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침을 뱉어라."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똥물을 끼얹어라."
"눈 똑바로 뜨고 거짓말하고, 오늘 한 말 내일 잊어버리고. 그게 국회
의원이여." 80년대 초 대학가 주점에는 이런 말들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386'(3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은 그만큼 정치혐오증이
극에 달했던 세대였다. 그러나 80년대초, 신군부하의 억압적 상황은 이
런 생각을 공개 집회를 통해 표출할 자유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사진설명 :
시계방향으로 심양섭씨(80학번), 김영선의원(81학번), 백태웅씨(81학번),
김민석의원(82학번),송영길씨(81학번), 임종석씨(86학번)

그러다 84년 봄, 정부 대학자율화 조치가 발표됐다. 젊음의 분노는

폭발했다. 서울대 아크로폴리스(대학본부 앞 광장)나 고려대 민주광장

(학생회관앞 공터)등에는 수천명의 학생들이 몰렸다. 이정우(서울대 공

법학과 81학번) 김영춘(고려대 영문학과 81학번) 송영길(연세대 경영학

과 81학번)씨 등첫 직선 총학생회장은 사자후를 토해냈다. 학생들의 열

광.정치권을 향한이들의 외침은 한국사회를 송두리째 변화시킬 것 같았

다. 그러나 그해 겨울, 이정우 김영춘 송영길씨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의 한자취방에서 함께 숨어 지내는 신세가 됐다. 민정당사 점거농성사

건 배후인물로 지목돼 수배를 받았기 때문. 결국 모두 검거됐다.

세월은 흘러갔다. 91년 동구권 몰락, 92년 대통령선거. 386 운동권은
내부 분열 양상을 빚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부 386은 그토록 증오하던
정치권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정치권 진입을 금기시 하던 시절,김
민석(36·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씨는 "DJ 개혁을 돕겠다"며 혼자서
제도권으로 들어갔다. 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내고 미 문화원 방
화사건 배후로 지목돼 투옥되기도 했던 그는, 한차례 낙선을 거쳐 96년
총선때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운동권은 아니지만, 시민단체 활동과 TV출연을 계기로 전국구 배지를
단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39·서울대 법대 81학번)은 '튀는 패션'과
'날카로운 문제 제기'로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찬진(34·서울대
전자계산학과85학번) 전 '한글과 컴퓨터' 사장은 전국구로 정치판에 뛰
어들었다가 스스로 떠난 케이스.

96년 총선에서 총학생회장 출신인 김영춘씨와 심양섭(39·서울대 동
양사학과 80학번), 이성헌(40·연세대 체육교육과 81학번)씨 등이 공천
을 받았다. 이들은 지역기반이 강한 후보들과 경쟁, 떨어졌지만 주목을
받았다. 현재 각 정당서 의원 비서관 등으로 '암중모색'하는 숫자까지
더하면 정치권의 386숫자는 수백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론'이 나온 후, 386의 정치입문
은 정치권의 새 화두로 부상했다. 1일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
회관지하 레스토랑. '송영길(39·연대 경영학과 81학번·전 연대 총학
생회장)을 격려하는 386세대 모임'이 열렸다. 한 지역구 보궐선거에 모
정당 후보 공천을 받기 위해 뛰고 있는 송 변호사를 지지하기 위한 자
리.이인영(35·고대 국문과 84학번·전대협 1기 의장) 우상호(38·연대
국문과 81학번·전 연대 총학생회장) 임종석(33·한양대 무기재료공학
과 86학번·전대협 3기 의장)씨 등과 박노해 시인 등 100여명이 참석했
다. 이들은 예전에는 선배들 눈총때문에 감히 꺼내지도 못했던 "386의
이름으로"란 표현을 자주 썼다. '수혈론' 이후 달라진 풍속도.

공식 모임 후 이들은 오후 9시쯤 인근 술집 '네트 21'로 자리를 옮겼
다. 정태근(38·연대 경제학과 82학번·전 연대 총학생회장)씨가 주인.
술잔을 부딪치는 마음은 80년대 그대로였지만, 술은 막걸리에서 맥주로
바뀌어 있었다. 이들은 그러나 시위, 구속으로 점철됐던 옛 기억은 가
능한서로 꺼내지 않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미래 모습이 주제였다.

기존 정치권에는 아직 진입하지 않고 사회운동, 시민운동을 하면서
'때를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이인영 우상호 임종석씨는 6월 '한국청년
연합회'(가칭)를 창립하기 위해 뛰고 있다. 임씨는 "사회 변화 없이 정
치권에 몇몇 들어가서는 제도권 '탁류'에 쉽게 휩쓸릴 위험이 있다"며
"정치권, 시민단체 운동 등 386의 '아름다운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86의 정치권 진입은 논란도 낳고 있다. "학생운동만 했다고 전문성
도 없는 사람들을 영입하는 게 정치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하
는 회의론과 "그래도 요즘처럼 정치권이 불신을 받는 가운데, 깨끗한
정치를 위한 대안세력으로 386수혈이 불가피하다"는 긍정론이 그것. 나
이만을 잣대로 한 정치신인 발탁이 능사가 아니라는 40대 이상 세대의
지적도 있으며, 비운동권의 실력있는 386 등용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나
온다.

386의 '정치권 노크'. 국민들은 어떤 화답을 할 지 두고볼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