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지난 20일
밤 11시 모스크바의 크렘린궁에서 자동차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한
레닌대로「피브누쉬카」라는 독일식 맥주집에 모습을 드러냈다. 푸틴은
스웨터를 입고 있었으며, 블레어도 셔츠 차림이었다.

「피브누쉬카」는 일을 마치고 한 잔 하러 온 사람들도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붐빈다. 일반 손님들은 두 정상의 갑작스런 출현에 당황했다.
그러나 푸틴과 블레어는 일반 손님석에 앉아 독일 맥주와 러시아
보드카를 주문했다. 다른 손님들은 이 둘에게 때때로 호기심어린
눈초리를 던질 뿐, 자신들의 일행들과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며 생맥주를
즐겼다. 푸틴과 블레어 테이블에는 통역을 위해 주러시아 영국 대사만이
합석했다.

『토니, 자네 아는가. 러시아는 이런 유머가 있지. 러시아 남자들은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여자와 있을 때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푸틴의 농담에 블레어는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이 두 사람은 서로를
토니와 발료자(푸틴 이름인 블라디미르의 애칭)라고 격의없이 불렀다.
다음날 새벽 1시까지 맥주와 보드카를 즐겼다. 혹시 「요르쉬」(보드카와
맥주를 혼합한 러시아식 폭탄주)를 제조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호프집
여주인 베라 바리파티예바는 『종업원 말에 의하면,「요르쉬」는 만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블레어와 푸틴이 허물없는 사이가 된 데 대해, 크렘린궁의 한
관계자는 『블레어는 푸틴이 첫 정상회담을 가진 서방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올해만도 벌써 5차례 만난 인물이다. 두 사람은 서로 인간적
호감을 가진 친구다』고 말했다. 웃을 줄 모르는 옛 소련의 정보기관
국가안보회의(KGB)출신인 푸틴이 맥주집에서 농담을 하게 만든 블레어.
같은 40대로서 세대적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일까. 블레어는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모든 일이 이뤄지는 러시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모스크바=황성준특파원 sjhw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