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의 오락 프로그램들이 ‘막 가고’ 있다. 아예 시청자를 무시하는 이들 프로그램들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오로지 시청률만을 의식한 방송사간 경쟁이 계속되고 있으나, 방송위원회는 여전히 ‘솜방망이’만 휘두르고 있다.

TV 오락 프로그램들은 연예인들끼리 웃고 떠드는 모습들로 도배된 채, 온갖 저질스럽고 선정적인 내용들을 내보내고 있다. 채널권을 빼앗긴 시청자는 TV를 꺼버리든가 꼼짝없이 지켜보며 ‘바보’ 취급 당한다.

지난 11일 방영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MC 이경규가 바지를 벗는 장면을 내보냈다. 속옷 부분은 모자이크했지만, 바지가 발목에 걸려 있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방송 후엔 “작년 여름 여자 연예인 가슴을 노출시키더니 이번엔 남자 연예인 벗기기냐”는 시청자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17일 방영된 SBS ‘쇼! 무한탈출’은 그룹 god멤버들에게 중국요리 301가지를 먹도록 하고, 못할 경우 음식값을 내고 레슬링 선수와 대결한다는 동의서를 쓰게 했다. 토크쇼의 연예인 잡담은 ‘명예훼손 소송감’이다. 18일 SBS ‘남희석의 색다른밤’에서는 MC 남희석과 초대손님 박광현이 중견 연극배우 오현경을 “홍콩 영화에서 기억상실증 연기를 했던 배우 닮았다”고 손을 덜덜 떨어 흉내내며 낄낄거렸다. 인터넷에는 “출연자 자질이 의심스럽다. 화가 나서 채널을 돌렸다”는 항의가 올라왔다.

이쯤 되자 시민단체가 팔을 걷고 나섰다. 경실련 ‘미디어 워치’는 20일 ‘누구를 위한 오락인가’라는 보고서를 내고, “TV 오락프로그램이 시청자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MBC ‘목표달성 토요일’은 ‘스타 서바이벌’ 코너에 MC를 끼워줄 것인가를 두고 출연자들끼리 실랑이하는 것을 30여분이나 방영했다. ‘목표달성…’이나 KBS2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는 자막을 코너당 200~380개나 썼다.

일부 방송사는 이런 시청률 경쟁을 공개적으로 부추긴다. MBC는 최근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 상을 제정하고, 그 후보 선정 근거를 ‘시청률’과 ‘시청률 상승폭’으로 정했다. 이는 “공영방송이 ‘시청률 지상주의’를 선언한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방송진흥원 강만석 책임연구원은 “위성방송·케이블 등 다채널 시대를 맞아 방송의 상업화가 가속·확대될 전망”이라면서 “이럴 때일 수록 공영방송은 방송의 질을 지키는 ‘벤치 마커’가 돼야 하지만 오히려 함께 춤추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위원회는 여전히 무기력하다. 방송위는 올 초 “방송사 사전심의를 대폭 강화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으나 실제로는 심의 보고서를 한 건도 제출받지 못했다.

경실련 ‘미디어 워치’ 김태현 간사는 “방송위가 권력과 방송사로부터의 독립성을 의심받는 것은 스스로 위상을 세우지 못한 데 큰 책임이 있다”면서 “주어진 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강화, ‘프로그램 폐지’ 같은 처방도 써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