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 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해오는 김기덕 감독은 두뇌가 아니라
피부로 생각한다. 22일 개봉하는 '섬'은 '악어'에서 시작, '야생동물
보호구역'과 '파란 대문'을 거쳐온 김감독 작품 중 가장
'김기덕적'이라할 만하다. 그의 영화는 밑바닥 인생들의 처절 삶을
위악적인 영상으로 풀어낸다. 충무로 주류와는 철저히 다른 제작방식과
화술을 지닌 '이단아' 김감독은 독창적이고도 선명한 회화적 이미지
조형술로 찬사를 받는 한편, 종종 초점을 잃은 잔혹 취미와 바탕에 깔린
몇가지 편견들 그리고 울퉁불퉁한 화술로 비난도 받는다.
낚시터에서 몸 파는 여자와 그곳에 숨어든 남자의 사랑을 다룬 '섬'은
저절로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파격적인 묘사와 강렬한 주제 의식을
드러낸다. 시사회에서 감독은 "생산적인 찬반토론이 일기 바란다"고 했다.
―잔혹 취미라고 할까. 살아있는 개구리를 찢고 펄쩍 뛰는 생선을
난도질하며 주인공이 낚시 바늘을 삼켜 자해하는 장면을 피가 흥건하게
묘사하는데, 관객에게 충격을 던져주고 싶은가.
"여주인공의 밑바닥 고통을 그리고 싶었을 뿐이다. 동물에 대한 학대는
남자들에 대한 가학의 표현이다. 내게 그런 가학적 취향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일부러 관객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물 위에 실제로 대변보는 장면까지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똥이 더럽다는 통념을 부정하고 싶었다. 물에서 펼쳐지는 삶의 순환
구조 속에서 배설은 자연스러운 것이기에 일부러 넣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 장면에서 불쾌함을 느낀다.
"불편함을 넘어선 그 무엇을 보길 원했다. 그렇게 보지 않으려는 경우엔
관객에게 배설하는 느낌을 넣으려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위악적 표현들이 김감독의 주제와 충돌하고 있다. 파졸리니,
줄랍스키, 조도로프스키 같은 감독의 과격한 표현이 세상과 인간 자체에
대한 조롱과 공격을 담으며 주제와 조응하는데 비해 김감독의 경우엔 결국
진부할 정도로 따스한 희망과 사랑을 말한다.
"그렇게 과격한 인물들 사이의 합의점을 그리고 싶기 때문이다. 난
성선설을 믿는다. 사람들 가슴 속엔 여러 주머니가 있는데 어떻게
끄집어내느냐는 사회가 결정하는 것이다. 저열하고 파괴적이며 강렬하지만
결국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 내 목표다. 어둠을 그리지 않고
어떻게 밝음을 표현할 수 있나."
―김감독 영화의 배경과 인물을 극단적으로 정리하면 "세상은
정글이고, 남자는 늪 속의 악어이며, 여자는 착취되는 매춘부"일 것이다.
너무 단선적 이해가 아닌가.
"내 영화는 구상 속에서 추상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분법적이라기보다는
다분법적이다. 내 캐릭터들은 순수함과 위악성을 모두 가진 복합적
인물들이다."
―작품 속 여성 학대를 포함한 여성 캐릭터 묘사도 늘 마음에 걸린다.
여성을 '매춘부'와 '성녀'의 양극단 이미지로만 반복해 보는 게 아닌가.
"여자 대 남자의 구도로 보지 말고 갈등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로 보아주길 바란다. 내 여성 주인공들은 몸을
파는 게 아니라 몸으로 사는 것이다. 성기 구조만 다를 뿐이지 외로움은
같다. 외형적 직업에만 집착하는 몇몇 평론가들만 그렇게 교조적으로 이해할
뿐이다. 일부 여성 평론가들의 글은 피해의식 속에서 쓰여지는 것 같다.
4편을 만들도록 내 영화엔 관심조차 안 보이는 평론가들이 많은데 직무유기다.
홍상수 감독은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한 편으로 온갖 찬사와
함께 평가가 끝나버렸는데 내 데뷔작 '악어'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 두 영화에 대한 평단의 차별이 작품성 때문이라고 생각지 않는지.
"작품성이란 추상적인 것이다. 관객이나 평자가 보고 나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게 작품성 평가인데, 그런 면에서 난 공평한 기회를 갖지
못했다. 관객은 오감을 모두 동원해 본다. 이때 역겨움과 불쾌함까지도
관객의 소득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포함한 총체적 작품성을 평가한다면
'악어'가 못할 부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주류 바깥에서 작업을 하면서 느낀 한국 영화계 문제점은.
"제작비를 구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들고 늘 구걸하다시피 해왔다.
충무로에 돈은 넘쳐나는데 그 돈이 모두 스타 시스템의 구조 속으로만
흘러들어가고 있다. 저예산 영화는 무시하면서 말도 안되는 영화를 만들어
관객 몰이하는데만 관심이 있다. 스타 시스템은 배우 양성을 막는다는 데서도
악영향을 끼친다."
김감독이 언제나 쓰고 다니는 군모는 속이 겉으로 나오도록 뒤집혀져
있었다. "남이 질서를 미리 잡아놓은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사진=주완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