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9일 밤 한나라당 상황실에서 대선 개표 중계방송을 보고 있었다.
패색이 짙어진 그때 이미 상황실은 한산했다. 뒤에서 누군가
"4년11개월을 이기고 마지막 한 달을 못버텼다"고 한탄하는 말이
들렸다.

◆ 11월27일 부산 서면 유세장

11월 27일 오후 6시30분. 이회창 후보의 사실상 첫 유세가 부산 서면에서
열렸다. 부산은 그만큼 전략요충이었다. 유세장에는 기자가 보기엔
3000여명의 청중이 모였다. 평소에도 1000여명은 오가는 곳이다.
"부산이 이 정도면…." 기자가 보기에도 썰렁했다. 한나라당 부산
의원들은 "8000명이 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회창 후보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 후보는 당장 "내일 아침 부산 국회의원·시의원을 모아달라"고
지시했다. 다음날 아침 의원들이 모였으나, 왠지 눈도장을 찍으려는
행렬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 후보는 "정말 어렵다. 자기 선거처럼 해
달라. 내가 언제 이런 부탁하는 것 봤느냐"고 호소했다.

◆ 이순신 동상앞 삭발 시도

선거 이틀전 밤 10시쯤 잘 아는 부산 의원의 보좌관이 전화를 걸어왔다.
"영감이 삭발을 하겠다는데…." "뭐? 머리를 왜 깎아?" "노무현
부산 득표율을 30% 아래로 끌어내리기 위해선 전 부산 의원들이 읍소할
수밖에 없다는 거야." "그런다고…."

다음날 이들 부산 의원들은 중앙당 기자실에 보도자료를 돌렸다. 부산
지역의 김진재·김무성 의원 등이 단체삭발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들은 대부분 "뭐하는 짓이냐"는 반응이었다. 결국 김영일 총장이
전화를 걸어 만류,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같은 시점 서울에서도 홍준표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이 12월 18일 서울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삭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홍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홍 의원은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이 정권의 부정부패는 영원히 묻힐
것이라고 눈물로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삭발하지는 못했지만,
벼랑끝에 몰린 한나라당의 모습이었다.

◆ 아침마다 표정 연기

"선거당일 숨은 5%가 모습을 드러낼 테니 두고봐."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선거기간 내내 여론조사에서 크게는 두자리 수, 작게는 3%
포인트 차로 줄곧 뒤지면서도 기자들에게 큰소리를 쳤다. 기자들도
"그럴 수 있다"는 사람들과 "여론조사 안믿는 것이 지는 정당의
공통된 현상"이라는 사람들이 엇갈렸다.

선대위의 전략기획팀장인 정형근 의원은 선거 사흘전 기자들에게 "야,
모르는 소리 마라. 바닥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최소 200만표 차로
이긴다"고 했고, 남경필 대변인은 "내기할래요? 수도권에서만 100만표
차로 이깁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당 대표실에서 서청원 대표를 따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혼자 본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당내 여의도연구소는 매일 서 대표에게 "이기기
어렵다"는 조사결과를 내놓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전략회의에 참석한
서 대표는 둘러싼 기자들에게 "승기를 잡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매일 아침 저렇게 연기하기도 고통스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선거 이틀전인 12월 17일 한나라당은 소란스러웠다. 당 여의도연구소가
처음 "이길 수 있다"는 희망적인 보고를 한 것이었다. "단순지지는
여전히 뒤졌지만 이 후보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 역전될 것"이란
보고였다. 선거 전날인 18일 밤 9시쯤엔 다른 두 곳의 조사에서 모두
2.5% 앞섰다는 보고도 들려왔다.

이날 마지막 유세를 하던 이 후보는 유세 버스 안에서 보고를 받고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5년 전에도
이랬어. 추격하는 분위기여서 시간이 문제라고 그랬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던 한 특보의 모습이 생생하다.

◆ “너, 노무현 첩자아니냐”

한나라당은 TV 및 신문광고, TV연설에서 민주당에 번번이 참패하고
있었다. 그때 열린 당무회의에서 김진재 최고위원이 "우리 당이 업계
35위권의 형편없는 홍보회사를 뽑은 이유가 뭐냐"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다른 당직자들은 홍보를 책임진 모 특보와 관련자들을 향해
"너희들은 노무현이 보낸 첩자 아니냐"고 막말을 하는 험악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선거 종반 "홍보에서 실수를 연발한 홍보회사와 홍보담당자를
채용하도록 이 후보에게 건의한 사람이 다름아닌 이 후보 가족들"이란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이 소문은 진위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한
당직자는 기자에게 "이회창이 아직도 정신 못차렸어"라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 결의를 다졌지만…

한 중진의원은 기자에게 "12월 7일 저녁 S호텔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있었다"고 귀띔을 해줬다. 이 후보가 질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서청원 대표, 김영일 사무총장, 최병렬·
김덕룡·이부영·양정규·김기배 의원 등 선대위 핵심들을 긴급
소집했다. 이 후보가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하자, 참석자들은
"현역의원을 새 정부에 기용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자"고 건의하면서
서로 부둥켜안고 승리를 다짐했다는 것이었다. 이날 김기배 의원이 이
후보의 재산 헌납 얘기를 꺼냈고 이것도 격론 끝에 채택됐다는 얘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 8시. 이 후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발표했다. 이어
의원총회에서도 이 후보가 똑같은 발표를 하며 동의를 구하자 의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한 당직자는 기자들이 듣고 있는데도 "선거
끝났네. 배지(의원)들이 누가 뛰겠어"라고 냉소를 보냈다. 한 중진은
"내가 이 후보를 위해 뛰는 것은 당선되면 내게도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아니겠어?"라고 말했다. 결국 이 회견은 여론조사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채 지나가버렸다.

◆ JP는 어떻게

대선이 중반전으로 접어들 무렵 한 고위당직자는 "내 정말
미치겠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종필(JP) 자민련 총재를 안아야
하는데, 이 후보가 거부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이대로 가면 진단
말이야. 충청도 선거가 되지를 않아…부친상 때 모르는 척 인사를 갔으면
됐잖아"라고 주먹을 허공에 내질렀다. JP는 이 후보 부친상때 문상을
왔는데, 이 후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답례 방문도 하고 전화도 했지만,
JP에겐 하지 않았다.

"JP를 잡아라" "안된다"는 것은 대선기간 내내 한나라당의 최대
논쟁거리였다. 12월 초 경기도 유세를 마친 이 후보가 서청원 대표,
김영일 총장과 같은 승용차에 탔다. 한 사람이 "JP를 만나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 후보는 "그렇게 하자"고 받아들였다. 건의했던 사람은
기자에게 "즉각 JP측에 연락을 했는데, JP가 공개적으로 만나자는
거야"라고 말했다.

12월 10일쯤 이 후보는 선대위 공동의장들과 JP대책을 최종 논의했다.
JP측이 제안한 이 후보와의 양자회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격론이
벌어졌다. 서 대표는 "JP를 잡아야 충청도표가 온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실제 자신의 친척집에서 극비리에 JP를 만나기도 했다. 최병렬
의장도 "충청표는 역시 JP아니냐"며 거들었다. 그러나 JP와 개인적
원한이 심각한 김용환 공동의장은 강력히 반대했다. "JP와 손잡으면
내가 당사앞에 드러눕겠다"는 말도 누군가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후보는 결국 JP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쪽으로 결정했다.

◆ 수도이전 공방

충청권이 노 후보의 수도이전 공약으로도 술렁거렸을 때 이 후보측은
이를 무시했다. 선대위 핵심인사들은 기자에게 "대전에서는 선거 때마다
수도이전을 공약하지 않는 후보가 없다더라"고 식상한 공약(空約)의
재탕쯤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현지에 상주했던 신경식 대선기획단장은
"지역에 가면 '수도가 옮겨오면 좋고, 안오면 다른 혜택이라도 줄 것
아니냐'면서 괜히 한나라당이 반대하지 말라고 하더라"고 고민을
털어놓았다.

열세에 몰린 한나라당은 결국 이를 쟁점화하기로 결정했다. 충청표를
잃겠지만 수도권 표를 얻자는 계산이었다. 마침 노 후보의 입에서
"시끄럽고 돈 안되는 것은 충청도로 보내자"는 말도 나왔다. 최종
결과는 실패로 판정이 난 것 같다. 충청권 참패가 전체 승부를 갈랐기
때문이다. 당시 이종구 특보 등은 수도 이전 쟁점화에 반대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선 후 한나라당 사람들이 기자에게 가장 큰
패인의 하나로 꼽는 것이 바로 이 문제였다.

◆ 한밤의 낭보와 반짝 흥분

선거기간 중 각 언론사는 매일 밤 늦게까지 각 정당에 기자들을 남겨
놓았다. 12월18일밤도 마찬가지였다. 밤 10시쯤 회사로부터 휴대전화가
울렸다. "정몽준이 노무현 지지를 철회한 거 알고 있나?" "그게 무슨
소리…" "빨리 한나라당 반응 보내!"

거의 동시에 한나라당 상황실에선 "만세"소리가 들렸다. TV 자막으로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만세, 이겼다" "야, 맥주사와"라는 등
흥분의 도가니였다. 기자실에서도 "뒤집어지나?"라는 얘기가 오갈
정도였다.

그날 밤 한나라당에는 "우리 지지자들이 안심하고, 투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도
어둡지는 않았다.

선거일인 19일에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졌다. 서청원 대표는 당사 6층
집무실에서 전국 시도지부 선거책임자들에게 일일이 "수고했다"는
전화를 걸었다. 그는 "우리가 확실히 이겼다"고 말했다.

당 선대위 자료분석부에서는 1997년 대선 당시 당선자가 발표된 이후
당선자의 움직임을 미리 알아보기도 했다. 당선 이후를 대비한 것이었다.
그러나 19일 오후6시 TV3사의 출구조사 결과 발표는 한나라당을 일시에
침묵으로 몰아넣었다. 흐느끼는 여성 사무처 요원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한나라당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