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쿰빗가 부자촌에 '벼룩시장'… 경비행기-골동품도 팔아 ##.
방콕 수쿰빗 거리의 55번째 골목 '소이통로'. 태국의 부유 특권
층이 살고있는 이 거리에 얼마 전부터 '주말시장'이 생겨났다. 장
이 서기 시작한 것은 외환 파동을 겪은 지 3개월 만인 지난해 10월
경. 이 골목에 들어 있는 고래등 같은 저택에서 세간 살림을 내다
파는 시장이다. 이 마을은 태국 최대 재벌인 사하 유니언그룹 회장,
전 총리 아난 빤야라춘의 저택을 비롯해 작게는 1백평, 크게는 수
천평에 파3 쇼트 홀의 골프 코스까지 정원에 갖추고 있는 대표적
부촌이다.
처음엔 해직당한 수십만명의 실직자들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어
느 부자의 아이디어로 시작됐지만 요즘은 어려운 처지에 빠진 부자
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 더욱 열기를 띠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왕년의 부자' 'IMF시대의 거지' '부촌의 거지' 등으로 부른다.
현찰만 가지고 있으면 고급 승용차 일체는 시중의 30% 값에, 4
인승 세스나 경비행기는 4만달러에 살 수 있다. 귀금속, 18세기 골
동품 피아노, 최고 인기여배우의 이탈리아제 핸드백 등 현금이 될
수 있는 매물들은 모두 나와 있다. 조잡한 물건들과 장물로 채워지
던 방콕의 서민 대상 주말시장이 요즘은 부자들이 쓰던 부티나는
물건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이다. 고객은 대부분 현찰을 지니고 온
부유층 2세들이지만 서민들도 몰려와 구경한다.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사업을 했다는 솜분(34)씨는 1개월 전 일
자리를 잃은 것은 물론 이자까지 갚을 길이 없게 됐다며 영국 여행
중 구입했다는 영국 원산지 표시가 있는 버버리 코트의 라벨을 뒤
집 어 보여줬다. 겨울이 있는 한국에서 입으면 아주 좋을 것이라며
싼값에 사가라고 길을 막아선다. 왕복 4차선인 8백여m의 긴 거리가
주말이면 이들에 의해 인도는 물론 2차선까지 점령당해 승용차 운
행이 어려울 지경이다.
'전에는 나도 부자였다'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있던 솜칫(35)양
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지금은 부촌의 거지'라고 말했다. 지난해까
지만 해도 종합금융사에 근무하면서 연 1천2백%의 보너스까지 받았
던 '잘나가던' 사람이었다는 솜칫양은 "그런 좋은 시절이 영원히
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부터는 재미있는 놀이까지 등장해 호객을 하고 있다.
차왈릿 전총리 등 유명 정치인들이 그려진 그림에 양복을 입혀 물
이 가득찬 드럼통위에 얹어 놓고, 테니스공으로 맞추어 물속에 빠
트리면 일명 '전직 각료들이 쓰던 손수건'을 상품으로 주고 있다.
손수건을 주는 의미는 간단하다. 경제적 고통으로 슬픔을 당하
고 있는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주라는 뜻이다.
10바트에 테니스공 3개를 집어든 태국 사람들은 신바람 난 듯
힘차게 공을 던지며 잠시나마 화풀이를 하곤 한다.
가장 많은 공 세례를 받는 사람들은 물론 전직 각료들이지만 현
행정부의 정치인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도 정부에 대한
불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게임을 시작한 퐁
삭(46)씨는 "차왈릿 전 총리가 가장 인기가 있어 다음 주에는 그를
직접 초청할 계획"이라며 "드럼통에 앉아 있다가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그도 정신을 차릴 수 있고 국민들의 속은 시원해질 것이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느냐"고 익살을 부렸다.
태국은 아직 외세의 통치를 받은 적이 없다. 또 태국 언론들은
경제 위기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위험스러운 것이라고 보
도하고 있다. "I`m Fired, Because of IMF(IMF 때문에 해고당했어)"
가 한국인들이 IMF관이라면 "I`m Fired, but I`m Fine(해고당했지
만 난 괜찮아)"이 태국인들의 관점인 듯하다. 태국의 신정부 역시
IMF의 자금 지원 조건 중 하나인 56개에 달하는 종금사를 폐쇄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 개혁을 단행하고 있다. 양국의 경제 위기 대처
방식이 뭔가 다르긴 다른 것 같다. '방콕=안주현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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