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 동경대학 하스미 시게히코(62) 총장의 난해한, 그리고 '장
황한' 입학식 식사가 두고두고 화제다. 지난 12일 일본 무도관에서 열린
동경대학 입학식. '일본에서 가장 머리 좋은' 3400여 신입생 앞에서 하
스미 총장은 뜻조차 알기 힘든 '철학강좌' 식사를 퍼붓기 시작했다.

"…사회란 어긋남과 위화감과 격리의식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가혹한
공간입니다. 그곳의 언어는 보통 때는 숨겨져 있으면서도 총체적으로 기
능하는 데 불가결한 갖가지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을 두드러지게 하는 역
할을 합니다. (중략) 대부분의 혼란이란 2개의 개념이 대립개념으로 성
립하는지 여부를 검증하길 포기하고 어느 한쪽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는 못배기는 성급한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불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인 하스미 총장의 연설은 수수께끼 같은 표
현과 어려운 한문어, 추상적 용어로 가득차 있었다. 따뜻한 축하의 말을
기대했던 신입생들이 술렁거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준비한 연
설원고는200자 원고지 84장 분량에 달했다. 하스미 총장은 무려 47분 동
안원고를 한 자도 빼지 않고 읽고난 뒤에야 연단을 내려왔다.

이 연설은 외부로 알려지면서 '부적절한 자기현시'란 비판, '지성의
자극'이란 찬사가 동시에 쏟아졌다. 평론가 야스하라는 "연설의 40%를
잘라내도 무방한 악문투성이이고, 결국 동경대학이 최고라는 자랑일 뿐"
이라고 혹평했다. 반면 야마나시대학 이케다교수는 "대학이 그렇게 만만
하지 않다는 것을 신입생들은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스미 총장 본인은 그후에도 여전히 알쏭달쏭한 설명만을 계속하고
있다. 요미우리(독매)신문과 회견에선 "학생들에게 '무슨 연설이 이렇게
따분해'하는, 일종의 '저항감'을 일으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으로 사색의 출발점을 삼는 선문답식 화두를 던졌던 셈이다.

"예스(Yes)냐, 노(No)냐의 양분법으론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있는 법
이죠. 예컨대 코소보 사태는 '옳으면서도 옳지 않은 것이 벌어졌다'는
게 정답일 겁니다. 세상 만사는 이처럼 복잡하다, 좀더 마음을 풍요롭게
해서 사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신입생에) 일러주고 싶었던 셈이
죠.".

하스미 총장은 작년 졸업식에서도 동경대 출신 관리와 기업인의 도덕
실추를 비판하는 연설로 화제를 낳았었다. 올해 입학식에선 그가 "출세
가도에 올라선 신입생들에 '지성의 세례'를 맛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고
동경대 주변에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