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위기에 처한 회사를 그만두고 대기업 입사시험에 합격했으나 임용
취소로 실직상태에 있던 20대가 목숨을 끊었다.

4일 서울 종로구 장사동 S호텔에서 이모(26)씨가 목을 매 숨진 채 발
견됐다. 이씨는 자살하기 전날 오후 어머니에게 "잠깐 외출한다"는 마지
막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이씨는 서울 H대 기계설계과를 수석으로 입학, 95년 상위권 성적으로
졸업했다. 공군장교로 2년여를 복무한 그는 H건설에 들어가 10개월을 근
무하다 97년 초 퇴사했다. 이씨가 나온 직후 회사는 부도가 났다.

이씨는 대기업 L사 공채에 응시, 130대1의 경쟁을 뚫고 합격했다. 하
지만 2∼3개월이 지나도 출근 통보는 오지 않았다.

이후 이씨는 5∼6군데의 회사에 입사서류를 냈다. 하지만 IMF로 대졸
실직자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이씨에게 기회는 오지 않았다.

이씨의 아버지는 아들이 숨지기 전날 28년간의 공직생활 끝에 조기퇴
직 통보를 받았다. 28년간 근무하던 우체국이었다.

이씨의 매형 서모(33)씨가 지난달 처가에 갔을 때 이씨는 한달 넘게
문 밖을 나가지 않고 있었다. 서씨는 "외아들인 처남이 잇단 취직 실패와
아버지의 퇴직으로 중압감을 느껴 자살한 것 같다"고 말했다.

5일 세란병원 영안실에는 이씨의 부모와 두 누나, 그리고 매형만이 쓸
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족들은 6일 날이 밝는 대로 이씨의 시신
을 벽제에서 화장할 계획이다.

(* 이한수 hslee@chosun co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