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우리에게 위안과 평안함을 주는 '최후의 안식처'이다. 48년
정부수립 당시의 사회혼란기에도 그랬고 60년대 이후 본격화된 경제개
발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의 IMF체제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지난 60년대 어느 봄날의 군항 진해의 거리 풍경. 무명한복을 입고 벗꽃놀이
에 나선 여인네들의 모습이 새롭다. 당시 안방마님에 머물렀던 우리나라 여
성들의 활동범위는 이제 사회 전반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형태나 내용이 많이 변해
왔다.
특히 지난 7월부터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
행되고 있다. 가정폭력이 사사로운 집안일이 아닌 사회적인 범죄로 취
급받는 세상이 됐다는 얘기.
◆ 가정구조도 '선진화' =정부수립 당시만 해도 가족 3대가 같이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50년대까지도 이 전통은 이어졌다. 그러나
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다.
서울대 인류학과 이광규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큰아들은 전통
적으로 집을 절대로 나가면 안됐던 존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장
손'이 집을 박차고 도시로 나가 자리를 잡고 동생들을 불러모았다. 70
년대 핵가족화가 급진전된 배경이다.
실제로 가족구성원의 숫자는 크게 줄었다. 49년 평균 5.3명이었던
것이 95년에는 3.3명으로 2명이나 감소했다. 40∼50년대 가족노동력 중
심의 농경사회에서는 자녀가 많은 것이 '부자가 될 징조'였다.
그러나 자녀가 부모에 의존하는 기간이 길고 양육비가 많이 드는 요
즘은 3명 이상의 자녀를 갖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소가족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또 80년대 이후 활발해진 해외취업, 전근이나 자녀교육
때문에 '따로 사는 가족'도 흔히 볼 수 있다.
◆ 조상 중심에서 부부-자녀 중심으로 =과거에는 가족생활의 모든
것이 조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제사는 가장 중요한 가정의
행사였다.
그러나 4대까지 하던 것이 관례이던 제사를 90년대 들어 조부까지만,
그것도 편한 시간에 모여 지내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다. 기독교 신자가
늘어나면서 아예 제사를 안 지내는 가정도 많아지고 있다.
대신 요즘은 가정이 자녀 중심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식탁에는 김
치,된장, 젓갈보다 빵과 햄, 소시지가 자주 오른다. 아이들 교육을 위
해 좋은 학군을 찾아 전세살이를 하는 경우도 많다.
부부 중심의 가정을 운영하는 경우도 꽤 된다. 외국인 회사에 다니
는 권동섭(32)씨 부부는 지난해 딸 하나를 낳은 뒤 더 이상 아이를 낳
지 않기로 결심했다. 주위에서는 "외동아이는 좋지 않다"고 말리지만,
"아이를 더 낳으면 부부생활이 온통 아이를 기르는 데만 얽매이게 된다"
고 이들 부부는 생각한다.
아이는 하나만 기르면 되고 그보다는 자신들의 삶을 여유있고 풍요
롭게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젊은 부부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
◆ 여성의 지위 격상 =50∼60년대 여성들은 '안방마님'이라는 권
위는 있었지만 집안일에 대한 권한은 없었다. 재산관리권, 상속권 등
대부분의 권한은 남자의 몫이었다. 면사무소 출입은 물론이고 장을 보
러 가는 것 등 '바깥일'은 모두 남자가 했다.
서울대 이광규 명예교수는 "당시 자녀의 학부모 회의에는 당연히 아
버지가 참석했고 아버지가 못갈 경우에는 형이나 사촌형이 갔다"고 말
했다. 여자는 집밖 일에 가지 않는다는 원칙이었다.
그러나 지금 학부모회의에 가는 남자는 거의 없다. 60년대 후반부터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남자들이 직장일에만 전념하게 됐고 그 과
정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됐기 때문. 그 결과 '아버지 중심 가족' 형
태가'어머니중심 가족'으로 급속히 변했다. 인기 TV연속극(사랑이 뭐길
래)의 주인공이었던 '대발이 아버지'같이 아내에게 콩나물 살 돈까지
일일이 세서 주는 남자는 이제 동물원에서나 찾아봐야 하는 세상이 됐
다.
이같은 어머니의 지위 향상으로 가족간의 왕래도 과거의 '시집지향
적'에서 이제는 '친정지향적'으로 바뀌었다. 20대 주부인 김현지씨는
"집안의 큰일은 당연히 시어머니보다 친정어머니와 상의하고 있다"며
"야외에 놀러 나갈 때도 대부분 친정쪽 형제 부부들과 같이 가곤 한다"
고 말했다.
시집간 딸 소식을 딸이 사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전해듣기 위해 5일
장에 나갔던 40∼50년대의 친정 어머니들을 이제는 상상하기 힘든 시대
가된 것.
◆'영감' '임자'에서 '오빠'로 =식구간의 호칭도 많이 변했다. 그
방향은 '민주화'와 '평등화'이다. 40∼50년대만 해도 부부간에는 '영감'
'주인'과 '임자'가 일반적인 호칭이었다. 60년대이후 '여보'라는 단어
가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여보'는 50년대 말까지만 해도 부부 사이에
쓰는 호칭으로 풀이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사전에는 "평교간에 부르는
말로 '여보시오'의 낮은 말"이라고만 되어 있었다.
그 후 '바깥양반' '아범' '집사람' '그이' '아빠' '자기' 등 다양한
호칭이 나왔다. 최근에는 '오빠' '형'이라고 부르는 부부도 제법 된
다. 아예 서로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있다.
◆ 편해진 가정생활 =피땀 흘려 이룩한 경제성장 덕분에 국민소득
(1인당 GNP 53년 2천4백원 96년 8백48만원)이 크게 높아졌으며, 그 결
과 가정생활도 매우 안락해졌다.
70년대 초반까지 TV를 보유한 가정이 많지 않아 레슬링이나 권투 같
은 빅 이벤트가 있을 경우 동네사람들이 모두 'TV집'으로 몰려가 밤 늦
게까지 구경을 하다가 돌아가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집집마다 TV를 1∼
2대씩 가지고 있음은 물론, 냉장고-전자레인지-세탁기-전축-녹음기 등
의 전자제품도 웬만큼은 다 갖추고 살고 있다.
또 건국(48년) 당시 3만8천명에 불과했던 전화가입자수가 지난해 2
천만명을 돌파했고, 자동차 등록대수도 48년 1만2천대에서 지난해 '1천
만대 시대'에 돌입했다. 폭발적인 자동차의 증가 여파로 추석이나 설날
때마다 전국 고속도로가 고향으로 성묘가는 차량 행렬로 뒤덮이게 된
것도 80년대 말부터 새롭게 등장한 현상.
정부 수립 당시만 해도 우리들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은 새벽같이 일
어나 아침을 푸짐하게 먹고 논밭으로 일을 하러 나갔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이 농업에 종사했기 때문. 그러나 도시인구가 압도적으로 많아
진 요즘은 간단한 빵 한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하는 가정이 많다.
아예 아침을 거르는 사람도 10%(95년 통계)를 넘고, 저녁을 집에서
먹지않는 사람도 20%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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