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을 즐겁게 하는 팝콘무비 연기도 재밌죠" ##
스타로 시작해 진정한 배우로 거듭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공인받은
성격 배우가 액션 스타로 탈바꿈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니콜라스
케이지 이력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새로운 액션물 ‘식스티 세컨드’ 중 한 장면.
‘대부’의 거장 프랜시스 코폴라의 조카인 그는 열일곱살에 배우 생활을
시작, 일찌감치 독특한 캐릭터 조형술을 과시했다. 구원을 갈구하는 듯
불안하게 떨리는 눈빛과 영혼의 안식을 찾는 듯 지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그려낸 것은 언제나 피곤한 날개를 접을 절벽의 휴식처 한 뼘을 찾지
못하는 아웃사이더였다.
이를 두개나 일부러 부러뜨려가며 열연했던 '버디'(84년)와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입에 넣고 씹었던 '뱀파이어의 키스'(90년) 일화는 그의
지독한 근성을 말해주는 전설이다. 87년 '문스트럭'과 '아리조나
유괴사건' 이후 '광란의 사랑'을 거쳐 성격파로 승승장구했던 연기
이력 정점은 그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95년)에서의 알콜중독자 역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기 희박한 산정(산정)에서 갑자기 몸을 돌려 신나는
행글라이더를 타고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스타들의 거리 '선셋대로'에
안착했다. '더 록'에 이어 '콘 에어' '페이스 오프'까지
블럭버스터에 연속 출연하며 액션 스타가 됐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런이란 비현실적 근육질 마초 영웅이 떠난 자리를 그는
'영웅적 행위를 펼치는 보통사람' 이미지로 액션 스타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7월초 국내 개봉을 앞둔 '식스티 세컨드'(Gone In The Sixty Seconds)로
그는 출연료 2000만 달러를 받는 초일류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그를 만난
곳은 그리스 아테네. 케이지의 스타 파워는 감독과 동료 배우들, 전세계
수백명 기자를 유럽의 남동쪽 끝으로 불러들일만큼 강했다. 그리스에서
'캡틴 코렐리의 만돌린'이란 작품을 찍고 있는 그의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자동차는 제게 자유와 활력의 상징입니다. 경주용 트랙에서 자동차를
신나게 몰면서 울고 웃으면 모든 고민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식스티
세컨드' 촬영이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동생을 살리려 24시간
안에 스포츠카 50대를 훔쳐야하는 대도(대도) 이야기. "안 세봐서 몇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자동차 수집에 미친 그에겐 더없이
즐거운 배역이다. 그는 특히 "동물적으로 거친 느낌이 좋은" 페라리
F40과 "소리가 환상적인" 람보르기니를 좋아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360도 회전을 비롯, 어려운 자동차 스턴트 연기 상당 부분을 직접 해냈다.
액션 영웅이 되기에 바빠 혹시 예전의 탁월한 아웃사이더 연기를 잊은
것은 아닐까. "절대 독립 영화를 잊지 않았다"고 잘라 말한 그는 "곧
저예산 독립영화 출연을 통해 과격하면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카데미상을 받았다고 특정 연기 스타일에
매몰되고 싶진 않다"고 밝힌 그는 "눈을 즐겁게 하는 팝콘 무비에
등장하는 일도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일 못지 않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영화는 음악과 같아서 어떤 날은 웅장한 베토벤 교향곡을 듣고 싶지만,
어떤 날은 50년대 흥겨운 로커빌리를 듣고 싶은 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액션 연기에 대해 그는 "주어진 구조와 규칙 안에서 빠른
시간 내에 움직여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연기와 다르다"며 "어릴 때
찰스 브론슨이나 스티브 맥퀸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난데없이 누군가 좋아하는 색깔을 물었다. "빨강과 노랑"이라고 답하는
그에게서 아닌 게 아니라 빨강의 정열과 노랑의 우울함이 함께 묻어났다.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기에 범죄자든 액션 영웅이든
그의 행동에 내재한 나름의 이유를 표현하려 노력한다." 느릿느릿 때론
더듬으면서 진지하게 답하는 그는 농담을 할 때 조차도 사려깊어 보였다.
(* 아테네(그리스)=이동진기자djlee@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