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여울역에서 코믹월드 행사장까지 이어진 노점상.

"꼭 다른 세계에 온 것만 같아요." 지난 2, 3일 이틀간 서울 강남구 대치3동 서울무역전시장에서 열린 만화축제 코믹월드 참석을 위해 대전에서 초등학교 자녀들과 함께 올라온 김현순(40)씨는 말한다.

3일 오전 행사장 인근 지하철 3호선 학여울역은 10대 학생들로 가득 찼다. 지하철역과 제41회 코믹월드가 열리는 행사장까지의 길거리에는 캐릭터 연습장, 피규어(캐릭터모형) 등을 비롯한 간식거리 노점상들이 즐비해 있다. 일요일이라서 오전 10시부터 입장인데도 300여명의 학생이 행사장 앞에 긴 줄을 섰다.

그 중 깜찍한 캐릭터 모자를 쓴 학생에게 코믹월드라는 만화축제에 왜 온 것인지 물었더니 "제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만화가 가득해서요. 더욱 가까이 만화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라고 답했다.

코믹월드는 만화, 애니, 캐릭터 등의 아마추어 종합 만화 행사로서, 동아리 판매전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벤트를 6년째 이어오고 있다. 1999년 5월 1일, 일본기업의 자회사 격인 에스이테크노(주)주최로 처음 시작해 벌써 41회인 코믹월드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 대구에서도 개최되고 있으며, 일본, 홍콩, 대만, 중국 및 북미, 남미, 하와이 등에서도 열려 국제적인 아마추어 만화 축제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만화주인공이 되는 코스프레행사에 참가한 10대 학생들이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코믹월드의 가장 큰 마스코트로 자리잡은 코스프레행사는 10대들의 활발한 참여로 날로 그 화려함을 더해가고 있다. 코스프레란 코스튬플레이라는 단어의 준말로서, 청소년들이 직접 만든 의상과 소품을 이용해 만화 주인공과 똑같은 복장을 차리입고 행사장에 나와 연출하는 것을 말한다.
행사초기때만 해도 행사장 탈의실에서 갈아입고 수줍은채 나오던 코스프레 참가자들은 이제 자신의 집에서부터 만화주인공 복장을 완벽하게 갖추고 행사장까지 오는 당당함을 보인다. 고 1인 유수현(16)학생은 "어른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만 고생해서 만든 만큼 오늘하루 좋아하는 만화주인공이 되고 싶어요"라며 만화 캐릭터 특유의 포즈를 카메라 앞에 취해보인다. 이는 일본에서 시작된 코스프레가 한국 학생들 사이에 완전히 정착했음을 보여줬다.

지난 8월 21일에 열린 40회 코믹월드에는 패션디자이너 앙드레 김이 이 코스프레 행사를 직접 보러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앙드레 김은 40회 행사에서, 비록 학생들이 만드는 옷이지만 만화 속 상상을 현실에서 재현하는 것이라 창의적이고, 신선하기 때문에 코스프레 행사가 열리는 곳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방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죽 늘어선 부스들의 모습. 부스 앞은 전시해놓은 캐릭터 팬시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코스프레보다도 시선을 더 끈 건 사람들 사이사이로 자기 키만한 보드지와 캐릭터 팬시들이 들어있는 가방을 양손에 가득 안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동아리 판매전이다.
동아리 판매전이란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직접 그려 팬시로 만들거나 기존 만화에 자신의 상상력과 위트를 더해 일종의 '패러디 회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다. 코믹월드에 참여하는 동아리는 평균 500여개. 코스프레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즐기기 위한 행사라면 동아리 판매전은 그보다 치열한 아마추어들의 전쟁터였다.

벌써 3년째 코믹월드에 부스를 내서 활동하고 있는 박강인(20·전남 진도)씨는 처음 참가했을 때는 왕복 차비값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판매율이 저조했으나 요즘은 30만~40만원은 거뜬히 벌어내고 있다. 박씨는 "코믹월드에 참가할 때마다 보고 배우는 게 많아 실력이 많이 늘어난다"며, "이곳에 있는 500여개의 부스는 라이벌이자 교사인 셈"이라고 말했다.

동아리 판매전에서 내놓는 500원짜리 캐릭터 팬시들의 모습이다.

팬시제품은 대체로 500원, 회지는 평균적으로 3000~5000원 정도인데 어떻게 이런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것일까. 판매자들이 그만큼 소비층의 선호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팬시제품들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만화를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부스를 낸 박상은씨는 말한다.

그런데 500여개가 넘는 부스에 이러한 수입을 안겨주는 소비자의 대부분이 초중고생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대학생과 일반인도 있지만 특히 초중고생의 수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 초등학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들을 세트로 몽땅 구입하기도 하고, 아마추어 회지만을 골라서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 중학생은 행사에 와서 얼마나 돈을 쓰는가 하는 질문에, "오늘은 얼마 안 썼다. 3만원 정도? 많이 쓸 때는 십만원이 넘어가기도 한다"라고 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과 함께 온 박민호(48)씨는 "행사 때마다 팬시들을 한가득 안고 집에 간다"며, "그래도 용돈을 다른 데 안쓰고 꼬박꼬박 모아서 사는 걸 보면 기특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행사 초기, 대학생이나 프로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이끌었던 코믹월드는 회를 거듭할수록 연령대가 낮아져 행사 6년째를 맞은 올해, 10대 학생들의 비율은 전체 만5000여명 참가자의 80%정도를 차지했다. 또한 행사 참가에 연령제한이 없어 동아리 판매전에 참가하는 10대 학생들도 많다고 관계자는 말했다.
실제로 600여개의 부스 중에 초등생들 몇몇이 모여 팬시를 판매하는 부스도 꽤 있었다. 물론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여타 부스들보다 미숙하고 저조한 판매율을 보이고 있었으나, "남들이 그린 것을 사는 것보다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직접 그리고, 그것을 언니 오빠들이 사갈 때가 행복하다"고 초등학교 5학년 이슬비양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