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저녁 도쿄 오쿠라호텔. 해방후 한국 극장에 처음 걸리는
일본영화 '하나비(화화)'의 감독이자 주연배우 기타노 다케시(51)를 만
났다.
그는 90년대 일본영화 최고봉이다. 89년 '그 남자 흉포하다'부터 97
년 베니스영화제 대상작 '하나비'까지 7편을 내며 국제적 명성을 쌓았
다. 야쿠자세계를 섬뜩하게 그리면서도 정적이며 관조적 깊이를 지닌
작품들은 일본전통 미학을 가장 잘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타노 다케시는 "잔혹함과 유머엔 항상 양면성이 있고, 내 영화는 그런
것들을 다룬다"고 말했다.
2시간여 대면하니 오랜 궁금증이 풀렸다. 작품 속에 폭력과 천진함,
죽음에 대한 명상이 공존하는 역설(역설)은 곧 그 스스로 모습이었다.
그는 질문에 따라 때로 재치있고 때로 사려깊은 모습을 비쳤다.
-- '하나비'가 한국 상륙 영화 1호가 됐는데.
"무척 영광이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한국 관객들이 진지하게 봐주
셨으면 좋겠다.".
-- '하나비'란 일본문화를 상징하는 '불꽃놀이'가 아닌가.
"그게 아니라, 하나(화)는 삶과 사랑을, 비(화)는 폭력과 죽음을 의미
한다고 말하라고 프로듀서가 시켰다. 난 '다케시의 7번째 영화'라고 지
으려 했지만 모두 말렸다.".
-- 매주 9개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영화, 그림에 글까지 쓰는데, 이
게 어떻게 가능한가.(그는 일본 대중문화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72
년 데뷔 이래 독설로 절정 인기를 누리는 코미디언 '비트 다케시'이자,
배우 화가 칼럼니스트로 활약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프로덕션이라는 아주 무서
운 존재가 있어, 시키는대로 하다보니 그리 됐다.".
-- 강도 높은 폭력묘사로 무엇을 의도하는가.
"내 작품 주제는 폭력이 아니라 죽음이다. 폭력은 죽음에 가장 가까
운 것이라 택했을 뿐이다. 경찰과 야쿠자는 일본 사회에서 폭력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기에 즐겨 다룬다.".
-- 신작 '기쿠지로의 여름'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이후 처음
으로 야쿠자가 등장하지 않는데.
"할머니와 사는 소년이 엄마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같은 고전에 도전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 작품속 허무주의는 지금 일본을 보는 비관적 시선 탓인가.
"아시아 어느 나라든 전후 미국문화를 받아들이며 전통과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지금 경제는 젊은 세대가 지탱하지만, 난 젊은 사람들이
너무 싫다. 품위가 없다.".
--'하나비'엔 청각 이미지를 시각 이미지로 전환하는 식으로 다양한
장면전환이 인상적이다.
"영화도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다. 당연히 진화해야 한다. 하고 싶
은 방식이 많지만 몽땅 시도하면 사람들이 난해하다고 머리를 흔들 것
같다. 차근차근 하나씩 활용해보고 싶다.".
-- 작품 속에 바다가 유달리 많이 등장한다.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모든 생물의 고향이 바다 아닌가. 바다로
가는 것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것이고, 그게 매우 묘한 느낌을 준다.".
-- 조감독이었던 히로시 시미즈의 '자살관광버스' 같은 후배들 영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는가.
"아직 추월당하지는 않았구나 안심한다.".
-- 90년대 일본영화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할리우드 영향이 크다. 예산도 없으면서 비슷한 작품을 만들려 한
다. 좀나아지긴 했지만 제대로 자리 잡으려면 한참 걸릴 것이다. 일본
영화계 비극은 아직도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즈 야스지로를 넘어서지 못
한다는 데 있다.".
-- 한국에서 일본영화 경쟁력이 어떨 것이라 보는가.
"경쟁력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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