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산골 마을서 농사. 일흔을 한참 넘어 '집으로'(이정향
감독·4월5일 개봉)를 통해 스크린 데뷔. 그것도 당당한 주연 여배우
역할. 충북 영동의 한 산골마을에서 호두 농사를 짓고 있는 김을분 (77)
할머니의 간략하되 파격적인 이력이다.
최근 열린 영화 시사회가 김을분 할머니에겐 영 어색했다. 난생 처음인
영화 관람. 앞에서 펼쳐지는 자신의 모습과 극중 외손자인
상우(유승호)와의 애틋하고 즐거운 사연들. 그러나 시사회가 끝난 후
간담회에서 할머니는 마이크를 건네는 이 감독의 손을 밀치며
"치워라"라며 수줍어 할 뿐이었다.
김을분 할머니는 영화에서 산골 오지에 홀로 사는 할머니 역을 맡았다.
말 못하는 캐릭터라 대사는 없다. 작년, 이 감독이 집을 찾아갔을 때
할머니는 "못한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아들이 있는데 어렵고
불쌍하게 사는 것처럼 비쳐져서는 곤란하다"며 제작진을 물렸다. 끈질긴
요청을 받고 허락하긴 했지만, 할머니는 촬영 초반 영화에 질렸다.
할머니는 "왜 찍은 장면을 찍고 또 찍고 하느냐"며 힘들어했다고
제작진은 전한다.
김을분 할머니는 날이 추워지면 서울 아들 집으로 올라와 지내다 설을
쇠고 내려가는데 이번엔 시사회로 인해 귀향이 늦어졌다. 할머니는
시사회 날 스태프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밭에 거름 줘야 한다"며
이내 산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