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처음 탈북자를 만났어요. 이리 저리 쫓겨 다니는 비참한
상황에서도 티 없이 순수한 눈동자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북한에서
신음하는 동포들을 위해 제 자신을 던지겠습니다."
지난달 말 한국과 일본에 망명하려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억류 중인
탈북자 80여명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북한 핵문제와 관련, 전세계
언론들은 연일 지면을 할애해 이들의 거취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반도 평화 프로젝트 '엑서더스 21' 대표인
신동철(申東哲·48) 목사가 있다.
지난 18일 로스앤젤레스 중국 총영사관 앞에서 150여명의 재미교포와
미국인을 모아 탈북자 석방과 난민지위 인정을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였던 신 목사는 "오는 23일 서울, 도쿄, 오사카, 밴쿠버 등 11개
도시에서 집회를 개최한 뒤, 올해 안에 전세계 100개 도시로 탈북자
석방 시위를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시위에 단 1명이 참가하더라도 연쇄적,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우리
목소리를 전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 신 목사의 생각이다. 미국
시민권자로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신 목사는 현지에서
파룬궁(法輪功), 티베트 독립운동세력, 중국 민주화운동세력 등과 연대,
힘을 키워가고 있으며 탈북자 문제에 관심을 갖는 각국 NGO들과도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다.
"구약성서에 보면 이스라엘의 기드온이라는 용사가 병사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족 10만 대군을 격파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심야에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흔들며 진격해 적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죠. 제 전략도
마찬가지예요. 제대로 된 조직은 없지만 세계 각지에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또렷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북돋워 주자는
것이죠."
신 목사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몽골 루트의 개척자'로 흔히 불린다.
중국 내 탈북자를 몽골 피난처로 이주시켜 생활 터전을 마련해 주고 다시
한국으로 들여보내는 일을 3년 전부터 해왔기 때문. 그가 개척한
'루트'를 거쳐간 탈북자만 500여명. 이 과정에서 그는 지난 2000년 말
자민우드에서 탈북자 7명과 함께 몽골 국경수비대에 체포돼 1주간 감금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위험한 고비를 숱하게 넘겼죠. 지난 99년에는 '몽골 루트'를 만들기
위해 국경지방을 답사하다가 눈길에 차가 미끄러져 언덕으로
굴러떨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차에 있던 3명 모두 신기하게도 전혀
다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지난 97년부터 소속 교회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탈북자 돕기에 나선 신
목사는 가족의 생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걸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1년에 7개월 정도는 한국, 일본, 동남아시아 각지를 돌아다니며 집에
얼굴도 비치지 못한다.
"세계 각지에서 한푼, 두푼 후원금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그걸로는
탈북자들 돕기에도 빠듯해요. 집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죠.
그래도 부인이 '대의'를 위하는 길이란걸 이해해 주기 때문에 힘이
됩니다."
최근 서울 중국대사관 앞에서 탈북자들의 강제 북송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면서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독일인 인권운동가
풀러첸(45)씨는 신 목사의 절친한 동지. 신 목사 표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총과 총알 같은 사이"다.
"폴러첸씨는 갖가지 아이디어가 참 많아요. 저는 그의 생각을
현실화시키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열정이 대단한 사람이죠. 제가 한국이나 일본에 오면 항상
만나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합니다."
통일이 되고, 탈북자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면 중국인을 위한 인권운동에
나서고 싶다는 신 목사는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따뜻한 관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