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군

21일 오전 7시 20분, 서울 청량리의 한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그가 걸어나왔다. 빡빡 깎은 머리, 단추 두 개를 모두 채운 남색 교복 재킷, 회색 조끼, 흰 셔츠에 붉은 넥타이, 회색 바지, 오른쪽 어깨에 가방을 메고 필기구가 꽂힌 왼쪽 가슴 주머니 아래에는 명찰이 반듯하게 매달려 있었다. ‘강의석’.

45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학교(서울 대광고)로부터 예배 선택권 보장을 약속받아냈던 강의석(18·3학년)군은 지난 16일 다시 단식을 시작했다. 그는 “학교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단식 이유를 밝혔다. 인터뷰 요청을 하자 그는 “등교길에 동행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요. 걸어가면서 이야기해도 된다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명함을 건네주자 그는 꾸벅 고개를 숙인 후 멋쩍다는 듯 미소를 한 번 짓고는 이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8시까지 등교해야하거든요. 까딱하면 지각할 것 같아요.” 강군의 집에서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까지는 10여 분이 걸리고, 그곳에서 학교 인근의 지하철 신설동역까지는 두 정거장을 가야한다.

-몸 상태는 어떤가요?
"오늘은 괜찮아요. 견딜만 해요."

-왜 다시 단식을 시작했나요?

“학교가 예배 선택권을 보장해주겠다고 해놓고 제대로 이행해 주지 않고 있어요. 42개 학급 중 32개 학급을 제가 조사해봤어요. 그 중 9학급에서 예배 선택권 보장에 대한 공지와 조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어요. 게다가 몇몇 학급에서는 전달 과정에서 담임 선생님이 예배에 불참하면 기독교 교육 프로그램을 받게 된다, 청소를 해야 한다, 체육선생님과 상담을 해야 한다 등의 말씀을 하셨대요.”

-그래서 다시 굶기 시작한 건가요?“학교를 믿을 수가 없었어요. 전교생에게 방송이나 가정통신문을 통해 예배선택권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들어주지 않았어요. 제가 제적당할 당시에는 제가 학칙을 어긴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전교생에게 방송으로 공지하더니.”

-어제 학교에서 쓰러졌었다면서요? 어떻게 된 거죠?

“교직원회의에서 결정된 예배 선택권 보장 사항을 전교생에게 알리기 위해 등교길 교문 앞에서 후배들과 피켓시위를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교문지도를 하시던 선생님이 오셔서 학교 명예를 상하게 한다며 못하게 하시더니 제 후배들을 조사하겠다며 체육부실로 데리고 가셨어요. 30여 분간 체육부실 앞에서 울면서 ‘다시 생각해 달라’고 외치던 중 순간적으로 힘이 빠지면서 넘어진 후 손발이 마비됐어요. 병원에서는 단식 중에 흥분해서 일시적으로 그런 현상을 보인 거라고 하더라구요.”

-학교 가기 싫죠?

“그런 생각 해 본적 없어요.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선생님들과 평행선을 달려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워요. 우리 학교에서 선구적으로 예배선택권을 보장해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었어요. 안타까워요.”

-교내 예배를 완전히 없애달라고 요구하는 건가요?

“미션스쿨의 특성상 예배를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것, 학생들에게 자율권이 보장됐다는 사실을 알리는데 소극적인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 입학 당시부터 학교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죠?

“그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어요. 입학 당시부터 생각은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줄 몰랐어요. 그런데 찬송가를 안 부르면 음악 점수도 안 주고…. 점수 받아야하니까 싫어도 억지로 불러야 하고….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생각하면서도 막상 행동으로는 못했어요. 나중에는 내 행위를 정당화하기 시작했어요. 한 번 무너지니까 계속 무너지더라구요. 1학년 말에 전교 부회장에 출마하는데 출마 조건 중 교회 나가야한다는 게 있었어요. 교목선생님과 상담했더니 ‘건학 이념을 존중해야 한다. 신앙이 아니라 교양의 측면에서 접하라’고 하시더라구요. 아, 지하철 왔어요.”

등교길의 지하철 1호선은 붐볐다. 강군과 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그를 흘끔흘끔 쳐다봤다. 그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요?

“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고 교회에 나갔어요. 계속해서 저 자신을 합리화시켰어요. 그러다 고3이 된뒤 고민을 많이 했죠. 전교회장이 되고 난 후 후배들에게 항상 ‘맹목적으로 모든 걸 받아들이지 마라’고 말했는데 나 자신을 돌아보니 찬송가, 기도, 이런 것들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더라구요. 행동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어요. 친구들이 괴로워하는 모습, 후배들 모습도 보고 다른 학교에도 이런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종교는 있나요?

“없어요.”

-아버지가 기독교인이라고 들었는데…. 교회 나가라고 안 하세요?

“그런 권유를 하신 적도 있지만 결국은 제 의사를 존중해 주셨어요.”

-기독교인들은 강군을 일컬어 ‘사탄의 아들’이라고도 하던데.

“저는 기독교와 대립하는 게 아니라 종교를 강요하는 현실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는 거예요.”

-왜 이 일을 하나요?

“당면한 현실이 양심과 어긋나는 게 안타까워서요. 옳지 못한 것을 옳지 못하다고 하고 올바른 것을 올바르다고 하기 위해 행동하게 됐어요.”

-단식하고 투쟁하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는 없어요? 수능이 한 달도 채 안 남았는데.

“공부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난 번 단식 때도 밤 새서 공부했어요. 마음이 조급하지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 어? 여기가 무슨 역이죠? 한 정거장 지나버렸네요.”

지각하겠다며 걱정을 하더니 지하철에서 내린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180㎝의 그를 따라잡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건너 편 승강장에 도착해 지하철을 기다리는 그에게 한 할머니가 웃으며 전단지 한 장을 건네줬다. ‘하나님의 자녀되어’라는 문구가 언뜻 눈에 띄었다. 아무 말 없이 전단지를 받아쥐더니 그는 다시 지하철을 탔다. 마음이 급한지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공부는 잘 하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서울대 법대 수시에 지원했다고 들었는데, 결과는 언제 나와요?
"29일이요."

-어떨 것 같아요?
"글쎄요. 7월 8일 이후 출결 사항이 없고 기말고사 성적도 없기 때문에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어요. 서류도 급히 만들어서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고."

-왜 법대에 지원했어요?
"이번 일을 접하면서 법 정신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헌법은 천부인권을 도와주는 거잖아요. 정의의 여신은 저울과 칼을 가지고 있는데 둘이 조화되면 아름다운 정신이 생겨요. 그 정신을 배우고 싶어요."

-법대에 들어가서는 뭘 하고 싶나요?
"판사가 되고 싶어요. 저울과 칼의 헌법정신으로 저 자신을 무장하고 싶어요."

-어딘가와의 인터뷰에서 정치하고 싶다고 했던데?
"원래는 사회복지사가 돼보고 싶기도 했는데 주변에서 과중한 업무에 비해 월급 봉투가 안타깝다는 말을 하더라구요. 사회의 전체적인 틀을 바꾸는데 영향을 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을 가지고 싶어서 정치를 하고 싶은가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이 일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였어요?
"제 별명이 '바보'예요. 모든 사람들을 믿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과정에서 마음이 변하는 게 힘들었어요. 내가 믿음을 가졌는데 배신당하게 된 게 힘들었죠."

-그 사람들이 누군가요?
"학교 선생님들…."

-이번 문제의 해결책은 사립학교에 학생 선발권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귀결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재학중인 학생의 자유가 우선 보장돼야 하고 이후에 대안을 찾아야 해요. 집이 무너지고 있는데 무너지지 않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자는 거지 새로 집 짓자는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취미가 뭐예요?
"음…. 생각하는 것, 그리고 운동 좋아해요. 권투, 농구, 축구…."

-책도 많이 읽나요?
"읽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독서가 취미라고 하면 다들 책은 누구나 읽는다고 하더라구요. 이번 일 관련해서 최근 독일 법학자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읽었어요. 권리, 법 정신, 노력하는 자에 대해 배웠죠."

-지금 마음은 어때요?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얘긴가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과 같은 맥락이에요."

-부모님이 뭐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버지는 사업 준비중이시고 어머니는 약사세요."

-형제 관계는 어떻게 되나요?
"대학생인 누나가 하나 있어요."

-이번 일에 대해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힘이 많이 돼 주세요. 안타까워하시면서도 공감하고, 현실에 동참하세요."

지하철이 신설동역에 정차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우루루 내렸다. 그 틈에 섞여, 그도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발걸음이 빨라졌지만 어조에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엿새째 굶고 있는 사람답지않게 그는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왜 단식이라는 방법을 택했죠?
"나태해지는 나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서요."

-학교 친구들 중 불만 가지는 사람은 없어요? 기독교 신자들도 있을텐데.
"반대 의견 있으면 직접 얘기하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뒤에서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서로 다르기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이 사안에 대해 잘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종교는 강요하는 게 아니에요."

-자신이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라고 생각해요?
"어른, 아이 구분짓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 안 해요. 나는 부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 하면서 운 적 있나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깨어졌을 때…. 너무 힘들어서요. 그리고 어머니 얼굴 보면 울음이 나와요."

-아까 종교가 없다고 했는데, 신을 부정하나요?"
"신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묵가(墨家)적이라고나 할까요? 사람을 무조건 사랑하라는 것을 좋아해요."

-왜 신앙을 가지지 않았나요?
"글쎄….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마음이 가지 않는데."

-대학생 되고 싶죠?
"특별히 대학 가고싶다기보다는 나를 성장시키고 싶어요."

-대학에 가면 가장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책 읽고 싶어요, 닥치는대로. 그리고 여행도 가고 싶어요, 정처 없이."

-지금 가장 부러운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부러운 사람 없어요."

-단식중인데 잠은 잘 자나요? 꿈같은 건 안 꿔요?
"잠은 잘 자는 편인데 어제는 꿈을 꿨어요."

-무슨 꿈?
"지원한 대학에 합격한 이후의 과정인데…. 기억이 잘 안 나요."

-왜 서울대에 지원했어요?
"글쎄요. 서울대 법대랑 다른 학교랑 차이는 크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공부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예배선택권 보장에 대해 반대하는 선생님이 수업 들어오시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공(公)은 공이고 사(私)는 사죠. 수업은 잘 들어요."

-아직도 학생회장인가요?
"아니오. 6월 16일에 '종교의 자유를 달라'는 교내방송한 이후에 자진해서 반납했어요. 학생회 운영진과의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건 학생회장 자격에 미달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공석(空席)입니다."

-이 일을 한다는 게 부담스럽지 않아요?
"전혀요."

교문 앞에 다다라 그에게 “특별히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다. 그는 “꿈은 꾼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지 않으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교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제 편의에 맞춰주셔서 감사하다”며 꾸벅 절을 한 후, 그는 “시간이 다 되었다”며 교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정각 여덟 시였다.

※후기: 강의석군은 22일 오후 12시 40분쯤 미션스쿨 종교자유(http://cafe.daum.net/whdrytkfkd) 까페를 통해 단식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강군은 “오늘부터 학교에서 다시 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선생님들께서 종교 수업시간의 예배 불참에 대한 조사서를 나눠주고, 절차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고 계시다. 선생님들을 믿으며, 앞으로는 수능시험 준비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