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⑪ 부부싸움 ##.

육영수는 식량이나 돈이 떨어지면 진해로 내려와 육군대학에 다니
는 박정희 준장한테서 얻어 가곤 했다. 육영수는 남한테는 절대로 남
편에 대한 불평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집요하게
따지는 면도 있었다.


사진설명 :
친척과 함께 한 육영수. 바깥으론 남편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가난과 외도로 가끔 박정희와 싸웠다.

부부싸움의 주제는 주로 가난과 외도였다. 어느
날 한밤중에 식모 할머니가 당번병 박환영을 깨웠다. 옆방에서 두 사
람의 고성이 들려 왔다. 박환영은 싸움을 말리려고 머리를 썼다. 옆
방 문을 두드리면서 "장군님, 저를 부르셨습니까?"라고 했다. 때마침
박정희는 따지고 드는 아내에게 던질 물건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손
에 물주전자가 잡혀 있었다. 박정희는 "임마, 내가 언제 널 찾았어?"
라고 소리를 빽 지르면서 물주전자를 던졌다. 박환영은 물을 뒤집어
썼지만 부부싸움은 그쳤다.

다음날 박환영은 진해의 집을 나섰다. 박정희와 육사 동기생인 한
웅진 장군을 찾아 전주로 갔다. 후방 부대에 근무하고 있던 한준장은
박환영을 알아보고는 사무실에선 아무 말도 못하게 하더니 시내로 데
리고 나갔다.

"어떻게 온 거야?"
"박 장군님 생활이 말이 아닙니다. 5사단에 있을 때보다 더 어려
워 가정불화가 잦습니다."
"그래? 여기서 잠시 기다려 봐.".

한웅진은 어딘가 나갔다가 오더니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야
간 군용열차편으로 진해로 돌아온 박환영은 봉투를 박정희에게 전달
했다. 송요찬 3군단장이 어느 날 진해로 내려와 육군대학에 들렀다가
과거의 부하들에게 봉투를 돌렸다. 다른 사람들은 3만 환씩인데 박정
희의 봉투엔 10만 환이 들어 있었다. 박정희는 이런 식으로 동기, 선
후배들의 금전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인지 박정희는 자신의
청빈을 내세우거나 부하에게 강요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
두가 도적놈들인데 난들 도둑질하지 말란 법이 있느냐"고 말하면서
자신을 낮추었다. 박정희가 자신의 청빈을 자랑하고 다녔더라면 그의
주위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을 것이다.

육영수는 집안에서는 쌀이 떨어지고 있어도 당번병 박환영이 외출
나올 때 미군의 비상식량인 시 - 레이션과 건빵을 근혜에게 갖다주는
것을 보고는 야단을 쳤다. 고스란히 다시 싸주면서 "군인들이 먹을
음식을 가져나오면 누군가는 굶게 되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했다.

박정희는 육영수에 대한 찬양시를 일기에다가 적어놓을 만큼 아내
를 좋아했지만 술집 여자들도 좋아했다. 술을 마시면 꼭 여자를 불렀
다. 박정희는 여자를 고르는 심미안이 높고 까다로웠다. 그의 옆자리
에 앉은 여자들은 키가 크고 얼굴이 긴 특징이 있었다. 대체로 육영
수 형의 외모를 좋아했다. 3군단포병사령관 시절 박정희는 단골 술집
여자가 '쌀이 다 떨어졌다'고 하니까 자기 집 쌀은 걱정하지도 않던
사람이 부대 쌀을 갖다 주기도 했다고 한다. 박정희가 강원도 화천에
서 2군단 포병사령관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그를 찾아갔던 옛 부하장
교는 익명을 조건으로 이런 증언을 했다.

"저를 반갑게 맞으시더니 부관에게 '참모장교들에게 알려. 오늘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술값 가지고 집합하라고 그래'라고 했어요. 장
교들 사이로 여자들이 끼어 앉았는데 박 장군은 '여러분, 잘 들어.오
늘 이 여자들은 전부 이 손님꺼야. 건드리지 마, 알아서 술마셔'라고
해요. 박 장군은 술 자리에서는 상하관계를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일
본군장교들이 술을 마실 땐 부하가 상관의 머리에 젖가락을 두드리면
서 노래를 부른다고 들었는데 그분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그날 모든
장교들이 자리를 뜨고 난 뒤에도 박 장군은 단골 작부와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에 만나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예의 그 찬 바람 나는 군인으로 돌아와 있더군요.".

박정희는 야전에 근무할 때는 꼭 단골술집과 단골작부를 정해놓고
다녔다고 한다. 일과시간엔 엄격한 군인, 일과후엔 소탈한 인간으로
돌아가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한 박정희는 이 두 가지 면을 혼합시키지
않고 선명하게 구분해놓았다. 그러나 육영수의 입장은 달랐다. 육영
수는 소실을 다섯이나 둔 아버지 아래서 본처인 어머니가 얼마나 마
음고생을 하는지를 지켜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남편의 외도를
허용하면 자신도 어머니처럼 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는지 박정희의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보통 여자들보다도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
런 태도는 청와대 생활에까지 이어져 대통령수행 경호원들은 육영수
만 보면 숨거나 달아나곤 했다. 영부인에게 붙들려 가서 간밤 대통령
의 행적에 대해서 문초를 당한 경호원들도 많았다. 충현동 집에서 함
께 살던 여고생 박재옥의 눈에 비친 육영수도 행복하기만 한 주부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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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 육영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박재옥을 딸이라고 적극적
으로 소개하지 않아 박환영 당번병은 오랫동안 육영수의 친척 동생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손님이 오면 박재옥은 조용히 2층 방으
로 올라가곤 했는데 분위기와 행동거지가 육영수와 매우 닮았었다고
한다. 육영수는 미혼인 남편의 부하들이 들르면 넌지시 "고등학교밖
에 나오지 않았지만 좋은 규수가 한 사람 있는데…"라고 말하면서 눈
치를 보곤 했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 (*이동욱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