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당의 대선후보들도 3일 IMF에 '무릎'을 꿇었다.

IMF 캉드쉬 총재가 구제금융과 관련, 유력 대선후보 3명에게까지 이행각서
서명을 요구한데 대해 후보들은 우여곡절 끝에 서명을 해준 것이다. 전례가
드문 IMF의 '무례한' 요구를 마지못해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정치권의
참담한 현실이 그대로 노출된 하루였다.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2일 오후 전화로 3당 정책위의장에게 IMF가
3당 후보들의 서명을 받아오라고 요구한다는 뜻을 밝혔다. 한나라당
이해구 정책위의장은 "정치권의 체모가 있지 후보가 꼭 서명해야
되느냐. 대변인이 공식 성명을 통해 뜻을 밝히면 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전했다.

3당 정책위의장과 임 부총리는 3일 아침 만났다. 임 부총리는 IMF와의
합의문을 설명하며 거듭 세 후보의 서명을 요구했다. 이 의장과 국민회의
김원길, 국민신당 한이헌 정책위의장 등은 '정책위의장
공식 발표'라는 양보안을 냈다. 임 부총리도 "IMF측을 한 번
설득해보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잠시 후 재경원측은 3당에 "도저히 안되겠다. IMF가 세 후보 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고 사정사정했다. 3당 관계자들도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후보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캉드쉬 총재의 출국시간인 오후 6시까지 시간을
대기 위해 정부와 3당은 이후 낯뜨겁게 동분서주했다.

이회창 후보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며 서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만수 재경원차관이 오후 1시 비행기편으로 대구를 방문예정인 이
후보의 서명을 받기 위해 12시50분쯤 헐레벌떡 공항에 도착했다. 서한은
'김영삼 대통령각하 귀하, IMF와의 협의 결과를 우리 당
정책위의장에게 상세히 설명해준 데 대해 감사합니다.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시 협의내용을 협의된 대로 이행할 것입니다'는 내용이었다.

이 후보의
서명을 받은 강 부총리는 여의도 국민신당 당사를 방문, 오갑수
정책단장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박범
진 총장이 경기도 유세중인 이인제 후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후보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30여분만에
이만섭 총재가 당사에 있던 이 후보 직인을 찍어 서명에 대신했다.
이 후보는 김충근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김 대통령의 서명도
부족해서 후보들에게 연서보증을 요구한 것은 국가체통과 국민의 자존심을
무시한 처사"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강 차관은 이어 국민회의로 향했다. 김원길 정책위의장은 TV연설을
녹화중이던 김대중 후보에게 전화를 걸어 대책을 협의했다.
국민회의는 정부 문안대로는 서명해줄 수 없다고 거절한 뒤, IMF
협의사항의 원칙적 이행을 다짐하면서도 김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책임을
적시하고 IMF와도 앞으로 이행과정에서 추가협상 여지가 있음을 나타내는
문안을 추가했다. 김 의장은 오후 4시쯤 초조하게 대기하던 재경원
관계자에게 서한원본을 넘겨줬다.

한나라당 맹형규 대변인은 오후
7시반쯤 뒤늦게 "IMF측이 대통령후보들에게까지 합의 이행각서를
요청한 것은 국민 자존심 차원에서 적절치 못한 것이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