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사모'는 영화배우나 감독의 팬클럽이 아니다. '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명칭 그대로 올 봄 개봉한 송해성 감독의 영화
'파이란'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의 집합체이다. 이 영화는 삼류
건달 강재(최민식)가 위장 결혼한 중국 여성 파이란(장백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례를 치르러 가면서 겪는 일들을 다룬 드라마. 스타의 팬
모임이 아니라 한 편의 영화 자체가 애호가들 모임을 자생적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작년 '박사모'(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를 효시로, 현재 '파사모'와 '번사모'('번지점프를
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만이 활동하고 있을 뿐이다.
'파사모'가 결성된 것은 지난 4월28일. 바로 '파이란'의 개봉일이다.
영화에 크게 감동받은 공도식씨(25·한국외국어대학교 체코어과4년)가
곧장 인터넷에 둥지(cafe.daum.net/failancafe)를 마련했다.
회원들로부터 '주인장'으로 불리는 공씨는 "영화를 보고나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고 밝혔다.
현재 등록된 회원수는 1300명이 넘는다. 시작은 온라인이었지만 곧
오프라인에서도 활발한 모임을 갖게 됐다. 6월2일 100여명의 회원이 모인
창단식에는 송해성 감독과 주연 배우 최민식씨를 비롯한 영화 관계자들도
30여명 참석했다. 현재 한달에 한번씩 좋은 영화를 골라 함께 보는
'정모'(정기모임)를 갖고 수시로 비공식 모임도 갖는데,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혈 회원은 30여명 정도이다. '파사모'는 7월 중순 이
영화를 찍었던 인천의 촬영지들을 순례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다.
'파이란'은 이미 비디오까지 출시됐지만, '파사모'회원들은 11월
중순에 극장을 빌려 이 영화의 필름 상영회를 열 계획도 갖고 있다.
회원들은 지난 6월22일 종영된 이 영화의 연장 상영을 지속적으로 요청,
서울 시네코아에서 5일간 앵콜 상영을 끌어내기도 했다.
이 모임 운영자 중 한 명인 문경희씨(24·그래픽 디자이너)는 "파사모는
'파이란 증후군'을 앓고 있는 중독자들 모임"이라며 웃었다. 그에
따르면 이 증후군의 전형적 증세는 '파이란'을 반복 관람(회원
상당수가 이 영화를 극장에서만도 5회 이상 보았다)하고, 인터넷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번씩 들락거리며, 자기 돈 들여가면서 영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배우 최민식씨는 "창단식 때 참석해 새벽 5시까지 술을 마시며 영화의
여운을 나눴는데 참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 모임에
참석한 뒤 영화를 대충 만드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토로한 그는 "회원들이 '파이란' 뿐 아니라 좋은 한국영화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명해준다면 한국영화의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