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팬들이 적극적인 관객운동에 나섰다. 영화의 배급·마케팅 규모가
점점 커짐에 따라 치열한 경쟁 속에 개봉한 지 1주일도 못 채우고 간판을
내리는 작품들이 허다한 상황에서, 관객들이 직접 '볼 권리'를 찾아
나섰다. '지구를 지켜라' '오세암' 등 작품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극장에서 외면당한 영화들에 대해 영화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재상영을 이뤄내고 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에 대한 관객들의 지지 모임은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과 '프리챌'을 중심으로 10여개가 결성되어
있다. 이 중 왕성한 활동을 하는 '지구
수호단'(cafe.daum.net/savez9)과
'지.지'(www.freechal.com/savejigu)가 힘을 합쳐 25일부터 재상영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2000여명의 서명을 받아낸
이들은 서명운동과 함께 이 작품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홍보활동도 벌이고
있다. 회원수만 500여명이 넘는 '지구수호단'의 운영자
박병우(30·직장인)씨는 "의미 있는 영화들이 제대로 관객과 만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운동에 나섰다"고 밝혔다.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적극 지지해 줘서 너무 고맙다"는 장준환 감독은
"영화가 이른 시일 내에 대량 소비되어 가는 시스템 속에서 관객들이
스스로 볼거리를 지켜내려는 운동이기에 더욱 값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영화 제작사 싸이더스측은 "1~2개 극장에서 1~2주
재상영하는 것도 의미있겠지만, 모스크바영화제 등 국제영화제에서
성과를 거두면 이를 바탕으로 규모를 갖춰 정식 재개봉하려고 한다"며
"관객들의 소중한 요구를 존중해 지지모임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최선의
방도를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채봉의 동화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오세암'의 열혈팬들은 19일부터
6월 1일까지 서울 스카라극장에서 재상영을 성사시켰다. 이 작품은 개봉
첫날부터 하루 1~2회씩만 상영되는 등 편법 상영 끝에 곧 간판을 내리는
불운을 겪었다. 국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결성한
한국애니메이션서포터즈(zzaru.net/~kaf)는 영화 개봉 후 생겨난
'오세암' 동호인 모임들과 연계해 조기종영 반대와 재개봉 요청을
내걸고 현재까지 2500여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서명운동 외에도
방송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소홀히 다뤄지는 점을 감안해 방송국에
탄원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대관 상영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전국 5개 극장에서 재상영 중인 박찬옥 감독의 '질투는 나의 힘'
역시 관객들의 적극적인 지지에 힘을 얻었다. 이 영화의 팬들이 모인
'질투사랑'은 제작사 청년필름에서 홍보를 염두에 두고 참가자를
모집해 결성한 모임이지만, 출범 후 자발적 참여자들이 늘어나면서 현재
회원 수가 400명이 넘었다. 한국 영화는 아니지만 극장 상영을 마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도 열혈팬들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6월 3일부터 서울 씨네큐브와 씨네코아에서 재상영된다.

본격적인 관객운동은 영화 '박하사탕' 상영 이후
'박사모'('박하사탕'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생겨나면서
시작됐다. 이후 '파사모'('파이란'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번사모'('번지점프를 하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생겨났고,
2001년에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 등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흥행에 실패한 네 작품을 재상영하는
프로그램 '와라나고 특별전'이 열리기도 했다.

'파이란을 제작했던 튜브픽처스 황우현 대표는 "'파사모'의 경우
얼마 전 2주년을 맞아 회원들끼리 '파이란'에서 모티브를 얻은 단편을
찍어 상영하기도 했다"며 "코미디 전성시대에 작품성 높은 영화들에
목말라하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활동은 영화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