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기존 학계의 견고한 견해와 다른 학설을 제시한다는 것은, 더구나 그것이 민감하기 짝이 없는 상고사(上古史)에 관련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오래전 고대사 관련 문헌에 나오는 ‘요하(遼河)’의 위치를 밝히기 위한 치밀한 연구 끝에 고조선 시대의 요동(遼東)은 지금의 랴오둥이 아니라 훨씬 서쪽인 난하 동쪽이었다고 결론지었던 적이 있다.
단순한 지리적 고증인 듯했던 이 연구는 고대사의 해석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는데, 한나라 무제에 의해 멸망되고 그 자리에 한사군이 설치됐다는 ‘조선’은 고조선이 아니라 그 변방에 있었던 위만조선에 불과했다는 학설로 발전하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한국사의 청동기시대가 기원전 2500년쯤으로 올라가며 단군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 세워진 분명한 실체를 가진 나라였다는 데 이르면 그 충격의 강도는 대단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윤내현 단국대 교수를 ‘재야사학자’로 잘못 알고 있을 정도로 그의 고대사 연구는 파격적이다. ‘땅만 넓으면 좋은 줄 아느냐’ ‘독재정권의 체제유지에 도움을 준다’는 비판과 매도도 이어졌다. 80년대에는 ‘북한 학설을 유포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정보기관원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그러나 윤 교수 본인의 생각은 여전히 확고하다.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고대사의 문제점을 발견했으며, 세계화가 심화될수록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오랜만에 각주 가득한 학술논문에서 벗어나 짧지만 고뇌 어린 단상들로 채운 이 책은 고대사를 화두로 지금 우리 사회와 인식의 문제점을 짚어보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민족사는 남북이 공유해야 하며, 민족과 문화의 기원을 외부에서 찾는 방식이라든가 역사의 발전과정을 서양에 틀에 맞춰 해석하는 태도는 위험하다는 것. 더 이상 한국사의 ‘분열시대’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통일시대’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 ‘국사 해체론’까지 나오는 이 시점에서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외로우면서도 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