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판의 영원한 ‘야인’ 김호 감독은 내년부터 숭실대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며 새 축구인생을 연다.

“감독이라는 거 할 짓이 못되지. 하지만 사내가 한번 해볼 만한 일이기도 해.”

프로축구 수원삼성 김호(59) 감독에게 2003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95년 수원삼성의 창단감독으로 부임, 98~99년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고 2001~02년 아시안클럽선수권 우승을 차지하는 등 팀을 최강으로 키워 놓은 그는 후배인 차범근 감독에게 바통을 물려주고 프로 일선에서 물러난다. 그는 내년에 숭실대에 교수로 출강하며 축구팀 총감독도 맡아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생각이다.

김 감독은 요즘 ‘축구 금단현상’에 빠져 있다. 수원삼성에서 9년간 선수들과 함께 숙소생활을 해온 ‘사나이’가 집에서 생활하려니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아침에 하던 일이 없어지니까 스케줄이 안 나와. 미치겠어. 이 나이에 얼굴은 다 팔렸지 어디 극장에를 가겠어. 미래만 보고 달려왔는데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고 바보같이 살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하지만 그는 바보 같은 인생에 대해 강하게 변론한다. “축구는 쟁이정신이 있어야 잘해. 2가지, 3가지를 다 잘할 순 없어. 열아홉에 서울에 와서 40년 동안 축구했고 이제는 축구의 향기를 알 것 같아요.”

수원에 있는 삼성구단 숙소에는 감독방과 선수방이 직접 연결된 마이크가 있다. 김 감독은 9년간 단 한 차례도 이 마이크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에 선수들 눈만 보면 뭘 했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경지’에 오른 순간에 내려오려니 아쉬움도 많이 남는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부산 동래고가 최종학력이다. 고려대와 연세대 파워가 좌지우지한 축구판에서 홀로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에겐 ‘야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그는 “족보 없이 출발해서 허허벌판에서 대표생활을 했다”며 “나는 지금도 혼자”라고 했다.

“협회에 쓴소리를 하는 것도 팬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축구가 잘되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나는 감투 쓸 생각은 없는 사람입니다. 내 능력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요.”

수원삼성 시절 김호 감독 밑에서 코치로 일한 윤성효씨가 숭실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은사인 그에게 ‘도움’을 요청해왔다. 공식 직함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는 ‘총감독’ 자격으로 축구팀을 지도할 예정이다.

최고 프로팀을 지도한 그에게 대학선수들이 눈에 찰까. 그는 “학교에서 학생들과 선수들에게 꿈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선수들에게 프로를 이야기해주고 꿈을 주고 싶어요. 축구도 미쳐야 잘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그는 “미래를 꿈꾸는 학생에게는 후한 성적을 주겠다”고 말했다.

“화려하지 않은 선수를 잘 지도해서 쓰는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는 김 감독은 “화려한 것만 갖고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음지에서 국가대표선수를 육성해보고 싶다”는 말로 축구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애정을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