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초등학교 2학년때쯤 분데스리가 바이엘 레버쿠젠의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배우고 있을 무렵. 차두리의 축구여정은 이 팀에서 네 살 때 넣은 자책골로부터 시작한다.앞줄 왼쪽 두번째가 차두리.

차두리(22)의 축구인생은 자살골로 시작한다. 차두리가 처음 축구공을
만진 것은 아버지 차범근씨가 활약했던 독일프로축구 바이엘 레버쿠젠의
유소년 F팀에서다. 6세부터 가입할 수 있었지만 차두리는 네살 때부터
아버지가 훈련하는 시간이면 이 팀에서 공을 차며 놀았다. '자살골
사건'은 이 무렵. 독일 엄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을 잡은 네살짜리
동양 아이가 자기 골대로 엉거주춤 공을 몰고 들어가면서 발생한 것.

◆“엄마, 헬리콥터 사줄 게”

차두리는 10세 때까지 레버쿠젠의 유소년팀에 몸담았다. 정식으로 축구를
배웠다기보다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팀을 찾았다고 하는 게
옳다. 어머니 오은미씨는 "그때만 해도 축구선수로 키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차두리는 "축구를 잘해서 헬리콥터를
사주겠다"고 엄마에게 약속했다. 어린 눈에도 마라도나가
자가용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유럽 초일류 선수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이
멋있게 보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다시 축구를 시작한 것은 울산 현대중학교에서. 중3 때 서울
배재중으로 전학하면서 본격 선수의 길로 접어든다. 배재중·고 시절의
팀동료 홍순학(연세대 4)은 "처음 왔을 때는 지금처럼 덩치가 크지
않았고, 오히려 작은 축에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도 스피드와
체력은 발군이었다.

초등학교시절 독일에서 귀국후 아버지 차범근씨와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차두리.

◆“미워할 수 없는 친구”

친구, 지도교사, 가족들까지 차두리의 성격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모아
칭찬한다. 서글서글하게 붙임성도 좋고 남한테 싫은 소리 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배재중·고 총감독 백현영씨는 "순수하고 착한
아이"라고 표현했고, 친구 홍순학은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친구"라고 했다. 이천수는 차두리의 대학 1년 후배. 하지만 대표팀에서
둘은 아주 친한 사이다. 어머니 오씨는 "두리는 남을 깎아내리거나,
질투를 할 줄 모르는 마음이 예쁜 아이"라며 "아들 문제로 한번도 속을
썩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려대 조민국 감독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데 두리는 초반에 실수하면 너무 쉽게 포기한다"며 악착같은 면이
부족한 것을 단점으로 꼽았다.

◆50% 더 성장할 수 있다

배재중·고 백 감독은 "두리는 늦게 크는 아이였다"며 "고 3이 되니까
힘이 붙기 시작하더라"고 회상했다. 고려대 조 감독은 "유럽무대에서
통할 만한 한국축구의 재목을 꼽으라면 차두리가 단연 첫 손"이라며
"아직 지닌 것의 50%도 채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차두리를 몇 년 전에 발견했으면 훨씬 좋은 선수로
키워놓았을 것"이라고 했다는 얘기와 일맥 상통한다. 조 감독은
"헤딩능력을 더 키우고, 슈팅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는 등 축구에 눈을
뜨게 되면 두리는 엄청난 선수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버지
차범근씨도 "어릴 때부터 공을 만져 감각이나 신체 조건은 좋은 편이니
돌파 등 기술을 익힌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20일 코스타리카전에서 A매치 데뷔골을 뽑아낸 차두리의 경기 모습.

◆아버지보다 잘할 수 있을까?

차두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때문에 축구를
시작했고, 아버지처럼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독일 분데스리가를 호령했던 '갈색폭격기'
차범근은 아들 두리가 축구선수로서는 극복하기 어려운 '벽'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만큼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축구를
그만두려고 하기도 했다는 것이 백 감독의 기억이다. 조 감독도 "대학
1학년 때 피로골절로 1년간 공백기를 가진 적이 있다"면서 "그때가
한창 좋아지려는 시점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다"고 말했다. 어머니
오씨는 "아빠를 욕되게 하지 않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말했다.

●차두리 프로필

△1980년 7월 25일생
△1m83·75㎏
△배재중·고 졸업,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4년
△포지션=포워드
△국가대표 발탁=2001년 10월
△A매치 경력=12경기 1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