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최대 번화가인 타임 스퀘어의 '모건 스탠리' 증권사 본사
1층 객장.
객장 뒤쪽의 조그만 사무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그녀는 전화 통화
중이었다.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상체를 약간 뒤로 젖힌 채
서서 전화를 하는 그녀의 뒤편 책장 한구석에 야구 방망이가 눈에 띈다.
오후 2시가 넘은 시각. 그의 책상 위에는 수프와 샐러드가 놓여 있었다.
그는 "너무 바빠서 점심은 방에서 이렇게 대충 때운다"고 말했다.
김영애(金寧愛·57)씨. 남편의 성(姓)을 따라 미국 월가에서 '영애
초이(Choi·최)'로 통한다. 공식 직함은 이 회사의 부사장(Senior Vice
President).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서도 26년 동안 미국 월가(街·Wall
Street)에서 갖은 풍파를 겪은 프로 냄새가 물씬 배어난다.
보통 마흔살만 넘으면 '퇴물' 취급을 받는 월가에서 50세가 넘는
여성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김씨 역시 나이를 공개하기 전까진
4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젊고 활기에 넘쳤다. 앙코르 인생의 진수를
보여주는 '여장부(女丈夫)'이다.
지난 99년 11월 현재의 모건 스탠리 증권사로 직장을 옮겨 주로
연금·퇴직보험 자산을 운용하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활동 중이다.
그녀가 굴리는 자산 규모는 2억달러(2700억원) 정도. 매년 S&P 500
주가지수 상승률을 앞서는 짭짤한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남들은 은퇴할 나이인 50대 후반에 김씨는 이처럼 왕성하게 활동하며
세계 금융의 중심가를 누비는 비결이 뭘까.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한 덕분이다.
그녀는 매일 밤 9시면 어김없이 잠들어 새벽 5시30분 총알처럼 일어난다.
오전 6시15분 기차를 타고 맨해튼으로 출근하면, 매일 아침 7시30분 회사
리서치 미팅이 기다리고 있다. 1시간 동안 리서치 아이디어 브리핑을
받고 사무실로 내려오면 8시20분. 이 때부터 뉴욕 증시가 개장하는
9시30분까지 월스트리트 저널(미국 경제 전문지)을 샅샅이 훑는다.
긴장된 하루를 보내는 중간에도 꼭 짬을 내서 운동을 한다. 특별한 점심
약속이 없는 날이면 식사 직전 본사 8층 헬스클럽에 가서 1시간씩
체력단련을 한다. 1주일에 한 번은 트레이너로부터 운동 지도를 받는다.
그렇게 운동하면서 체력을 기르고 스트레스를 푼 지 벌써 20년째.
"지난 1년 반 뉴욕증시가 험악해 스트레스가 엄청났지요. 헬스클럽에
다녀오면 낮과 밤이 달라지는 기분입니다."
그녀는 지난 75년 보스턴대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메릴린치 증권사의
리서치 애널리스트(조사분석가)로 월가에 첫발을 디뎠다. 당시에는
메릴린치 애널리스트 100명 중 여자는 5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희귀한
존재였다고 한다. 당시 월가 생활을 함께 시작한 여자 동료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4년 동안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던 그녀는 이후
드렉셀 버남 램버트·페인 웨버·살로먼 스미스 바니로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포트폴리오 매니지먼트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녀는 오후 4시 뉴욕 증시가 폐장하면 4시10분 기차로 쏜살같이 집에
돌아온다. 나이 마흔에 출산한 늦둥이 외동딸(17)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일이 끝난 후 그의 생활에서 1순위는 '딸'이다.
딸이 올해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김 부사장은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것이다. 월가에서 자신의 독립 투자운용회사를 세우겠다는 야무진 꿈을
구체화하는 일이다.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평생 일하겠다는 건강한 정신, 그것이 저를
지탱하는 힘이죠."
( 뉴욕=金載澔특파원 jaeho@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