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새 시리즈 '비디오 X파일'를 시작합니다. 상당한 수준을
갖췄지만 극장에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채 시중에 나와있는
비디오들을 골라 한편씩 소개하는 난입니다. 영화평론가 홍성남씨가
집필합니다. (편집자주)

폴 슈레이더의 신작 `어플릭션(Affliction)'을 보노라면 바브라
스트라이전드가 감독한 영화 `사랑의 추억(The Prince of Tides)'을
떠올리게 된다. 두 작품 모두 끔찍한 가족관계 내력이 현재 삶을
얼마만큼 갉아먹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며, 장애성 성격을 잘
체현하는 배우 닉 놀티를 그 피해자로 내세우니까 말이다.

차이는 감독이 피해자 주인공을 종국에 어느 길로 인도하느냐에
있다. 스트라이전드는 친절하게도 그를 치유의 길로 데려가지만,
슈레이더도 그러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주로 어둠의 세계
주변을 배회하던 감독이 아니던가. 게다가 `어플릭션'은 그의
영화들 가운데서도 가장 지옥 가까이에 다가가있는 현실을 담고
있다.

`어플릭션'의 주인공은 뉴햄프셔 작은 마을에서 단순한 일을 하는
경찰관 웨이드. 그의 소박한 바람은 사귀고 있는 애인 마지와 결혼하고
이혼한 전 아내가 기르는 딸을 되찾는 것이다. 하지만 강박관념과
편벽증으로 똘똘 뭉친 그의 발걸음은 자꾸만 자기 소망과는 엇갈린
길로만 내닫는다. 영화는 미묘한 성격 연구와 흥미진진한 스릴러
형식을 오가면서 웨이드가 당하는 `고통'과 파멸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참기 힘든 격통을 당하는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자리바꿈하는 웨이드.
영화는 그 원인을 술에 찌든 채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소급해간다. 폭력은 유전된다는 것, 그리고 사랑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불구적 형식이 되고 만다는 것.

영화는 `달콤한' 오락거리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어플릭션'을 찾지
말 일이다. 을씨년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오는 겨울 풍경과 잔혹한 회상
장면까지 이 영화는 온통 냉혹한 공기로 감염돼있으니 말이다. 픽션
자체는 비참함과 통하지만 훌륭한 연기를 보여준 두 남자 배우
닉 놀티와 제임스 코번은 스크린 바깥에서 그만한 보상을 받았다.
자기 경력에서 가장 음울한 영화를 만든 슈레이더 감독 역시 최고작을
만들었다는 상찬을 받아 마땅하다. (홍성남·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