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서초월 인간중심의 패러다임으로... `마음의 투자' 필요 ##.

하스미 시게히코(62) 도쿄대학 총장과 이어령(64) 이화여대 석학교수
가 26일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와 21세기'를 주제로 대담을 나눴
다. 하스미 총장은 성균관대학 건학 6백주년 기념 세계대학 총장 학술회
의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했다. (편집자).

▲이어령 = 총장께서 올해 도쿄대 졸업식에서 행한 축사가 한국에도
신선한 화제가 됐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총장이 학생들에게 똑같은 말을
했더라도 비슷한 감동을 자아냈을 것입니다.

▲하스미 시게히코=도쿄대와 서울대 출신은 각각의 관료조직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관료가 나라를 지탱해왔지만, 이대로라면
일본의 미래는 없지 않을까 우려될 정도입니다. 일부이긴 해도 도쿄대학
출신 관료가 불명예스러운 사건에 관련돼 국민에게 실망을 줬다면, 도쿄
대학 교육 잘못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으므로 사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인재를 뽑는 방식은 선거와 시험 두 가지입니다. 일본을 움직
이는 중심 세력들은 바로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선발된 도쿄대 출신들입
니다. 대장성 같은 관료집단이 과연 문명의 대변환기를 주도할 수있는가
가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나 생각합니다. 시험 중심 방식의 한계란 것
이죠.

▲하스미=시험제도에 대한 유난한 집착은 극복돼야 합니다. 한국은
대학졸업후 병역의무 때문에 그래도 나이가 조금 높아지지만 일본에서는
21세에 관청에 들어갑니다. 대학에 나이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 이를테면 회사에서 수년간 일하다가 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받아들이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이=인재 선발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국과 일본의 특징들은 요즘 흔
히 얘기되는 아시아적 가치란 게 과연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
늘날 아시아 경제불황은 곧 아시아적 가치 때문이라는 문화 결정론적 시
각도 적지 않은 게 현실 아닙니까?.

▲하스미=왜 현재 아시아가 문제가 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일부 미
국인들은 경제전쟁 또는 냉전이 끝난 지금 남아 있는 전쟁거리는 문화밖
에 없다고 말합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란 책에서 일본은
아시아의 또 다른 섬이라고 해서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도 널리 읽혔는데, 헌팅턴의 주장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
아 지식인들은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큰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문명 분류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이=아시아를 유교문화권으로 보고 그것이 이슬람문화권과 제휴하여
유럽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는 견해 역시 세계 정치경제의 잘못된
시나리오를 만들어낼 위험성이 많지요.

▲하스미= 유럽인들은 근대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세계는 앵글로 색슨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에 의해 지탱되고, 일부 아시
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따지고 보면 유럽문명에는 아시아보다
더큰 문제들이 많습니다. 아시아지역에 지식인들이 없다고 했지만 현재
유럽도 그런 지식인들이 없습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프랑스도 미셸 푸코
나 드루스 다음을 이을 지식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
다. 세계적으로 지식인 중단의 시대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죠.

▲이=그래도 EU는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베토벤의 환희 합창곡을
국가처럼 연주합니다. 아시아에는 아시아인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베토
벤'이 없습니다. 유럽 같은 공통된 문화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일본이 2차대전 이전에는 군사력으로, 이후에는 경제력으
로 아시아를 블록화하려고 한 데 중요한 원인이 있었다고 봅니다.

▲하스미=하드면에서는 아시아가 강하지만 소프트면에서는 서구가
강하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할리우드가 세계 영상산업을 정복하
고 있는데 거기에는 아무런 독창성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재미있는 영화
가 만들어지면 그것을 할리우드류로 만듭니다. 셰익스피어도 디즈니 만
화도 명작의 모방이죠. 서양 근대화가 독창성을 바탕으로 발전했다면 아
시아는 독창성은 적지만 하드면의 생산이 우월했다는 생각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한국이나 일본영화는 독창적이고 개인적 표현이 많습니다.

▲이=인도는 가난한 나라지만 정보 소프트산업에 투자한 결과 세계
제2의 소프트 산업 국가가 되었습니다. 돈의 투자만이 아니라 문화 패러
다임 구축이라는 마음의 투자를 해야 합니다.

▲하스미=단일문화는 21세기에 불리한 점이 있습니다. 미국대학의 장
점은 국적에 관계없이 우수한 학생이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는 것이죠.
국적, 연령, 성별을 따지는 조직은 앞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도쿄대에
서 재일한국인이 교수가 됐습니다. 1930년대의 아시아 통일은 실패해서
아시아 민족들에게 어려움을 끼쳤지만, 그것과는 다른 통일관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아세안과는 다른 큰 조직
이 필요합니다.

▲이=영국의 명문 대학 가운데 인도인이 학장으로 취임했습니다. 한
국인이 도쿄대학 총장이 되고, 하스미 총장 같은 분이 서울대학 총장이
될 수 있는 사회란 요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유러센트릭(서구
중심주의)한 것을 보편주의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휴먼센트릭'이
인류의 보편주의가 되는 것이며 그런 것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로 '글
로벌 스탠더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냐 아니냐 하는 택일론에서 인
간중심의 병합론으로 패러다임을 바꿔나갈 때 21세기는 우리에게 가까이
올 것입니다. .

※ 하스미총장= 하스미 시게히코 도쿄대학 총장은 불문학을 전공한 문
학비평가. 1960년 도쿄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에 유학했으며 플
로베르, 데리다 등 프랑스 현대사상 소개자로 유명하다. 비평활동뿐만
아니라 계간 영화지 편집장을 맡을 만큼 영화전문가이기도 하다.

작년 4월 제26대 도교대학 총장에 취임한 그는 올해 들어 잇따라 터
진 수뢰사건에 도교대 졸업생들이 구속되자 지난 3월 졸업식장에서 "한
심스럽게도 재정-금융 스캔들에 가담한 고위 공직자와 기업경영인 등 상
층부가 대부분 우리 대학 졸업생들"이라며 "이들의 파렴치한 행동이 우
리 대학의 독특한 풍토가 반영된 것이라면 우리 자신도 깊은 반성과 사
죄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