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전(戰) 6대 16, 일본전 0대 53, 캐다나전 0대 27 등 3연속 콜드게임패(敗)…. 대한민국 최초의 국가대표 여자야구팀인 ‘비밀리에’팀이 지난 7월말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여자야구 세계대회에 참가해 거둔 성적이다.
수치만 보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비난 보다 격려가 쏟아지고 있다. ‘비밀리에’ 홈페이지(baseball.gameone.co.kr/BIML)에는 “최선을 다한 모습에 감동받았다”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지난 3월 ‘비밀리에’ 팀을 창단하고 직접 팀을 이끌고 세계대회에 참가했던 안향미(23) 코치 겸 선수는 4일 기자와 만나 “세계 수준과 실력 차이가 워낙 컸다”며 “우리는 오직 야구에 대한 열정으로 경기를 치렀다”고 말했다. 그리고 안 코치는 “세계대회 1승을 목표로 계속 전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21살부터 35살까지 대부분 직장인으로 구성된 ‘비밀리에’는 ‘Baseball Is My Life(야구는 나의 삶)’의 앞 글자인 ‘BIML’에서 따왔다. ‘비밀리에’팀은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된 공식 국가대표팀은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15명의 ‘비밀리에’ 선수들은 사회인야구팀 자격으로, 자비를 들여 이번 대회에 출전한 것이다. 국내에는 여자야구팀이 3~5개 정도에 불과하고 여자야구협회도 없는 형편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출전했지만 안 코치는 3전 전패(全敗) 성적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솔직히 선수들이 주눅이 들었다”고 말했다.
“3월에 창단해 4개월 동안 1주일에 고작 이틀씩 연습했어요. 정말 아무 준비도 못하고 갔습니다. 사실상 초등학교 야구 수준인 저희로서는 큰 기대를 할 수도 없었죠. 첫 출전이라 선수들이 너무 긴장해서 갖고 있던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어요. 야간 경기도 처음이었고요.”
선수들 자체 회비로 운영되는 ‘비밀리에’팀은 이번 세계대회도 글러브 한 개씩, 경기복도 단 한 벌씩만 갖고 갔다. 그래서 온통 흙투성이가 된 유니폼을 미처 빨지 못하고 다음 경기에 입고 나갔다.
일본 타자가 친 직선 타구에 맞아 투수의 오른손 엄지손가락 뼈에 금이 갔지만 붕대를 감고 수비위치만 바꾼채 계속 뛰었다. 안 코치는 “열 명이 참가해 대체선수가 없어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안 코치는 “0대100으로 질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연속 콜드게임으로 지자 선수들 사이 “몰래 귀국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고 일부 선수는 ‘엄청난 점수 차이’에 대해 악이 받쳐 울기도 했다고 한다. 대회 기간 중 국내 언론들은 대부분 ‘1점도 못뽑고 완패’ ‘졸전끝에 대패’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일본 현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우승한 일본팀보다 오히려 ‘비밀리에’팀에 많은 관심과 격려가 쏟아졌다. 안 코치는 “일본 관중은 경기장에서는 물론이고 숙소까지 찾아와 ‘감동했다’며 격려해줬다”고 말했다. 큰 점수차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반한 일본 사회인 여자야구팀에서 대회이후 시합을 갖고 싶다는 의향도 전해들었다고 한다.
국내 네티즌들도 첫 걸음마를 시작한 여자야구팀을 격려했다. ‘비밀리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여러분 땀방울이 자랑스럽다”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 곳도 할 수 없습니다” “선수분이 눈물을 흘리는 것 보고 저도 눈물이 나왔네요. 화이팅!” 등의 글이 수십 건 올라와 있다.
안 코치는 “팀에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고 후원하시겠다는 분도 간혹 있다”고 했다. 입단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이번주쯤 테스트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안 코치는 대한야구협회에 등록된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야구선수다. 경원중과 덕수정보산업고 선수를 거쳤고 지난 1999년엔 여자선수로는 한국 야구 100년 역사상 처음으로 공식경기에 데뷔했다. 고교야구 전국대회 4강전에 투수로 마운드를 밟은 것. 공 3개를 던져 몸에 맞히는 공으로 타자를 출루시켰다.
고교 졸업 후 일본으로 건너가 최근까지 ‘드림윙스’라는 사회인 여자야구팀에서 3루수 겸 투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안 코치는 이번 세계대회 출전을 마치면서 일본에서의 활동을 접고 귀국했다.
이제 ‘비밀리에’팀에 전력을 다할 예정이라고 했다. 안 코치는 마돈나 주연의 영화 ‘그들만의 리그’ 처럼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국내에 여자야구리그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세계대회에서 1승을 거둘 것”이라고 했다.
안 코치는 선수들의 부상 때문에 잠시 휴식기를 가지려고 했지만 선수들의 ‘열정’ 때문에 이번 주부터 다시 모인다고 했다.
“내년 세계대회가 대만이 아닌 미국에서 열리면 참가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참가를 목표로 다시 뛸겁니다. 벌써 선수들이 언제 훈련하냐고 합니다. 다시 살아나고 있죠. 이번주 토요일부터 훈련을 재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