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LA 흑인폭동 직후 한인과 흑인 화해를 노래한 랩 '콜 미 타이거
(Call Me Tiger)'로 화제를 모았던 교포 래퍼 서정권(25)이 가요계에 데
뷔했다.
뉴욕 다운타운 힙합 DJ 출신인 동갑내기 교포 임병욱과 손잡고 만든
팀은 '드렁큰 타이거(Drunken Tiger)'. '술 취한 호랑이'란 이름만큼 파
격적인 정통 힙합을 선보이며 도전장을 던졌다.
정통 힙합을 들고 온 '드렁큰 타이거' 서정권(왼쪽)과 임병욱. 미국 언더
힙합계에서 활동하던 재미교포 팀이다.
흑인폭동이 터진지 넉달쯤 지난 92년 9월, LA 시내 남쪽 흑인동네 도
티 야외스타디움에서 연례 힙합 페스티벌이 열렸다. 관객과 출연자가 흑
인일색인 행사 중간쯤 느닷없이 동양 소년이 무대에 나왔다. 당시 고교
2학년이던 서정권이었다. 사회자가 "한국 래퍼 타이거 JK"라고 소개하는
순간 객석에서 욕설과 야유가 터졌다.
그러나 나어린 동양 소년은 주눅들지 않았다. 힙합리듬에, 거침없이
랩을 쏟아냈다. '나를 호랑이라 불러라. 겁장이 고양이가 아니다. 까불
면 태권도로 혼내준다…하지만 우린 바닷가 모래같다. 태양 아래 한 형
제다.' 곡이 끝나자 야유는 환호로 바뀌었다. 그는 흑인 전유물인 이 대
회 '즉흥랩상'을 받은 첫 동양인이 됐다. 노래는 LA 힙합전문 라디오에
도 소개돼 인기를 모았다.
UCLA에서 영어와 영화를 전공하는 서정권은 "힙합과 랩을 좋아했지만,
래퍼가 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신문, 방송과 인터뷰하고, 여기저
기 클럽과 행사에 불려다니면서 마음을 굳혔어요. 동양인이 힙합과 랩을
흑인보다 잘 한다고 인정받는 건 드문 기회거든요." 그는 랩 가사대로
태권도 5단이다.
파트너 임병욱은 중학 시절부터 DJ 콘테스트를 휩쓸고 다닌 재주꾼이
다. 고3 때 벌써 5만명을 수용하는 뉴욕의 초대형 댄스클럽 '어리나'에
서 힙합 DJ를 했다. 둘은 91년 LA에서 열린 힙합 콘테스트에서 나란히
'즉흥랩상'과 '스크래치 DJ상'을 받으며 단짝이 됐다. 뉴욕과 LA 클럽을
무대로 함께 활동했다. 김진표 업타운 임성은에게 랩을 가르치기도 했다.
두 사람은 한국 '힙합 가요'에 신랄하다. "겨우 흉내나 내면서 힙합
이라 하는 게 우스꽝스럽다. 진짜 힙합을 보여주겠"고 했다. 앨범에선
타이틀곡 '난 널 원해'를 비롯해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Do Dat' 등
11곡을 선보였다. 하나같이 느릿하면서 끈끈한 정통 힙합 랩이다. 가사
는 대부분 영어다. PC통신마다 벌써 팬클럽도 생겼다.
"작년 미국에서 '버진' '딜리셔스' 같은 음반사가 취입을 제의했지만,
미뤘어요. 먼저 한국서 판을 내 '한국 힙합 그룹'인 걸 못박고 싶었거든
요." 이들은 "상업적 성공엔 신경쓰지 않는다"며 "인기에 앞서 음악에
진실한 게 힙합의 생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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