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뒤면 정년퇴임 고별강연을 앞두고 있지만 그의 이름은 여전히 동사
'읽다'와 '쓰다'의 주어처럼 보인다. 문학평론가인 서울대 국문과
김윤식(65)교수. 최근 출간된 '김윤식 서문집'(사회평론)은
그동안 그가 펴낸 국내외 저작물 100여권의 서문만을 모아 만든 책이라고
해서 화제가 됐지만, 그나마도 모든 저술을 다 합친 것은 아니었다.
한국 지성사에서 유례없는 생산력을 보여주고 있는 그의 '문학적
자궁'은 용산구 서빙고동 한 아파트의 8평 남짓 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 방안에 대한 약간의 묘사가 필요할 듯 하다. 한 마디로, 가운데
책상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책, 이라고 말하면 편하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창을 제외하고는 모든 벽면을 책장이 차지했고, 방바닥도
동선을 빼면 책들이 누워있다. 창 밖 베란다에도 앵글로 짠 책장을
세워 놓고 소설과 시집을 꽂았다. 그나마 그가 직접 썼던 100권 넘는
책들은 책장도 차지하지 못하고 출입문과 책장 사이 빈틈에 바닥부터
천장까지 쭉 쌓아올려졌다. 책들이 몇 권 정도 되는지는 그도
"모른다"고 했고, 보는 사람도 전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인문, 사회과학 등 다른 분야 책들은 학교 연구실에 있고, 이 방안에
있는 책들은 모두 문학관련 서적"이란다. 분류 기준은 뭘까. "창문
오른쪽 벽면부터 시계방향으로 봅시다. 뭐, 근대사상서, 미당관련 서적,
한국문학과 해외문학 비교, 일본 평론서, 소설론, 문고본, '백조'
'금성' 등 일제시대 문학잡지, 우리 평론집…". 각 분류기준
하나하나가 거의 책장 하나씩을 차고 앉았다.
그의 서가는 근대문학 자료의 보고다. 31년 집단사에서
나온 '카프시인선', 학예사에서 나온 임화의 '문학의
논리', 김기림의 '시론', 이태준의 '문장강화', 김동리의
'무녀도' 초판본 등을 척척 꺼내주는데, 보는 사람이
오히려 불안하다. 만지면 자칫 부스러져 버릴 것처럼 낡고 오래된
고서이기 때문이다. 책장 위에 놓인 서랍장 하나를 열자 김구용,
최인훈, 김현의 육필원고가 쏟아져 나온다. 그는 "사실 요즘은 영인본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이렇게 모아 둘 필요는 없다"면서 "단지 내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자료들이기 때문에 끼고 사는 것"이라고 했다. 또
고바야시 히데오의 14권짜리 평론전집, 신조선집에서 나온 에도 준의
'소세키와 그의 시대(수석とその시대)를 뽑아들더니 "이 사람들은
1급이오"라고 짧게 한 마디를 던진다.
한 달이면 수십 권이나 쏟아져나오기 때문에 젊은 평론가들도 벅차한다는
문학월평을 그는 수십 년째 계속해 오고 있다. 비결이 궁금해 "몇 시에
일어나시냐"고 에둘러 물었다. 새벽 3시 기상. 그때부터 줄곧, 내리
읽는다. 오전 9시부터 낮 12시까지는 '쓰는' 시간. 오후에는 볼 일을
보거나 쉰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했다.
문단 경력 40년의 이 평론가는 요즘 "읽고, 쓰면서 평생을 소비하는 것
보다 직접 몸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하면서 부대꼈어야 하는게
아니었을까"하는 후회가 든다고 했다. 하지만 곧 "소설이 나오면 먼저
한 번 읽고, 월평 쓰기 전에 줄쳐가며 한 번 더 읽고, 다 쓰고 나서 틀린
데 없는지 마지막으로 본다"며 한 번 더 기를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