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39) PD는 시골 노인들에게 '이주사'로 통한다. 지방으로 촬
영을나갈 때마다 '방송국 간부'라며 한껏 높여 부르는 호칭이다. 동네
영감님들에게 그는 '서태지' 못지않은 스타다. 그가 연출하는 '서세원
의 좋은 세상만들기'(SBS 매주 토 오후7시) 덕분이다.
지난 2월 시작된 '좋은 세상 만들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쏟아내
는 구수한 무공해 입담으로 인기절정이다. 10대 오락프로그램이 휩쓸던
주말 저녁 시간에 노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역발상으로 공전의 히트
를 쳤다. 최근 방송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최고 프로그램(비드라마 부문)
으로 뽑혔을 정도다.
"처음엔 저도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첫 녹화를 마치고 나서,
뭔가 훈훈한 느낌이 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PD는 한달에 두세차례 2박3일 혹은 3박4일 일정으로 촬영을 나간
다. 산간 오지 마을만 찾아다니기 때문에 그의 표현대로 "좋아서 하지
않으면 못할 일"이다. 이달 중순에도 서울에서 차로 7시간 걸리는 충북
단양군 영천면 용진리를 찾았다. 장수마을로 소문난 이곳 노인들이 겨
울 보양식으로 먹는 '개구리 구이'를 권해 20마리나 포식했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통학 때 1시간을 걸어다녀야 하는 시골에서 자랐다"며
'촌놈'을 자처한다. 내년 복숭아가 열리는 계절이 오면, 고향마을(경남
밀양군 삼랑진읍 우곡면)을 TV에 등장시켜볼 생각도 갖고 있다.
'좋은 세상만들기'에 대한 노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내년3월까지
출연신청이 밀려있다. "TV에 나오게 해줘 고맙다"며 꼬깃꼬깃한 5천원
짜리 지폐를 '촌지'로 내놓기도 한다. 추석 특집 때 나온 중국 요령성
만융촌의 조선족 교포 4명은 10페이지 가까운 편지를 빽빽하게 채워가
며 '고맙다'는 뜻을 전했다.
86년 KBS에 입사해 91년 SBS 개국과 함께 자리를 옮긴 그는 '전국노
래자랑' '웃으면 좋아요' '열려라 웃음 천국' '기쁜 우리 토요일' 등
오락프로그램을 주로 맡았다. "방송 초기, 노인을 희화화한다는 비판을
받곤 했다"는 그는 "혹시 노인들을 무시하는 대목이 들어가 있을까봐
요즘도 편집 때 특별히 신경을 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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