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의 유명 영어학원에서 수업을 마친 초등학생들이 집에 가기 위해 학원버스를 타고 있다.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일부 유명 학원은 입학 대기자만도 수백명에 이를 정도로 과외열풍이 뜨겁다.<a href=mailto:join1@chosun.com>/조인원기자 <


서울 강남의 K초등학교 5학년 이모(12)군은 8개의 학원에 다닌다.
영어·국어·컴퓨터·미술·첼로·체육. 의대가 목표여서 수학은 학원
2곳에 다니며 비교한다. 대학교수인 이군의 아버지는 이미 아들의 명문대
진학을 위한 마스터 플랜을 세워놓은 상태다. 1차 목표는 과학고 진학.
이군은 다니는 수학학원에서 또래 중 가장 많이 경시대회에 출전했다.
학원을 전전하다 밤 10시 넘어서 집에 들어오는 이군은 "과학고에
가려면 경시대회 입상 성적이 많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다"고 어른답게 말한다.

초등학생들의 과외열풍이 도(度)를 넘어서고 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초등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겨냥한 사교육에 내몰리고 있다. 명문 중학에
진학하기 위해 치열한 입시경쟁이 벌어졌던 60∼70년대를 무색케 하는
과외 광풍(狂風)이다. 학부모들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기본을 확실히 잡아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당연해 한다.

초등학생을 상대로 한 엘리트 과외 코스도 생겨나고 있다. 명문대에
들어가려면 어려서부터 명문코스를 밟아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일부
유명 학원은 1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이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해 별도의 과외공부를 하는 웃지 못할 일마저 벌어진다.

서울 대치동의 M학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논술 대비
학원이다. 대학입시에서 논술이 합격의 주요 변수로 작용하면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지원자가 몰리다 보니 대기자만 수백명에 이른다.
처음 입학하면 1학기 동안 그 학년에 맞는 책들을 읽게 한 후, 3번의
시험을 거쳐 독해력·작문력·논리력을 점검한 후 반 편성을 한다.
6학년까지 마치면 '감자' '배따라기' 등 한국문학은 물론, '바보
이반이야기' 같은 어지간한 외국문학까지 섭렵한다.

엄청난 사교육비에 학부모들은 허리가 휠 지경이다. 과거엔 과외를
하더라도 부족한 과목 한두 개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국·영·수는
기본이고 줄넘기·멀리뛰기 과외까지 해야 한다.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
김미선(43)씨는 "국·영·수·과학·체육과외를 하는 데 100만원이 넘게
들지만, 주변에 더한 집도 많다"고 했다.

대학 입학을 위한 맞춤식 진학지도를 해주는 입시컨설팅 회사도
생겨났다. 대개는 중·고교생이 고객이지만, 초등학생들의 문의도
빈번하다. K입시컨설턴트사 관계자는 "초등학생 학부모의 상담 전화가
하루 서너 건씩 들어오고, 일부는 직접 찾아와 상담한다"고 말했다.

아예 초등학교 3~6학년 전 과정을 미국 교과서로 가르치는 학원도
호황이다. 학부모 최모(39)씨는 "이런 학원에 다닌다고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엄마들 사이에서 미국 초등학교 교재 얘기가 유행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공부만 염두에 두는 상황에서 인간을 제대로 키우는
인성교육이 먹혀들 자리는 없다. 오로지 입시를 위한 '박제(剝製)화
된' 교육만 존재할 뿐이다. 중계초등학교 이해춘 교감은 "좋은 대학
못가면 실패자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좋은 대학 보내려고 기를
쓰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면서 "교육 욕구는 다양한데 학교는
획일화돼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