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정치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에선 한가지다. 변호사를 거쳐 재선 의원에 ‘여권 주류(主流)’ 수식어가 붙은 신기남 (辛基南·51) 의원은 그런 점에서 성공한 정치인이겠고, 34년 노래인생에서 번듯한 곡을 각인시킨 적 없는 그의 형 신기철 (辛基哲·52)씨는 여전히 성공을 꿈꾸는 ‘원로 무명가수’다.
“성격도, 걸어온 길도, 극과 극이었죠.”(아우) “그러니까 친구처럼 지내왔지.”(형) “성량 좋겠다, 격조있는 ‘클래시컬 트로트’ 부르겠다, 히트곡만 내면 되는데….”(아우) “이번 앨범은 완전 ‘띵까띵까’로 갈 걸 그랬어.”(형) “순전히 내 책임이야. 트로트 곡에다 너무 고상한 가사를 붙여줘서 그런 거 아닌가? 하하.”(아우)
신 의원은 지난주 형이 낸 7집 음반 수록곡 대부분을 작사했다. “다른 가수들 가사는 쓸 계획조차 없어요. 형 덕에 저작권료 챙기는 ‘신기철 전속 작사가’라니까요.”(아우) “둘이서 종종 술을 마시는데 둘 다 주량이 제법 되요.”(형) “오죽하면 새 앨범 타이틀 곡이 ‘술이란’이겠어.”(아우)
연년생 형제는 노래 장단 맞추듯 얘기를 이어갔다. 덩치 좋은 중년의 두 사내는 ‘인기 가수’를 향한 욕망과는 여유로운 거리를 둔 듯했다.
“실력이나 정열이 모자란 게 아니거든요. 좋아서 부르는 노래인데, 돈 써가며 홍보할 것도, 유행가 만드는 데 한 맺힌 것도 아니죠.” 신 의원은 ‘형은…’으로 시작해도 좋을 말머리에 ‘우리는…’을 달곤 했다. 신 의원이 “우리는 돈 몇 푼 더 벌기보다 아마추어리즘을 지키려 해요”라고 하자, 기철씨는 “레스토랑·한식당·양복점 별별 장사 다해봤어도, 밤무대 뛴 적은 없잖아. TV·라디오에도 출연해 알아보는 이들도 많아졌고”라고 맞장구쳤다.
기철씨는 유도 국가대표 선수, 신 의원은 태권도 3단으로 운동신경만큼은 통했지만, 형은 늘 바깥일에 관심이 많았다. “집에 들어오면 형제들 모두 책상 앞에 틀어박혀 있어요. 놀아줄 사람이 없으니까 밖으로 돌았죠.”
‘KS’(경기고·서울법대)인 신 의원과 대조적으로, 기철씨는 고교만 6곳을 옮겨 다녔다. 그의 ‘과거’를 듣고 싶었는데, 그는 “옛날 얘기는 안 하고 싶다”고 했다.
“동생 때문에 조바심이나 열등감 느낀 적은 없어요.” 턱을 괸 채 형을 바라보던 신 의원이 말한다. “하고 싶은 사업 다 해보고, 평생 직업(가수) 갖고…. 자유인으로 사는 형이 부럽기 짝이 없다니까요.”
형제는 생의 전기(轉機)마다 서로에게 힘이 됐다. 기철씨가 중앙대 재학 중인 69년 데뷔 이후 음반을 낼 때마다 동생은 노랫말을 댔고, 신 의원이 96년 정계 입문을 두고 고심할 때 형은 적극적으로 찬동했다. “모친(79)께서 장남이 ‘가수 되겠다’고 했을 때 그렇게 기뻐하시더니만, 제가 ‘출마하겠다’고 하자 노발대발하시더라고요.”
한 세월을 별렀을 법한 형에 대해, 동생의 바람은 이랬다. “속 깊고 철학 있고 모두에게 삶의 휴식을 제공할 수 있는 성숙한 가수, 느리게 가더라도 국민가수가 됐으면 해.”
기철씨는 “동생이 더 강단을 보였으면 좋겠고, 속도 내야 할 때 확실히 속도를 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말했다. 신 의원은 “남의 속도 모르고 ‘속도 속도’ 한다”고 농을 쳤고, 둘은 또 소리 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