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나삼남:(48세: 실직 가장)

김숙자:(45세: 삼남의 아내)

나민정:(20세: 삼남의 대학생 딸)

사내:(47세: 실직 가장)

강도:(35세)

경찰:(40)

40대 아줌마:(사내의 아내)

(때) 현대

(곳) 중산층 아파트 거실

(무대)

아파트 거실 분위기.

왼쪽 벽에 현관문이 있고, 중앙 벽에는 “家和萬事成”이란 액자가 걸려 있다. 그 옆에 안방 문이 보인다.

오른 쪽 벽에는 주방을 상징하는 커튼이 쳐져 있다.

무대 중앙에 긴 소파 놓여 있고, 그 앞에 탁자 놓여 있다.

탁자 위에 자명종 시계, 소주병, 오징어 다리 몇 개 놓여 있다.

막이 오르면 운동복 차림의 삼남, 긴 소파에 노숙자처럼 신문을 덮고 코를 골며 자고 있다.

코를 골 때마다 신문지가 들썩인다.

탁자 위에 자명종 시계, 소주병, 오징어 다리 몇 개 놓여 있다.

이때, 자명종 시계 요란하게 울린다.

삼남:(눈을 감은 채 왼손을 뻗어 자명종 시계를 끄고 다시 신문지를 덮고 잔다.)

이번에는 탁자 밑에서 자명종 소리 들린다.

삼남:(역시 눈을 감은 채 왼손을 뻗어 탁자 밑을 더듬으며) 아... 아이고, 알았어.... 조금만 더 자자..... (탁자 밑에서 자명종 시계를 꺼내 끈 다 음, 다시 신문지를 올려 덮은 다음, 코를 골며 잔다.)

또 다시 자명종 소리 요란하게 들린다.

삼남:(신문지를 박차고 벌떡 일어나 머리맡에서 자명종 시계를 꺼내며) 알았어! 출근하면 될 거! 아냐! (하고 안방 쪽으로 걸어가려다 멈춰서 고 관객을 보며) 예전 같으면 나의 일상은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왜냐면 난 잘 나가는 모 그룹, 개발부 야간 근무조의 조장이었으니까 요. 하지만 지금은 명퇴 당해 그럴 필요가 없죠.... 대신에 전 또 다른 일과를
준비하죠. 무슨 일과냐고요? 잠깐만 요. (주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머리에 수건을 쓰고 허리에 앞치마를 두른 삼남, 먼지떨이와 비를 들고 나온다.

삼남:(중앙에 서서) 아내 맞이. 딸내미 맞이 청소를 하는 것이지요.... 쪽 팔리게 말입니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이것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이고, 푸념할 시간 없군요. 오늘은 토요일 이니까 두 분께서 일찍 귀가를 하니까 서둘러야 겠네요.

여기저기 먼지를 털고 쓴 다음, 걸레질을 한다.

서글픈 음악 이어진다.

청소를 마친 삼남, 주방으로 들어가 수건과 앞치마를 벗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잠시 후, 양복 차림으로 나와 머리를 다듬은 다음, 소파에 앉는다.

삼남:(관객을 보며) 어때요. 저도 때 빼고 광내니까 아직은 봐 줄만 하죠? 근데 웬 양복 차림이냐고요? 아네. 이건 우리 마눌님께서 궁상맞게 있지 마라고 해서 이런 겁니다.

초인종 소리

삼남: 아참, 마눌님께서 퇴근 하셨나 보군요. (칼같이 일어나며) 다...당신 이야?

야쿠르트 아줌마:(off) 아니요. 야쿠르트 아줌만 데요. 수금 때문에....

삼남: 아네. 수고하십니다. 하지만 우리 집사람이 아직 안 왔는데요.

야쿠르트 아줌마:(off) 그럼, 아저씨가 좀 주시면 안돼요?

삼남: 글쎄요. 전 결재권자가 아니라서....

야쿠르트 아줌마:(off) 그래요. 그럼, 내일 온다고 말씀 좀 드려주세요.

삼남: 네..... (관객을 보며) 야쿠르트 말이 나왔으니까 말인데 전, 지금껏 구경도 못했습니다. 두 개가 배달되는데 마누라와 딸내미가 먹는가 봅니다..... 처음부터 그랬느냐고 요? 아닙니다. 명퇴 당하기 전에는 줘서 먹었죠. 그런데 명퇴 당하자 생활비를 줄인다며 하나를 줄이더 군요. 그 뒤 야쿠르트 구경도 못했습니다. 서운하더군요. 야쿠르트를 못 먹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날 가장 생각한다고 믿었던 아내가 속을 보이는 것 같아서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야쿠르트 안 먹는다고 해서 속이 나쁜 것은 아니고, 시원하게 일도 잘 보니까 요.... 그래도 이건 아무 것도 아네요. 이것만은 말하려고 하지 않으려 고 했는데, 이왕 버린 몸이니까 할래요.... 저 지금.... 안방에서.... 모 녀한테 쫓겨나.... 이 소파에서
노숙하고 있어요.... 새벽이면 추워서 딸내미 방을 쓰겠다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안 된다고 해 하는 수 없 이.... 하지만 옷장만은 쓰라고 해.... 이렇게 옷만 갈아입지요..... 이 모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어이구..... (깊이 한숨을 내쉰다.)

초인종 소리

삼남:(옷매무새를 다듬고) 다...당신이야?

사내:(소리) 관리 사무소에서 가스점검 나왔는데요?

삼남: 예. 잠깐만 요. (현관문을 열어주고 시선을 주방에 둔 체) 주방은 저곳이에요.

검은 작업복 차림으로 들어서는

사내:(품속에서 칼을 꺼내 다가와 목에 대며) 난 주방이 아니라 안방으 로 가고 싶은데?

삼남:(놀라) 안방은 왜요?

사내: 당신한테 긴히 할말이 있어서...... 아니 부탁 좀 하려고.

삼남: 하지만 전 껍데기나 다름없는데....

사내: 상관없어.

삼남: 그럼, 여기서 하시죠. 지금 우리 집에는 나 밖에 없으니까.

사내: 그래.... 그렇다면 굳이 들어 갈 필요가 없겠구먼.

삼남: 무슨 부탁을 하시련 지 모르지만 말씀하시죠.

사내: 당신 지금 나 어떻게 보이나?

삼남: 글쎄요? 무늬는 강도 같은 데?

사내: 그럼, 어떻게 해야지?

삼남: 그야! 퇴치를 해야 겠죠.

사내: 어떻게?

삼남: 목숨을 걸고 반항하던지. 아니면 당신이 방심하는 틈을 타서 경찰 에 신고해야 겠죠.

사내: 그런데 왜 반항하지 않나? 자존심 상하게?

삼남: 그...그거요.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으니까요.

사내: 그건 무슨 말이야?

삼남: 주고 사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거죠.

사내: 그럼, 당신이 세상사를 초월한 도사라도 된다는 말이야?

삼남: 그런 것조차 관심이 없수다.

사내: 하지만 지금부터는 나에게 관심을 가져줘야 겠어.

삼남: 어떻게?

사내: 지금, 당장 ‘강도야!’ 소리치며 경찰에 신고를 하는 거야?

삼남: 당신 지금 내가 유치원생인줄 아슈?

사내: 그건, 무슨 소리야?

삼남: 내가 당신이 시킨다고 따라 할 줄 아느냐 이 말이요.

사내: 그럼, 이 흉기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

삼남: 마음대로 하슈. 죽으면 그만이니까.

사내: 당신 정말 갈등 생기게 할거야? 당신 정말로 협조 안 하면 당신을 헤칠지 몰라.

삼남: 글쎄 마음대로 하슈.

사내: 당신! 정말로 죽고 싶다는 거야?

삼남: 물론이지.... 운이 없어서 못 죽었으니까.

사내: 그럼, 죽으려고 했단 말이야?

삼남: 물론이지. 돈 안들이고 죽으려고 한강철교를 기어오르다가 미끄러 져 다리를 삐었고, 한강 선착장에서 다이빙했다가 하필이면 한강오물 청소하는 특전사 환경감시단에게 발견 돼 살았지. 어디 그뿐인 줄 알 아. 남산 입산금지 구역에 몰래 기어 들어가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맸 는데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바람에 실패를 했지.... 이것뿐만 아니야 더 있어.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확실하게 죽으려고 달려오는 차에 뛰 어들었는데 하필이면 ABS를 장착한 차에 걸려 깔리기 일보직전에 멈춰 서는 바람에 허사로 돌아갔지.... 이런 내가 절호의 찬스를 놓칠 것 같아.

사내: 그럼, 날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거야?

삼남: 좌우지간 이번만은 실수가 없길 바래.

사내: 왜, 그렇게 죽으려는 건데?

삼남: 사는 게 팍팍해서?

사내: 팍팍하다니? 그걸 느낄 여유가 있나? 당신 직장에 안 나가?

삼남: 명퇴하기 전까지는 있었지.

사내: 그럼, 지금은?

삼남: 보다시피..... 하지만 완전히 노는 것은 아니야.

사내: 그럼, 부업이라도 한다는 거야?

삼남: 부업이라기 보다는 전업주부 노릇을 하고 있지.

사내: 사나이가 오죽 못 났으면?

삼남: 그렇게 넘겨 짓지 마. 난 누가 뭐래도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니까.

사내: 니기미, 여기 ‘노벨 평화상’ 후보감 나오셨구먼.

삼남: 비웃어도 어쩔 수 없어 그게 나의 신조니까. 그건 그렇고 노형도 보아하니 나이가 나와 비슷한 거 같은데?

사내: 허긴 그렇구먼.....

삼남: 그렇다면 한가지 물읍시다. 원래 절도 업이 천직이요?

사내: 니기미, 어떤 놈이 미쳤다고 도적질을 천직으로 삼아?

삼남: 그럼, 노형도 나같이 명퇴하고?

사내: 그...그래요. 시발.....

삼남: 근데 하필이면 절도 업에 발을 들이셨소?

사내: 그...그건, 마누라와 헤어지기 위해서야..

삼남: 마누라와 헤어지기 위해서라뇨?

사내: 두들겨 패기에 진력이 나서.

삼남: 그렇다면 폭력 남편이라도 된다는 거요.

사내: 쫑알대는데 그럼, 참어!

삼남: 그...그래요.... 그럼, 마누라가 가만히 있어요?

사내: 너 죽고 나죽자고 하지!

삼남: 그러면 어떻게 하세요?

사내: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도록 팬 다음 요... 요술 방망이로 녹여버리 지. (하며 사타구니를 톡톡 친다.)

삼남: 그러니까 실컷 두들겨 패고, 섹스로 마무리 진단 말이요.

사내: 그...그렇다니까?

삼남: 그럼, 마누라가 안 도망가요?

사내: 처음에는 두들겨 맞고 못 산다고 기어나가더니만 쪼르르 다시 기 어 들어오더구먼..... 그리고 이제는 맛들였는지... 일부러 시비를 걸 어 얻어맞고.... 그걸 요구한다니까?

삼남: 정말 알 수 없군요.

사내: 그...그렇다고 봐야지. 모르긴 해도 매맞고 사는 여자들... 말은 애 들 때문에 참고 산다고 하지만 이런 뭔가가 있지 않나 싶어.....

삼남: 정말 알 수 없는 게 인간이구먼.

사내: 그렇다니까. 그래서 이제는 징글맞아, 이렇게 사고 치고 들어가려 고 이 업종을 택한 거야.....

삼남: 당신도 역시 사는 게 팍팍하구먼.....

사내: 근데 당신은 나와는 정반대 인 것 같수? 전업주부로 나서는 것 보 면?

삼남: 부인은 안 겠소. 명퇴 뒤 무늬만 남편이고, 아빠니까?

사내: 그럼, 마누라와 자식이 당신을 왕따라도 시킨다는 말이야.

삼남: 니기미, 이런 말하기는 쪽팔리지만 손찌검까지....

사내: 설마하니?

삼남: 설마가 아니라니까?

사내: 그렇다면, 협상의 실마리를 잡았군.

삼남: 실마리를 잡다니?

사내: 내가 보기에 당신은 가족들에게 가장으로서의 위엄을 잃어버린 것 같으니까, 당신 가족이 보는 앞에서 날 멋있게 응징해 포박한 다음 경찰에 신고를 하는 거야. 어때? 기발 나지?

삼남: 그러니까. 연극을 하잔 말이야?

사내: 그렇지. 그러면 피차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냐?

초인종 소리 + 발자국 소리

사내:(진지하게) 가족들이 오는가 본데.... 그럼 난 베란다를 타고 침입한 거요? (주방으로 달려가 숨는다.)

삼남: 연극이라.....? 그것도 재미있겠구먼....

연달아 우는 초인종 소리

숙자:(off 버럭) 문 열어!!

삼남: 다... 당신이야?

숙자:(off 날카롭게) 그럼, 나말고 누가 있어! 빨리 문 열어!

삼남:(허겁지겁) 아....알았어?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연다.)

숙자:(들어서며) 도대체 집구석에서 무얼 하기래 이렇게 늦게 열어? (코 트를 벗는다.)

민정:(째려보며) 또 케이블 TV 연속극보고 있었던가 보지....

삼남:(코트를 받으며) 미...미안해 내일부터는 빨리 열게.... (부드럽게) 근 데 두 사람이 같이 오네?

숙자: 같이 들어오면 안 돼나? (소파에 앉는다.)

삼남: 그렇다기 보다는?

민정:(코방귀) 흥! (안 방으로 들어간다.)

삼남:(무안해) 식사들은 했어.

숙자:(마지못해) 먹었어!

삼남: 그럼, 목욕물 받을까?

숙자:(차갑게) 됐어? (소파에 앉는다.)

삼남: 그럼, 안마라도 해줄까? (다가가 코트를 소파 위에 얹은 다음 어깨 에 손을 얹는다.)

숙자: 글쎄 됐다니까? (뿌리치고 일어나 안방을 향하며) 나 씻고 잘 테니 까 저녁은 알아서 먹어.....

삼남: 그...그래.... 쉬어....

숙자:(목운동을 하며 안방으로 들어간다.)

삼남:(안도의 한숨을 쉰다.)

방안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리며 잠옷 차림으로 화장품을 들고 나오는

숙자:(째려보며) 누가 말도 없이 로션 쓰라고 했어?

민정:(자기 방에서 나오며) 왜 또 그래!

숙자:(밀치며) 조용히 해봐.... (삼남을 보며) 왜 썼어?

삼남: 설거지를 하니까 주부 습진이 생겨서?

숙자: 뭐야? 그런다고 써?!

삼남: 비누로 몇 번이고 씻어도 가렵고 해서.....

숙자: 당신, 이 로션! 내가 얼마나 아끼는 것인지 줄 알아?

삼남: 아...알아. 당신 친구, 옥자 씨가 파리 여행가서 사왔다며?

숙자: 그걸 아는 사람이 마구 써?

삼남: 미...미안 해.... 다신 안 쓸게.....

숙자: 제발! 그 미안하다는 소리 그만 할 수 없어.

삼남: 아...알았어?

숙자:(가슴을 치고 돌아서며) 어유! 어유! 내가 못 살아! (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

민정: 어유! 어유! (역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삼남:(주위에 있는 쓰레기통을 걷어찬다.)

숙자:(문을 열고 나오며) 당신 지금 뭐 하는 거야?!

민정:(따라 나오며) 왜 그래!

삼남:(안절부절 헛기침만 한다.)

숙자: 내말 안 들려? 지금 뭐 하는 짓이냐고?

삼남:(조심스럽게) 주방으로 가려다가 그만 나도 모르게 쓰레기통을 넘어 드리고 말았어.

숙자: 뭐야? 그러니까 무심코 넘어뜨린 쓰레기통 소리가 그토록 크게 들 렸단 말이지? (하며 넘어진 쓰레기통을 주워든다.)

삼남:(애써 시선을 피하며) 으....응!

숙자:(다가서며) 이 인간이 점점!.... 날 속이려 들어!.... 이게 이렇게 해야 소리가 크지! (하며 쓰레기통으로 머리를 때린다.)

삼남:(머리를 매만지며 버럭) 당신 정말 왜 그래?

숙자:(노려보며) 뭐가 어때서?

삼남:(울먹이며) 다시는 손찌검은 안 하겠다고 했잖아!

민정:(가슴을 치며) 어유! 어유! (다시 안방으로 들어간다.)

숙자:(다시 쓰레기통을 들며) 누가 먼저 시작했는데?

삼남: 그럼, 내가 시비를 걸었단 말이야?

숙자: 물론이지! 내가 조금 서운한 소리 좀 했다고 쓰레기통을 걷어 찼잖 아!

삼남: 그...그건....

숙자:(쓰레기 통으로 때릴 듯이 하며) 인간이 왜 이래 좀 솔직해봐...

삼남:(눈을 감는다.)

숙자: 내가 그렇게 아니꼽고 치사하면 때려 봐! (얼굴을 디민다.)

삼남:(묵묵히 고개를 조아린다.)

숙자:(손끝으로 이마를 밀며 어린애 꾸짖듯이) 당신은 더 이상 남자가 아 냐?

삼남:(헛기침을 한다.)

숙자:(다시 머리를 밀며) 왜? 존심 상해?

삼남: .......

숙자:(또다시 손끝으로 머리를 밀며) 사타구니에 물건만 찼다고 해서 남 자인 줄 알아!

삼남: ......

숙자: 남자란 말이야! 여자를 감동시킬 줄 알아야 한다고! 다시 말하면 넘치는 힘으로 깔아뭉갤 줄 알아야 한단 말이야.

삼남: ......

숙자: 동물의 왕국에서 안 봤어! 수사자가 앙탈하는 암사자를 길들이기 위해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들어 짓누르던 걸....

삼남: ......

숙자:(오른 손을 들어 목에서 가슴을 쓸어 내리며) 그... 순간, 암컷은 희 열을 느끼지..... 나를 지켜주는 것은 바로 당신이라는 믿음에 .... 그건 왜 그러는지 알아?.... 그..그건 여자는 누군가 정복해주기를 바라는 노예 근성이 있어서야.... 근데 당신은 뭐야?....

삼남: .......

숙자: 허구헌날 미안하다.... 내가 잘못 했어 뿐이야?

삼남: 그....그건.....

숙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삼남의 이마를 치켜올린다.)

삼남:(한숨을 쉰다.)

숙자: 좋아 그러면 따져보자고, 당신이 ‘미안해.’ ‘내가 잘못 했다’고 해 서? 가정에 평화가 왔어....

삼남: ......

숙자: 말해 봐.... 이....이게 평화냐고?!

삼남: ......

숙자: 당신은 내가 당신이 돈을 못 벌어서 이러는 줄 알겠지?

삼남:(살며시 고개를 들어 쳐다본다.)

숙자: 천만에 말씀이야? 돈은 당신이 명퇴하기 전까지 벌 만치 벌었어.... 나, 당신 고생한 줄 알아.....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가정만 위해서 희생했다는 걸.....

삼남:(고개를 조아린다.)

숙자: 가난한 집에 셋째 아들로 태어나 가난의 한이 맺혀 우리 가족만은 가난에 허덕이지 않겠다고 남보다 열심 뛰었다는 거....

삼남:(훌쩍인다.)

숙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일당의 1.5배를 더 받으려고 야간 근무를 자 처한 것도..... 그 덕에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우리가 이렇게 아파트도 장만하고.... 자가용도 굴리고....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지.... 그래서 난 당신이 명퇴 당했을 때 결심했어.... 이제 당신을 편하게 쉬게 해 주겠다고.... 당신도 그때 생각나지? 서운한 눈빛 한번 안 보였지..... 하지만
당신 이것을 몰랐어......

삼남:(살며시 고개를 든다.)

숙자:(점점 격하게) 당신은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거야?

삼남:(물끄러미 쳐다본다.)

숙자:(애써 진정하며) 좋아. 그...그동안은 일 때문에 그렇다 쳐! 하지만 지금은 뭐야? 허구헌날 놀면서... 날 한번이라도 안아 줘봤어?

삼남:(헛기침을 한다.)

숙자: 당신이 허구헌날 회사 일에 매달려 야간 작업을 할 때, 집에 있는 난 어쨌는 지 알아....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뒤척이며 날을 세웠다 고....

삼남:(고개를 조아린다.)

숙자: 그렇다고 내가 남자 품이 그리워서 환장 난 년은 아냐? 다른 집의 부부처럼 그렇게 하고 싶은 것 뿐이야... 근데 뭐야?! 순전히 무시만 하고 있잖아..... 내 창피해서 이런 말까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오늘 동창회 가서 어떤 줄 알아? 당신도 알 거야. 못 생기고 볼품 없 는 진숙이?

삼남:(고개를 끄덕인다.)

숙자:(버럭) 근데 걔가 늦둥이를 가졌더라고?

삼남:(놀라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숙자: 그런데 당신은 뭐야? 회사 다닐 때는 피곤하다며 외면했고, 명퇴하 고선 잘 안 된다며 외면만 하고 말이야......

삼남:(한숨과 함께 고개를 조아린다.)

숙자: 그래서 난 당신이 남성 기능을 상실한지 알았지.... 그래서 나름대로 보약도 지어 먹였어..... 하지만 반응은 없었지..... 순간, 어릴 적 선창 가에서 울부짖던 한 아주머니 생각이 나더구먼.... 어부인 남편이 폭 풍우를 만나 죽은 줄 알았는데 돌아온 거야...... 처음에 아주머니는 기진맥진한 그 아저씨를 얼싸안고 기쁨에 눈물을 흘리더구먼.... 그러 나 그것도
잠시.... 누군가가 물고기들이 어부의 생식기를 쪼아먹어 버렸다는 말에 아주머니는 이렇게 통곡하더라고.... "아이고 살아 있 으면 뭣해.... 아이고!" 하고 말이야.... 그때 당시 난 몰랐지.... 하지만 난 당신을 보고 그 뜻을 알았어....

삼남:(헛기침을 한다.)

숙자:(노려보며) 당신 남자 맞아?....

삼남: 그...그걸 말이라고 해?

숙자: 그런데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삼남: (고개를 조아린다.)

숙자:(노려보며) 내가 왜 가난한 당신을 택했는 지 알아?

삼남: 그...글세?

숙자: 부잣집 녀석이 줄기차게 날 따라 다니며 목을 맸어도 따돌린 이유 를 아느냐고?

삼남: 그...글세?

숙자: 당신, 생각나? 내가 당신 자취방에 놀러 갔을 때?

삼남: 그...그때....

숙자: 다짜고짜 당신이 야수처럼 달려들어 날 쓰러뜨리고 나의 순결을 앗 아가 버렸지?

삼남: 그...그랬었나?

숙자: 그 날 난 당신을 선택했지? 당신이 나의 순결을 앗아갔기 때문은 아니야? 당신의 야성에 마음이 끌린 거야!

삼남:(헛기침을 한다.)

숙자: 근데 이...이게 뭐냐고? (양어깨를 잡고 흔든다.)

민정:(안방에서 나오며 버럭) 도대체 왜들 그래, 책 좀 보자고!!

이때, 주방 쪽에서 와장창하는 소리 들린다.

숙자. 민정 놀라 쳐다본다.

삼남, 머리를 쓸어 올린다.

복면을 한,

강도:(칼을 들고 후닥닥 나오며) 꼼짝마!

숙자. 민정:(놀라) 아이고 아부지! (하며 삼남 뒤에 숨는다.)

삼남:(버럭) 이 자식이! 어디를 겁없이 들어 와서 꼼짝 마라야?! (후닥닥 달려들어 칼 든 손을 후려 잡은 다음, 이마로 받아 쓰러뜨린다.)

강도, 칼을 떨어뜨리고 바동거린다.

삼남, 강도의 가슴에 올라 타 주먹질을 한 다음, 뒤집어 팔을 꺾고, 자신의 넥타이를 풀어, 손목을 꽁꽁 묶는다.

숙자와 민정, 삼남의 민첩한 행동에 놀라 넋을 잃고 쳐다본다.

삼남:(날카롭게) 뭐해! 빨리 경찰을 부르지 않고!

숙자:(고개를 흔들며) 아...알았어요.

바들바들 떨며 탁자로 다가가 전화 수화기를 든다.

민정도 떨며, 숙자 뒤를 따른다.

강도, 신음 소리를 낸다.

삼남:(숙자와 민정 눈치 못 채게 강도 귀에 대고) 너무 심하게 대한 거 용서해..... 연기란 리얼하게 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아서 나 도 모르게.... 자네 복면설정도 최고야!.... 고마워....

강도:(여전히 신음 소리만 낸다.)

숙자, 많이 놀란 듯 수화기를 들었지만 말을 못하고 바들바들 떨고 있다.

민정도, 떨고 있다.

삼남:(버럭) 뭐 하는 거야? 신고 안 하고!

숙자:(그때서야) 아.... 알았어요. (다이얼 버튼을 누른 다음) 여...여보세 요. 집에 강도가 들었어요..... 여기는.... 여기는.... (민정을 보며) 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니가 얘기해라? (수화기를 건넨다.)

민정:(받아 들고) 여....여보세요..... 여기는 효자동 행복 아파트 가동 107 혼데요! 빨리 와 주세요.... 강도가 들었어요!.... 강도는 우리 아빠가 잡으셨어요. 네. 그럼, 기다릴게요.

삼남:(강도를 팽개치고 손을 털고 일어나며) 수...수고했어.

숙자:(조심스럽게) 여...여보 다친 데 없어요?

삼남:(뻐기며) 보다시피..... 많이들 놀랐지?

숙자. 민정: 아....아뇨.

삼남: 미안 해.... 청소하면서 베란다 문을 열어 놓은 걸 깜박했어.

숙자: 그...그럴 수 있는 거죠. 잡았으면 그만이죠.

삼남: 이해해 줘서 고마워?

숙자: 고...고맙긴 요. 앞으로 제가 할게요.

민정: 아빠, 저도 이제 아빠 말 잘 들을게요.

삼남: 고맙다...... (숙자와 민정을 보며) 내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 가족이란 말이야. 합창과 같은 거야? 모두가 사랑으 로 충만 된 한마음이 됐을 때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중 누구 하나라도 딴 마음을 먹는다면 그 건 엉망이 되고 만다는 말을...

그래선 지, 그게 늘 가슴 아팠어.

숙자. 민정: 죄....죄송해요. 이제부터는 다시는 안 그럴 게요.

삼남: 죄송하긴..... 지금이라도 화음을 맞추었으니까 됐어.

초인종 소리

삼남:(현관을 보며) 누구세요?

경찰:(소리) 경찰입니다.

숙자:(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며) 어서 오세요?

경찰:(권총을 빼들며) 범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민정:(자랑스럽게) 저기요! 우리 아빠가 붙잡아 묶어 놨어요?

경찰:(긴장돼) 그...그래요. (하며 복면을 쓴 채 누워있는 강도에게 다가 간다.)

삼남, 숙자, 민정도 다가간다.

경찰, 긴장 풀 듯이 숨을 내쉬고, 강도의 복면을 벗긴다.

삼남:(놀라) 아니 이럴 수가!

경찰:(보며) 아는 사람이에요?

삼남:(고개를 흔들며) 아...아니요.

이때 초인종 소리

민정:(현관으로 다가서며) 누...누구세요?

40대 아줌마:(E 급하게) 문 좀 열어 주세요?

민정: 왜요? 문 열렸는데요?

현관 문 열리며 들어서는

40대 아줌마:(급하게) 실례합니다만 여기 혹시 40대 후반의 아저씨 한 분 안 들어왔어요?

경찰:(보며) 들어온 사람이라고는 여기 이 강도 밖에 없는데요? 확인해 보세요? (강도를 일으킨다.)

삼남:(안절부절 어쩔 줄 모른다.)

40대 아줌마:(강도를 쳐다보더니) 아...아닌데요.

삼남:(안절부절 어쩔 줄 모른다.)

숙자: 근데 아저씨가 왜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는 거예요?

40대 아줌마:(한숨쉬며) 이런 말하기 창피하지만 우리 그이, 정신이 오락 가락 해요.

숙자. 민정. 경찰:(놀라) 그...그래요!

40대 아줌마:(울먹이며) 얼마까지만 해도 유명그룹의 촉망받는 이사였는 데 명퇴 당한 뒤론 정신이..... 글쎄 잠깐 슈퍼 가는 사이에 칼을 들고 나갔지 뭐예요.

숙자. 민정. 경찰:(놀라) 뭐...뭐라고요?!

40대 아줌마: 그..... 그래서 그이를 찾으려고 동네방네를 찾아다니는데 한 아주머니가 이 집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경찰: 그럼, 경찰에 신고 하셨어요?

40대 아줌마:(울음을 터뜨리며) 네.... 아저씨! 제발 그이 좀 찾아주세요. 전 그이 없으면 못 살아요?

경찰:(침착하게) 아...알았습니다.

이때, 주방에서 머리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나오는

사내:(놀라 둘러보며) 다...당신들 누구야! 지...지금 남의 집에서 뭐 하 는 거야?

삼남. 숙자. 민정. 경찰. 40대 아줌마, 놀라 쳐다본다.

40대 아줌마:(울음을 터뜨리고 다가서며) 여보! 이렇게 말도 없이 마음대 로 돌아다니면 어떡해! 집에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사내:(영문 몰라) 도...돌아다니다니?

40대 아줌마:(버럭) 아이고, 못 살아! 빨리 나오지 못해! (하며 사내의 귀를 잡고 현관으로 향한다.)

삼남. 숙자. 민정. 경찰. 놀라 멍하니 쳐다본다.

사내:(끌려가며 버럭) 당신! 미쳤어! 우리 집 놔두고 어디를 가는 거야?

40대 아줌마:(버럭) 조용히 해! 인간아! (사내를 거칠게 현관 문밖으로 밀치고 고개를 조아린 다음 나간다.)

사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사내:(소리) 왜 때려! 말로 하기로 했잖아!

경찰:(강도에게) 어떻게 된 거야?

강도:(조심스럽게) 베... 베란다 문이 열려 있기래 한 건 하려고 들어서 는데, 저 자식이 먼저 들어 와 안을 살피고 있기래 칼자루로 뒤통수 를 때려 기절 시켜버렸죠?

경찰: 그리고 안으로 침입하다, 이 용감한 시민에게 격투 끝에 붙잡혔고?

강도: 네..... 저... 이제껏 이 생활하면서 저 아저씨 같이 겁없이 대들어 막무가내로 후려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아저씨 혹시 해병대 출신 이세요?

경찰:(보며) 맞아요?

삼남:(고개를 흔들며) 아뇨..... 동방인데요?

경찰: 그렇다면 귀신 잡는다는 동방불패!.... 동사무소 방위 출신이시군요.

삼남:(애써 밝게)예.

경찰: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즉시 소장 님께 말씀 들여 ‘용감한 시민 상’ 을 상신 하도록 하겠습니다.

숙자:(기뻐) 뭐라고요? 그럼 저이가 말로만 듣던 ‘용감한 시민 상’을 탄단 말씀이세요?

민정:(기뻐) 우리 아빠가요?

경찰: 그렇습니다. 이런 장하신 분이 계시는 이상, 이 세상의 범죄는 기필 코 사라질 것입니다. (강도를 보며) 뭐해! 인마! 앞장서지 않고!

강도, 고개를 조아리고 앞장선다.

경찰, 삼남. 숙자. 민정에게 고개를 조아리고 현관문을 나선다.

숙자:(우르르 달려와 안기며) 여보! 자랑스러워요!

민정:(역시 안기며) 저...저 두요!

삼남, 엉겁결에 얼싸 앉고 어쩔 줄 모른다.

- 막 급히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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