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네커를 데려오기 위해 비행기까지 보냈으나 러시아 사람들이 넘
겨주지 않아 그를 데려 올 방법이 없었다.

호네커의 운명이 앞으로 어떻게 되겠는 지걱정된다." 김일성은
동서독 통합후인 지난 92년 병 치료차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에리히호
네커 전 동독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 서기장을 북한으로 데려오려다 무
산되자 무척 아쉬워하면서 호네커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했다.

같은 연배의 김일성과 호네커는 동갑내기 친구라고 할 정도로 절친
한 사이.

어렸을 때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뛰어들었고 장기간 독재를 휘둘러
왔으며 사회주의 붕괴를 목도하면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버리지 않
았던 이들 사이에는 마치 동병상련이라고 할 만한 교감이 있었던 듯,김일
성은 호네커의 앞날을 걱정했다.

호네커에 대한 김일성의 술회는 지난 92년 6월 방북한 스웨덴 공산
주의 노동당위원장과 담화록 가운데 실려 있다.

지난 20일 평양방송은 이 담화록을 공개하는 가운데 김일성의 발언
부분을 원문 그대로 소개했다.

"당신(스웨덴 공산주의 노동당 위원장)이 지금 모스크바에 와서 병
치료를 받고있는 호네커를 가지고 러시아 사람들이 돈벌이를 하려고 하
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몇 푼의 달러에
현혹되어 동지를 팔아먹는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호네커는 그가 우리나라(북한)에 와서 병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제기해 왔습니다. 내가 그의 제기를 보고받은 것은 어느날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김정일동지가 새벽 4시경에 나에게 급히 알릴 문제
가 있어서 전화를 한다고 하면서 호네커가 우리나라에 와서 병치료를 받
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편지로 전해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으므로 그 즉석에서 우리는 호네
커가 우리나라에 와서 병치료를 받는 데 대하여 환영하며 병치료에 필요
한 모든 조건을 다 보장해줄 것이라는 것을 본인에게 알려주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호네커의 제기에 동의를 준 다음 그를 데려오기 위해 모스
크바에 우리 비행기까지 보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사람들이 호네커를
우리에게 넘겨주지 않기 때문에 그를 데려 올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오래 전부터 호네커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나와 동갑이며
나와 그와의 관계는 좋습니다. 호네커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지 걱정
됩니다. 나라가 망하니 사람들도 기구한 운명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난 89년 10월 동독인들의 민주화 요구로 권좌에서 밀려난 호네커
는 구소련으로 피신(91.3)했다.

고르바초프 실각으로 다시 독일로 강제송환(92.7)됐던 그는 독일
당국의 인도주의적 배려로 석방된 뒤 딸이 거주하고 있던 칠레로 망명(93
년 1월)했다.

호네커는 칠레 망명 1년이 조금 지난 94년 5월 간암으로 사망했고
김일성은 약 2개월 뒤 `친구'를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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