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으로부터 ‘단 둘이서만 새해를 맞고 보내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 “옐친 시대에는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다면, 푸틴 정권 등장 이후에는 언론의 자유를 빼앗겼다.”
러시아 크렘린궁 출입기자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통렬히 비난하는 책이 5개월째 베스트셀러 목록에 있다. 러시아 일간 경제전문지 코메르상트 소속으로 크렘린궁 출입기자였던 여기자 옐레나 트레구보바(30)가 4년 동안 직접 겪은 경험을 담은 비화(秘話)를 책을 통해 공개하면서 화제를 집중시켰다.
‘한 크렘린 탐구자의 이야기들(Байки кремлевского Диггера)’이란 제목으로 출판된 이 책은 푸틴 대통령의 비정한 인간성 등 숨겨진 얘기들을 거침없이 나열했다. 지난해 11월 출판되자 마자 초판 1만권이 하루 만에 매진되는 등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다. 모스크바 최대 서점인 ‘돔 크니기’에서는 여전히 최고 베스트셀러로 선정돼 있다.
독자들은 그동안 금기시됐던 크렘린궁 내 대통령의 일상사와 언론에 차마 공개하지 못했던 내용들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으며 대리 만족 같은 쾌감을 느끼는 모양이다. 저자 트레구보바는 크렘린궁측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좋지 않은 내용의 기사는 조직적으로 빼고 축소·은폐하는 등 기자들에게 일방적인 충성심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2년 전 크렘린 풀기자단에서 쫓겨났다.
그는 지난 1998년 푸틴 대통령이 국가보안위원회(KGB)의 후신 연방보안국(FSB) 국장 재임시 일본식당에서 단둘이 점심을 했던 일을 상세히 기술했으며, 당시 “그로부터 새해 전날 밤을 단둘이서만 보내고 싶다는 제의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또 푸틴 대통령이 모든 섹스는 변태적이라고 본다”고 말한 것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막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푸틴은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동안 교통사고로 입원한 소년을 문병하면서 동정심 대신 ‘다시는 교통법규를 위반하지 말아야지’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으며, 푸틴이 한 소녀에게 입맞춤을 하려 하자 소녀가 눈물을 글썽인 채 “무서워요”라고 말하며 거부했던 일화도 있다고 공개했다.
그는 공보실측이 푸틴의 매정한 발언에 대한 언론보도를 차단했다고 폭로했다. 이 밖에 외국 여행시엔 ‘친(親)대통령파’와 ‘반(反)대통령파’로 매파와 비둘기파로 기자단을 구분, 식사 때는 충성파들과만 어울렸다고 털어놓고 있다. 트레구보바는 푸틴을 러시아의 모든 독립적 정치 저널리즘을 파괴한 장본인으로 묘사하는 것으로 첫 장을 시작하고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증발된 거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책 출판을 위해 러시아 유력 출판사들과 접촉했지만 모두 위험한 발상이라고 회피했다”며, “책 출판 계획을 알고 신문사에서도 해고했다”고 말했다. “책을 출판하는 순간까지 가족들에게 비밀로 했으며, 신변의 위협보다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침묵한다는 게 더 두려웠다”고 심경을 밝혔다.
크렘린궁측도 이미 책 내용을 파악한 뒤 상당한 불만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출판 자체를 막을 권한이 없어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크렘린궁 공보실측은 푸틴 대통령의 비정한 성격과 개인적 비리 등이 일반인들에게 노출돼 대통령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을 주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트레구보바는 크렘린의 교묘한 언론통제 실상을 폭로하면서 기자들은 극단적으로 비굴하게 아첨하든가, 아니면 영구적인 출입금지를 당하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출판한 아드 마기넴사측은 “이틀 내 수만권이 추가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며 “크렘린궁측도 100부를 구입했으며, 내용에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책들을 발간한 뒤 불이익을 당하는 게 전례였다. 지난 2월 저자의 집 앞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했고, 낯선 사람들로부터 전화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등 저자는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
(모스크바=정병선특파원 bschung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