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은 두 다리로 '환상의 드리블'…브라질 3연패 견인차 ##.

'구부러진 두 다리의 드리블 천재'. 가린샤를 아시나요. 가린샤는
펠레 자일징요 소크라테스 지코 호마리우 호나우도 등으로 이어지는
브라질 월드컵스타 계보의 맨 첫머리에 올라있는 이름이다. 본명은
마누엘프란치스코 도스 산토스. 가린샤는 애칭으로 '작은 새(Little
Bird)'란 뜻이다.

17살 펠레의 활약으로 유명한 브라질의 58년 스웨덴 월드컵우승도
실상은 가린샤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축구황제 펠레도 "가
린샤가 없었다면 나는 결코 월드컵을 3차례나 차지하진 못했을 것"이
라고 털어놓았다. 당시 가린샤는 펠레를 포함해서 바바, 디디, 자갈
로 등의 슈퍼스타들과 '환상의 공격 5인조'를 이루면서 중심축으로
브라질의 대회 첫 우승을 이끌어낸다. 가린샤는 62년 칠레월드컵 때
는 부상으로 중도하차한 펠레가 벤치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잉글랜드
전과 칠레전서 거푸 2골씩을 뽑아내며 조국에 두번째 우승컵을 안겨
준다. 그의 브라질 대표팀 데뷔는 55년. 이후 66년 잉글랜드월드컵까
지 54경기에 출전해 34골을 기록한다. 브라질은 당시 펠레와 가린샤
가 함께 출전한 A매치에서는 불패의 신화를 이어갔다.

가린샤의 당시 포지션은 라이트윙. 현란한 볼 컨트롤과 드리블,대
포알 슈팅, 숨을 멎게 하는 폭발적인 스피드…. 매년 수많은 축구천
재를 배출하는 '축구왕국' 브라질에서조차 아직도 이 위치에서 그를
능가하는 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평이다.

가린샤의 화려했던 선수이력은 소아마비와 알콜중독이라는 불우했
던 무대뒤 인생과 겹쳐지면서 그의 삶을 한층 더 드라마틱하게 만든
다. 그는 33년 리우 데 자네이로 부근 포 그란데라는 도시의 슬럼가
서 출생했다. 펠레보다는 7살 연상이고, 현재 브라질대표팀을 맡고
있는 자갈로감독보다는 2살이 적었다. 어린 시절 그는 소아마비를 앓
았고, 그 결과 그의 두 다리는 정상인들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를 갖
춘다.왼쪽다리는 안으로 굽고, 오른쪽다리는 왼쪽보다 6㎝가 짧고 바
깥으로 휘어진 기형. 그의 상태는 그를 치료한 의사조차 "보조장치가
없으면 앞으로 걸을 수조차 없을 것"으로 진단했을 정도. 그러나 가
린샤는 보란 듯이 구부러진 두 다리로 '드리블의 왕'이란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다. 신기에 가까운 그의 드리블은 아무도 흉내낼 수도 없
었고, 팬들로서는 잊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축구종주국 잉글랜드에
서 한시대를 풍미한 스탠리 매튜가 유일하게 비교대상이 됐으나 그
역시 가린샤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
까지 8년간 브라질 보타파고클럽에서 함께 뛰었던 자갈로감독은 "그
는 축구의 찰리 채플린"이라며 "아무도 그처럼 드리블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가린샤의 축구인생에서 또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가 완전한
문맹이었다는 사실이다. 단 한차례도 학교 문턱을 밟지 않은 그는 전
혀 읽을줄도, 자기 이름도 쓰질 못했다. 이같은 육체적·정신적인 핸
디캡은 타고난 섬세한 감수성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의 삶은 점
차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라운드에서는 대스타였으나 일상생활에서는
철저하게 무능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4번 결혼했다. 첫번째 부인인
나이르와 사이에 딸만 8명.

결혼생활에서 트러블이 생기면 가린샤는 새로 둥지를 찾아드는 식
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네번째 스웨덴 출신 아내까지 그의 소생은 모
두 12명(3남 9녀). 이중 두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 1남9녀가 남아
있다. 여자에서 다른 여자로 도피처를 찾아헤매던 가린샤는 결국 술
을 '영원한 반려'로 선택한다.

그는 83년 1월19일 자신의 마지막 술병을 비우고, 다음날 밤 병원
에서 49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의 비극적인 삶은 브라질의 전기
작가에 의해 '고독한 스타'라는 제목으로 출판됐고, 90년대 초 스위
스의 한극단에 의해 무대화되기도 했다. 올 6월 프랑스월드컵은 가린
샤의 화려했던 플레이의 자취를 어렴풋하게나마 더듬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현 브라질대표팀의 데닐손이란 선수가 자갈로감독으로부터
"마치 가린샤가 되살아난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옥대환 스포츠레저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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