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중생 4명이 방과후 고층아파트에서 집단
투신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투신한 여학생들은 생업에 바쁜 부모의 무관심 또는 IMF체제 아래
가장의 급작스런 실직이나 범죄에 따른 수감 등 모두 엇비슷한 가정환경때문에
고민해오다 집단자살을 오래전부터 계획한 것으로 밝혀져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발생= 25일 오후 6시30분께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1동 한신아파트 123동앞
콘크리트 바닥에 이 아파트에 사는 임모양(16.J여중3년) 등 같은 학교 3학년
여학생 4명이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임양과 함께 투신자살한 학생은 朴모(16),李모(〃),宋모양(〃) 등 모두 4명이다.
◇투신경위= 임양 등 4명은 이날 오후 5시30분께 이 아파트 1층에 사는
임양의집에 모여 『함께 죽자』는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며 유서를 쓰고 각자
지니고 있던 물건들을 마지막으로 교환했다.
당시 현장에는 청량리소재 W보습학원에 함께 다니던 같은 학교의 다른 친구
5명과 李모양(16)이 있었으나 투신 여학생 4명은 서로 껴안고 흐느끼다
엘리베이터에함께 타려는 다른 친구들을 뿌리친 채 자신들만 엘리베이터에 탄
뒤 20층으로 올라갔다.
임양 등은 함께 있었던 친구중 일부가 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뒤따라
올라가고나머지 친구들이 아파트 현관쪽에서 지켜보는 사이 20층 아래
콘크리트 바닥으로 뛰어 내렸다.
투신당시 운동복 차림의 임양 외에 나머지 3명은 교복을 입은 상태였으며,
3명이 먼저 손을 잡고 뛰어내린데 이어 나머지 1명이 뒤따라 투신했다.
이들이 투신한 아파트 20층 복도에는 신발 네 켤레와 교복치마가 가지런히
놓여있었고 임양의 집 거실에서 이들의 유서가 발견됐다.
이에 앞서 투신한 朴양은 친구 李양의 호출기에 『죽으려고 수면제를
먹었다』는음성메시지를 남겼으며, 사건 직전 메시지를 확인한 李양이 임양의
집에 달려왔으나 투신을 막지 못했다.
◇발견.병원이송 이 아파트 경비원 李모씨(51)는 『밖에서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현관 입구에 여학생 한 명이 쓰러져 있었다』면서
『경찰에 신고한 직후 주변을 둘러보니 현관 주변에 학생 세 명이 더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李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들의 시신은 강북성심병원과 동산병원 영안실에 분산, 안치돼 있다.
◇가정환경.자살동기 동반자살한 여학생들의 아버지 직업은 각각 목수와
시장상인, 고물상, 건축업등으로 돼있으나 최근의 IMF체제와 사업 부진 등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형편이었던데다 생활고로 인한 부모들의 잦은 싸움
등으로 불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임양의 경우 어머니가 최근 뇌수술까지 받아 현재 병원에 입원중이며
아버지는교도소에 수감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李양은 목수인 아버지가 수개월째 계속되는 불황으로 인해 일거리를 찾지
못해 등록금마저 내기 어려운 형편이었고, 이 때문에 아버지가 자녀들과의
대화조차 기피하는 등 갑작스럽게 소원해진 것에 대해 고민해왔다고 친구들은
전했다.
이들이 가족과 친구들 앞으로 보낸 유서에는 『내가 가난하게 사는 것도
싫었고 제일 싫은 건 아빠의 술주정이야』 『우리집은 언제나 돈이 문제죠.
힘들다고 할 때그냥 들은 척도 안해』 등의 가정환경을 비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학교생활 이들의 성적은 대체로 중하위권이었으나 朴양의 경우 1-2학년 동안
개근을 할정도로 학교생활에는 충실했고 이들의 장래희망이
연예인,유치원교사, 디자이너 등으로 다른 학생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학교 관계자도 『학교에 무단결석을 한 경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충실히
생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다만 가정 형편이 대체적으로 어렵고 불우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따르면 이들 모두 온순한 성격으로 불량학생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유족표정 투신 여학생의 한 유족은 『평소 활달하고 명랑한 아이들이
집단자살까지 했다니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또 다른 유족은 『가정형편은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살만했다』면서 『최근들어 갑자기 살기가 어려워지면서 아이들에게
이전처럼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게 이런 일을 부를 줄은 몰랐다』고 울부짖었다.
이 아파트 주민들도 『똑같이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이런 일을 가까이서
겪고보니 더 이상 남의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면서 『경제가 어렵더라도
어린 자녀들이 아까운 목숨을 버리는 일은 없어야 겠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 경찰은 이들이 투신한 아파트 20층 복도에 신발 네 켤레와 교복치마
등을 가지런히 모아두었고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점
등으로 미뤄 각자의 가정형편을 비관, 집단투신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투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