 토종 식물은 남한
것만해도 6천여점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2천5백여종에 33만여점, 일본
은 1천여종 26만여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공식적으로
밝힐수 없는 경로로 거둬들인 품종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실
제로는 훨씬 많은 종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전문가들
의 견해이다.

토종 작물이 사라지는 것은 무엇보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벼나 보리 등 우리 토종 작물은 병에 대한 저항성이나 주변 악조건에
견디는 강인함이 강점이다. 그러나 수확량이 적은 것이 단점이다. 그래
서 70년대부터 불기 시작한 녹색혁명 속에서 도입된 개량종에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재래종은 당장의 경제성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 작물을 개량
할 때원품종이 없다면 개량종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재래종에는 각각 특장이 있어 개량 품종을 만들어낼 때 그 특장을 결합
하여 만든다. 만약 벼가 특정한 병충해 때문에 소멸 위기를 맞았을 경
우, 재래종 종자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새로운 품종을 만들 수 없게 된
다.

농촌진흥청의 안완식 연구원은 "우리 토종 작물 중에는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작물이 많다"며 "우리 것을 가지고 있어야 외국종이
필요할 때 교환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생 식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것으로 추정
되는 식물은 약 4천여종. 그 가운데 약 10%인 4백종이 희귀 내지 절멸
위기에 놓여 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 없어진 식물이 외국에서 인기
정원수 등으로 각광받는 경우마저 생겨나고 있다. 털개회나무의 경우
미국원예 시장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고 중나리는 수백종의 백합을
만들어내는 데 기본종으로 쓰인다. 외래종에게 서식지를 빼앗겨 사라지
는 경우도 있다. 이미 1876년 개항 이전에 들어온 들피, 강피 등은 말
할 것도 없고 1900년대 이후들어와 강한 번식력으로 현재 우리산을 뒤
덮고있는 아카시아나무 달맞이꽃류 서양민들레 토끼풀 등도 자생 식물
의 서식지를 좀먹고 있다. 이러한 수입종에는 한국전쟁 이후 들어온 돼
지풀, 미국 쑥부쟁이 등도 있다.

● 86년 조사 때 이미 포유류 20여종 위기.

한솔기술원 환경육종연구소 최경영(32) 연구원은 "자생 식물의 경우
서식지에서 잘 보호 육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며 "자생 식물을 살
리는 길은 그것이 우리의 중요한 유전 자원임을 국민들이 인식하는 것"
이라고 말했다.

동물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토종닭, 제주도 똥돼지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토종 가축이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이미 백두산 호랑이는
한반도에서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표범 늑대 곰 등 덩치가 큰
동물들은 삼림남벌과 무분별한 포획으로 거의 소멸 상태에 이른 종이
대부분이다. 파충류의 경우도 구렁이 실뱀 맹꽁이 등 12종은 이미 89년
에 환경처에서 특정 야생동물로 지정되어 있다. 토종어류의 경우 수질
오염으로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서호납줄갱이는 완전히 절멸
했고 잉어류인 버들가지 어름치 감돌고기 등도 거의 사라져 특정 동물
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실정이다.

86년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생존해 있는 포유류는 95종이나
이 가운데 20여종이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그리고 이미 멸종한 것이
전체의 20%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어 있다. 또한 새는 3백71종이
있으며 그 중 50종이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13% 정도가 이미 없어진
것으로 나타난다.

야생 동물 454종을 포함, 현존하고 있는 동물 1천378종 중 93년 환
경부가 특정 동물로 지정한 멸종 위기 동물은 142종에 이른다. 식물은
3천558종이 존재하는데 그 중 266종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다.우리나라
에현재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생물은 모두 2만2천5백여종.

온대 기후대에 위치해 있어 사계절이 뚜렷하고 넓은 해안선에 산이
많아 생물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다. 특히 이 땅에서 자라는 생물들은
여러계절을 거치고 특히 한대 지방의 겨울을 지내야 하기 때문에 강인
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외국학자들이 실용적인
관심에서 우리나라 자생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미 국립식물원
에 한국 수림을 만든 한국식물연구가 배리 잉거씨는 "같은 품종의 식물
을 한국 중국 일본에 심어도 한국에서 자란 식물이 더 강하고 더 예쁘
다"고 말한다.

● 토종 보호는 자연 보호를 넘어선 자원 보호.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생물 자원을 확보하기 위
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국에서 확보하고 있는 생물종만 해도 60
만종에 이르고 있다. 그 중 우리 토종은 6천여종에 이르고 있다. 일본
은 이미 1900년대 초 한국을 식민 지배할 때 이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데라우치 총독은 특히 곤충에 관심이 많아 총독부 내 곤충연구
소를 만들었고 많은 곤충을 일본으로 가져갔다. 그런 것 중에는 우리
토종벌인 머리뿔 가위벌이 있다. 현재 농약 남용으로 토종벌이 사라져
버린지금 꽃가루받이용으로 역수입되고 있다. 또한 우리 자생 식물의
국제공식 학명에는 명명자란에 나카이가 붙는 경우가 많다. 일제시대
식물학자였던 나카이씨가 우리 땅을 속속들이 뒤져 찾아낸 우리 토종
식물에 자기 이름을 붙여 국제학술지에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생물 유전 자원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에 들어서다. 아직까지 제대로 된 통계 자
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지난 8월 토종을 살리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 결
성된 한국토종연구회 하용웅(58) 회장은 "토종은 한국 생태계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살아왔다"며 "앞으로 닥칠 환경 문제 등을 해결
해줄수 있는 열쇠가 그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농진청 안완식 연구원은 "토종을 살리려는 노력은 맹목적 애국심에
호소하는 시민 운동이 돼서는 안된다"며 "토종 생물에서 철저하게 경쟁
력있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솔기술원 환
경육종연구소 우영덕 소장은 "사랑의 표시로 장미보다는 순결·사랑을
상징하는 자생꽃인 둥굴레꽃을 선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등 자생
식물에 대한 관심과 연구를 촉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개발도상국 밀 재배량의 80%를 차지하는 '시미트 밀'이라는 종자가
있다.

이 종자를 개발한 보르로그는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 밀
의 원래 종자가 한국 토종인 '앉은뱅이 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제 사회에서도 보르로그가 일본 밀을 교잡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이 한국에서 가져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
국에는 앉은뱅이 밀이 없어 시미트 밀에 대한 '주권'을 주장할 수가 없
다.

지난 93년 국제법상 효력이 발생한 생물다양성협약은 생물 유전 자
원의 주권을 인정하고있다. 즉 어떤 생물을 이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
어내면 그 생물의 원산지 국가에 로열티를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제 토종 생물 보호는 단순한 '자연 보호'가 아니라 '자원 보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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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다양성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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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개최된 지구 정상회담에서 세계의 식물
과 동물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체결된 국제협약. 93년 12월29일부터 국
제법상 효력이 발생했다. 이 협약은 동·식물 자원이 그들이 자라고
있는 국가에 속하는 것이라고 선언, 생물 유전 자원의 주권을 인정한
다.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자라고 있는 생물 유전 자원의 상업화에서
오는 이익을 이전에는 선진국이 독점해왔으나 그 이익을 나누어 갖도
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은 생물 자원을 이미 확보해 놓은 상
태여서 이 협약의 비준에 소극적이다.

그리고 개발도상국들은 이미 개발된 생물 유전 자원이 자국이 원산
지임을 증명해야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우리나라는 94년 10월 이 협약
에 가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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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사라져 생태계가 변하면 사람에게 치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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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9일 농업·동식물학 관련 학자와 자생 식물 연구가 등 70여
명이 모여 '한국토종연구회'를 만들었다. 회장으로 선출된 하용웅 박사
의 말을 들어본다.


-- 발기 취지문에서 '토종의 가치 창조'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 의미
는.

"생물 유전 자원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우리는 토종 발굴 보존
뿐 아니라 유용성을 찾아내고 병충해 곤충을 천적을 이용해 퇴치하는
방법등 토종 생물의 효용성을 연구해 발표할 것이다.".

--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67년 일본의 조그마한 농업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우리 재래
종 보리 3백60여 품종의 종자를 보존하고 있었다. 그것도 한국을 식민
지배하고 있을 때 모아둔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놀라움과 두려움을 갖
게 되었다. 그 뒤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가 뜻을 같이하는 학자
들을 만나 본격적으로 연구 활동을 하는 모임을 만들게 됐다.".

-- 토종 생물의 중요성은 어디에 있나.

"토종은 기존 생태계를 유지하는 종이다. 토종이 사라지면 그 생태
계는 완전히 이질적인 생태계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속에 살
고 있는 사람들도 변하게 된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토종은 사람이
기 때문에 토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생태계 변화는 사람들에게 치명
적결과를 낳을 수 있다.".

-- 앞으로 활동 계획은.

"회원들과 관심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토종 실태 조사를 벌일 것
이다. 경제성 있는 토종을 발굴해 관련 기업에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효율적인 보존 방법도 연구할 것이다. 식물은 종자로 보존하는 방법이
있어 큰 문제가 없지만 동물은 보존 방법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
야한다. 국외로 반출된 토종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품종에 대해
서는 종자를 들여오는노력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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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좀 들더라도 자생식물 조경이 결국은 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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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대기업이 출자해 자생 식물을 연구하는 한솔기
술원 환경육종연구소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 종자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영덕 한솔기술원장을 만나보았다.

-- 종자 은행에 얼마나 많은 종자가 있나.

"자생 식물 종자 2천여점과 외래종 3천여점 등 5천여점의 유전 자원
이 있다.".

-- 무엇을 연구하고 있나.

"연구소 내 육종팀은 자생종 개발 가치를 찾아내 대량 생산과 간편한
재배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원예나 조경에 사용되고 있
는 식물 대부분은 외국으로부터 사온 것이다. 조경에 많이 쓰는 철쭉의
경우 자생종을 놔두고 일본 것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중부
이북에서는 겨울철에 보온재를 덮거나 따로 조치해야 한다.".

-- 자생 식물을 조경 소재로 만드는 데 어려움은 없나.

"대규모 건설 때 파괴된 주변을 녹화하도록 법제화되어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우리는 생태계를 무시하고 빨리 효과를 볼 수 있는 외국 잔
디를 심고 있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는 자생 식물을 이용, 주변 생태계
와 조화를 이루는 녹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처음엔 비용이 좀더 들더라
도 주변생태계를 그대로 살린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된다.".

-- 언제부터 매출을 올릴 수 있나.

"우리가 연구하고 축적한 자생 식물 종자를 내년부터는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이미 관심을 가지고 자생 식물로 건물 조경을 하려는 기업들도
있지만 종자가 없어 못한 경우도 있다.".

-- 앞으로 목표는.

"외래 꽃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화훼 시장을 우리 자생 식물로 대체
하고 우수한 품종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