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세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주말이면
브라운관 앞에 앉게 하는 KBS 대하역사드라마
'용의 눈물'.

'나라'를 내세워 혈육까지 숙청하는 냉혹한 권력,
난국을 정면돌파하는 영웅들의 행동력은 누구에게나
정신적 위안과 지혜를 안긴다.

이 흥미진진한 남성적 드라마의 원작은 조선일보가
8년간 장기연재한 월탄 박종화(1901∼1981) 역사소설
'세종대왕'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69년 3월 1일 이방원의 시로 시작한 소설
'세종대왕'은 77년 2월 11일 세종이 '만민의 호곡속에
월인천강이 되어 가시는' 대목으로 끝났다.

2천4백56회라는 신문소설 사상 최장기 연재였다.
68세에 시작해 76세에 집필을 마친 원로작가 박종화는
그 긴 세월간 단 한회도 거르지 않았다.

2만장이 넘는 원고지 글씨는 끝까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필생의 역작을 남기려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썼다고 했다.

작가는 집필 초기 "초인적 지도력과 예지를 지닌 세종의
인간적 면모와 그의 위업을 조명하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독자들에게 소설적 흥미를 안긴 대목은
대서사 드라마속 권부의 암투였다.

정치이념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형제간의 골육상쟁들은
저급한 야담의 차원을 넘어 권력의 실체에 접근했다.

박종화는 정사를 뼈대로 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과
원로작가의 예지로 세세한 에피소드들을 지어 살을
붙였다.

'조선왕조실록' 낡은 책갈피 사이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숨어있던 조선초 파워 엘리트들의 면모는 하나하나 그의
붓끝에서 되살아나 손에 잡힐듯 생생한 모습으로
독자앞에 다가왔다.

새로운 국가 생성기의 마키아벨리스트(이방원), 권력과
이념을 통합해 정치공동체를 만들려 한 통합형 리더(정도전),
권력에 환멸을 느끼고 미친 척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은
불운한 역사의 희생양(양녕)…. 특히 박종화는 세종이 된
충녕대군의 심리에 주목했다.

일종의 성격 파탄에 빠진 두 형을 괴롭게 지켜보면서도
누구든 왕업을 이어야 한다는 냉철한 판단을 하게 된 '지성스런
한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읽은 것도 월탄이었다.

권력의 의지에 따라 동원되는 군, 정적을 역적으로 모는 쿠데타,
피도 눈물도 없는 토사구팽까지 오늘과 본질적으로 조금도
다르지 않은 권력투쟁의 모든 요소들이 소설 '세종대왕'에
집약돼 있었다.

평론가 윤병로씨는 "역사의 맥락을 생생하게 부각한 이 소설은
해방 32년간 우리가 무엇을 했나를 반성하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지난날에 대한 복고적 향수에 머물지 않고 당대 현실을 돌아보는
거울이 됐던 '세종대왕'의 생명력은 KBS '용의 눈물'로 되살아났다.

이 서사드라마의 재미에 취한 시청자들은 더 깊은 감동을 향해
박종화의 30년전 소설 '세종대왕'을 다시 찾아 읽는다.

'세종대왕'을 출간한 기린원의 김태석 편집장은 "92년 출간후
한해 2만부 정도 나가던 책이 요즘은 한달 평균 2만5천∼3만부씩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