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호령했던 무인(武人)이 성큼성큼 나타났다. 고려왕 의종의
등뼈를 꺾어 죽였다는 괴력의 소유자 이의민. 양손에는 쌍도끼를 들었고,
덜그럭거리는 갑옷 소리에 좌중이 숨죽은 듯 고요하다. 이의민 역을 맡은
이덕화는 선 굵은 눈썹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쌍도끼를 휘두른다.
의종의 애첩인 절세미녀 무비(김성령)는 샛노란 궁중의상 차림으로
강렬한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김성령은 이 사극에서 세상 권세의 절정을
누리다가 광인(狂人)의 신분으로 전락하는 여인상을 그리게 된다.
지난 22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KBS 1TV
'무인시대(武人時代)'의 제작발표회는 고려 중기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주인공들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무인시대'는 '태조왕건'과 '제국의
아침'에 이은 KBS의 세번째 고려사 시리즈. '태조왕건'이 고려의
건국을, '제국의 아침'이 고려의 기반 형성과정을 다뤘다면
'무인시대'는 고려중기 정권 다툼을 벌이는 무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무인(군인) 출신의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당시 '금기'처럼
여겨져 기획조차 하지 못했던 사극의 첫 등장이다.
2월 8일부터 매주 토·일요일 밤 9시45분 방영되는 이 드라마는 1년
6개월간 방영되는 총 150부작짜리 작품이다. 주요 연기자 수만 130여명에
달하고, 총 제작비가 300억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규모 TV드라마다.
제작진은 "자칫 군사혁명을 미화할 수 있다는 고민도 많았지만,
고려사라는 '잊혀진' 역사를 과감하게 드라마로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무인시대'는 고려 의종 24년(1170년) 정중부가 무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는 무신정변을 시작으로, 최씨 정권을 탄생시킨 최충헌의
죽음(1219년)까지 50년간을 그린다. 정중부 이의방 이의민 이고 등 이
시대를 풍미했던 무인들의 대결이 박진감있게 살아난다.
'태조왕건'에서 견훤 역을 열연했던 서인석이 이의방 역을, 정중부와
이의민은 각각 김흥기와 이덕화가 맡았다. 이고 역은 '야인시대'에서
'쌍칼'로 사나이 이미지를 굳힌 박준규가 맡았다. 남편의 바람에
맞바람을 피웠다는 이의민의 처 최씨는 정선경이 맡았다.
연출자 윤창범 PD는 "조선조 성리학이 폄하했던
무신들의 시대를 영웅적 서사시로 재해석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