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인천항에 정박한 영국 선박의 선원들이 근대 축구를 보급한 이래 1900년대 초 전국적으로 축구 붐이 일었다. 하지만 축구공이 제대로 있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농촌에서 '자급자족(?)'용으로 만든 축구공이 돼지 오줌보다. 돼지 오줌보가 질기다는 데 착안, 안에 바람이나 물을 넣고 마른 논바닥에서 차고 놀았다고 한다. 현재 수원월드컵박물관에 전시중인 돼지 오줌보는 축구자료 수집가 이재형씨가 10여년전 전북 영주의 한 노인에게서 구입한 것이다.

사실 돼지 오줌보는 '세계적인' 축구공이었다. 16세기 영국의 전원시인인 알렉산더 버클리의 작품에 '어른들이 살찐 돼지를 잡고, 아이들은 죽은 돼지의 몸에서 오줌보를 꺼내 가죽이 얇아질 때까지 부풀려 안에 콩을 가득 채우고 발과 손으로 때리고 찼다'는 내용이 실린 점으로 미뤄 당시부터 이미 축구공 대용으로 쓰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돼지 오줌보에 관한 내용은 1800년대 후반까지 유럽의 여러 기록에서도 발견된다.

(스포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