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판 SBS ‘토지’에서 최서희 역에 낙점된 탤런트 김현주는 2001년 MBC 사극 ‘상도’에서 담대한 송도 상인 ‘다녕’ 역을 연기했다. SBS 이종한 PD는 “어리지만 깊이가 있다”고 칭찬했다.

이번엔 김현주다. SBS는 내년에 선보일 대하 드라마 ‘토지’의 여주인공 최서희(崔西姬) 역에 탤런트 김현주를 최근 낙점했다. 대하소설 ‘토지’는 소설가 박경리(朴景利)가 25년 걸려서 완성한 21권짜리 대작이다.

구한말부터 광복 후까지 경남 하동과 만주 용정을 무대로 만석군 최참판댁 사람들의 부침(浮沈)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지고, 동학군·기생·농부·독립군·일경(日警)·밀정 등 인간군상이 책갈피마다 출몰한다. 물결이 만 길 높이로 일어서는 큰 바다처럼 장대한 이 소설의 심장(心臟)에 해당하는 인물이 얼음처럼 서늘한 최참판댁 여자 당주 최서희다.

그녀는 아들에서 아들로 성(姓)과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는 사대부 집안에서 여자의 몸으로 가계를 잇고, 양반의 후손임을 자부하면서도 종과 결혼하며, 악당에게 뺏긴 조상의 토지를 수복하려고 약관의 나이에 땅 투기와 매점매석으로 거부를 축적한다. ‘토지’를 드라마로 빚을 때 승패는 바로 최서희를 어떻게 빚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는다.


'청춘스타' 한혜숙이 역대 첫 번째 '서희'='토지'는 두 번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첫번째 작품은 KBS가 79년 10월부터 80년 12월까지 매주 1회씩 48번에 걸쳐 방영했다. 단막극과 일일극 위주였던 TV 드라마에 '대하 드라마'라는 새 형식을 보탠 작품이다.

사극 ‘춘향전’과 ‘풍운’으로 인기를 모은 한혜숙이 만 스물여덟 살의 나이로 최서희 역을 맡았다. 그녀는 데뷔 9년차의 물오른 톱스타였다. TV가 근엄했던 시절이라 양반 처녀 최서희와 충직한 종 김길상(서인석)의 로맨스는 키스 장면 한번 없이 진행됐다.

79년판 KBS ‘토지’에서 최서희 역을 맡은 한혜숙.



"웃지마, 망가져"=KBS는 87~89년까지 2년6개월간 두 번째 '토지'를 방영했다. 연출을 맡았던 주일청(朱一晴) SBS 방송아카데미 원장은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의 고급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며 "신비감 있는 신인에게 최서희 배역을 맡기기로 하고, 오로지 이 배역을 뽑으려고 두 번이나 탤런트 공채를 했다"고 말했다.

막판까지 주연 물망에 오른 사람은 이미연. 그러나 우연히 최수지가 눈을 치켜뜨는 모습을 본 주 원장이 “이 사람이 서희!”라고 낙점했다. 당시 최수지는 갓 스무 살. 경력이 일천했다. 주 원장은 “서희는 한국 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에 절대로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며 “연기가 서투른 최수지가 초지일관 고고한 모습을 보이게 하려고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웃으면 얼굴이 흐트러지니 웃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2004년판 '서희'는 마음이 따뜻한 여장부=세 번째 서희는 전작(前作)과는 달리 '한국 여인의 상징'이 아니라 '개인' 서희가 될 것 같다.

87년판 KBS ‘토지’에서 최서희 역을 맡은 최수지.

SBS 이종한(李鐘漢) PD는 지난달 하동에서 2004년판 ‘토지’ 초반부 촬영에 돌입했다. 그는 “원작소설이 94년에 완간됐기 때문에 ‘토지’를 1부부터 5부까지 모두 그리는 ‘완성본’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사람들은 흔히 싸늘하게 날 선 젊은 날의 서희만 생각하는데, 나는 남편과 아들이 독립운동을 하면서 고초를 겪는 노년의 서희까지 염두에 두고 배우를 물색했다”고 말했다. 해답이 김현주일까.

“착하디 착한 ‘콩쥐’ 이미지가 강한 배우인데, 서희 역을 감당할 박력이 있겠냐”고 물었더니, 그는 “가슴에 땅을 품은 여장부를 연기할만한 깊이가 있다0”고 정색을 했다. 그는 또 그동안 방송가에 떠돌던 ‘심은하 설’에 대해선 “이제까지 한 번도 심은하를 섭외해본 적이 없다”며 펄쩍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