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예전에 멋진 액션배우셨다면서요?”
‘오박사네 사람들’ ‘순풍산부인과’ ‘쌍둥이네’로 온 국민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웃게 만들었던 코미디의 달인, 오지명. 그가 젊은 시절엔 최고로 잘나가던 액션배우였다!!!!
어머니께서 남긴 유품 속에 ‘사나이 현주소’의 포스터가 들어 있었다. 그가 당당히 피 묻은 주먹을 쥐고 있다. 액션영화 주연배우였던 것, 맞다. 당시 평균 제작비였던 1500만원을 들인 이 영화는 “영양가 있을 때, 즉 ‘박수 칠 때 한 방 크게 하고 떠나야지’라고 꾀(?)를 부렸던 마지막 제작영화였다”는 고백이다. 돈도 좀 벌었다는 이 영화 포스터엔 박노식, 장동휘, 김지미, 최불암, 허장강씨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 잘 보면 이 영화로 데뷔했다는 이대근씨도 있다.
연극, TV, 영화를 아우르며 70년대에 대단한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다 ‘쉬면서 고민과 기다림의 시간’을 4~5년이나 보내야 했던 이 진지한 액션배우를 코미디배우로 옷을 바꿔 입게 한 사람은 작가 김수현씨다. 79년 ‘엄마 아빠 좋아’라는 TV드라마에 그를 캐스팅, 상상 못했던 변신을 시켜주었고 그해 최고 주연남우상까지 받았다.
“무섭다, 그의 말이 곧 법이다, 무데뽀다….” 그를 감싸고 도는 괴상한 소문들이 정말 다 사실이냐고 어렵게 물었다. 진상을 살펴보면 대략 이렇다. 밥 배달이 안 돼서 굶어가며 일하다가 음식 시켜먹자고 소리 좀 지른 것, 후배가 PD 눈 밖에 나서 제명당하게 생겼기에 동료들 동원해 풀게 한 것, 비상시국이라고 방송국 정문에서 명찰 달고 오라기에 그 길로 집으로 그냥 가버렸던 것 등등. 따져보면 남의 일 해결하다가 생긴 문제들이고 그 혜택은 동료들이 받았음에도 뒤에선 무서운 사람으로, 때론 정의의 사도로 그렇게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고 회상한다. 돌이켜 보건대 아니꼬운 꼴 못 보고, 학벌 좋다고 까부는 놈 못 봐주고, 잘 나간다고 기고만장한 PD는 더더욱 못 참았던 유별난 성격 탓에 방송국에서 힘든 일도, 탈도 많았다.
기억에 남는 사람? 고인이 된 추송웅씨를 잊지 못한다. 벌써 30년도 더 전, 추송웅씨가 국립극단 단원으로 막 들어왔을 때, “야 나보다 더 찌그러진 그 얼굴에 사투리까지?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인데 너 연기 하지 마라!!” 하고 두 눈 부릅뜨고 기를 죽였다. 훗날 빨간 피터가 되어 천재적인 연기로 각광받은 그가 85년 방송국으로 찾아와서는 “선배님이랑 한무대에서 대결하고 싶습니다” 하고 부탁을 했단다. 그 자리에서 흔쾌히 수락했는데 그로부터 한 달 뒤 돌연히 그가 세상을 떠났다. “같이 한무대에 섰더라면….” 그것이 참 가슴 아프단다. “지금 생각하면 배우란 건 아무나 되는 건데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싶다.
90년 한창 ‘서울뚝배기’를 하는데 “저놈은 어린 것이 나보다도 더 연기를 잘하네” 싶어 눈여겨봤는데 요즘의 양동근이더란다. 연기하는 게 예사롭지 않고 ‘천생 배우다’라고 생각했던 그애가 지금 활동하는 게 보기에도 그렇게 좋다. 평생을 맺은 인연과 사연의 골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물어보면 물어볼수록 구수한 옛날 이야기보다 더 재밌게 술술 깊이를 더한다.
미국의 ‘코스비 가족’을 뒤집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시트콤의 재미를 모르던 시기에 ‘오박사네 사람들’의 대히트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당선했던 ‘애국시민 노기찬’의 작가 오진홍이 사실은 그였다는 걸 누가 알까.
며칠 전 크랭크 인(촬영 시작)한 영화 ‘까불지마’에서 그가 주연이자 감독인 것은 그래서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최불암, 노주현도 함께 나온다. 멋쟁이 후배 김용건이 어느 날 “형님, 영화 제작하신다면서요?” 하기에 “왜? 떫으냐?” 했단다. 왜 사서 고생이냐는 후배의 마음을 읽었지만 그냥 감독을 하기로 했다.
“왜 꼭 감독을 하셔야 해요?” 나도 같은 질문을 했다. 이런저런 말을 두서없이 마구 섞기에 “그냥 하시고 싶으신 거죠?”라고 허리를 끊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한다. 막 들으면 기분 나쁘지만 ‘까불지마’라는 이 제목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제목인 듯도 하다. 올겨울엔 ‘가슴을 적시는 아저씨 액션’의 바람이 불어주길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글·사진=정승혜 씨네월드 이사·영화칼럼니스트)
▲ 오지명은…
1939년 충북 청원에서 태어났으며 성균관대 경제학과 2학년 때 국립극단에 입단했다. 연극 ‘박꼬지’ ‘이순신’ 등에 출연하다 1966년 최불암씨와 함께 ‘공채를 가장한 특채’ 형식으로 KBS 4기 탤런트가 됐다. 이듬해 반공 드라마 ‘제3지대’에서 연기를 시작하며 탤런트의 길을 걸었다. 1968년 ‘방랑대군’, 70년 ‘번개 같은 사나이’ 등 15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90년대 중반 이후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 ‘순풍산부인과’ 등에서 코믹 연기로 각광받았다. 65세 감독 데뷔작으로 ‘까불지 마’를 촬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