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8일 서울대 농생대 그린바이오 첨단연구단지의 평창 설립 양해각서 체결식에서 정운찬 서울대 총장(왼쪽 두 번째)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이광재 의원(맨 왼쪽).

지난 1월 11일 오후 강원도 평창군 읍내. 칼바람이 몰아치는 을씨년스러운 거리를 플래카드가 온통 뒤덮고 있었다. ‘경축, 꿈★은 이루어진다, 다시 뛰자 2014!’ ‘2014 동계올림픽 대한민국 대표주자, 강원도 평창’ ‘2014 동계올림픽, 반드시 유치합시다’….

'2014 동계올림픽' 플래카드의 홍수 속에 다른 내용의 플래카드도 섞여 있다. '환영, 서울대학교 그린바이오 첨단연구단지 유치 확정' '경축, 2009년 세계 바이애슬론 대회 유치'…. 플래카드 속에서 낯익은 이름도 눈길을 끈다. '이광재 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
인구 5만명이 채 안되는 산골 마을 평창에 내걸린 플래카드들은 최근 평창이 이룩한 성취들을 자축하듯 펄럭이고 있었다.

평창은 2003년 7월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캐나다 밴쿠버에 아쉽게 역전패, 2010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자리를 내주며 분루를 삼킨 바 있다. 하지만 평창은 작년 12월 30일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임시총회에서 전북 무주를 누르고 2014년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선정됨으로써 재도전의 길을 열었다. 2003년의 실패로 낙담에 빠졌던 군민들로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평창에 날아든 낭보는 이것만이 아니다. 평창은 작년 12월 28일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와 그린바이오(green-bio) 첨단연구단지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09년 12월 조성될 이 연구단지는 서울대 1400억원, 강원도 600억원, 평창군 300억원 등 모두 2300억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150만평 부지에 농장ㆍ목장 시설, 연구ㆍ교육 시설과 벤처타운 등이 들어선다.

평창 읍내에 내걸린 플래카드들. 2014 동계올림픽 후보지 선정 등 최근 평창군이 거둔 성과들을 알리고 있다.

연말에 쏟아진 이같은 낭보들은 이미 ‘작은 성취’를 이뤘던 평창을 한껏 고무시켰다. 평창은 작년 9월 불가리아 바르나시에서 열린 국제바이애슬론연맹(IBU) 총회 투표에서 4차까지 가는 접전 끝에 러시아의 칸티만시이스크를 23 대 22로 물리치고 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동계스포츠인 바이애슬론 세계선수권대회(2009년)를 유치했다. 이날 총회에선 2005년 IBU 집행위원회와 2008년 바이애슬론 월드컵대회도 평창이 함께 유치했다.

주민들 “어지럽다” 즐거운 비명

이런 성취들이 평창 군민의 기대감을 부풀리는 것은 당연하다. “산골 마을이 갑자기 주목을 받아 어지럽다”면서도 군민들은 즐거워하고 있다. 장하진 평창읍장은 “이제 ‘강원도의 힘’만으론 부족하고 정부 차원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군민들이 동계스포츠 메카와 관광지로서 평창의 발전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땅값이 다시 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평창 읍내 L부동산중개소의 이모 사장은 “아직 거래는 뜸하지만 땅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일고 있다”며 “2003년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이 실패한 후 요지의 땅값은 절반 가량 폭락했다”고 말했다.

이런 평창의 풍경에 자연스레 덧칠되는 게 ‘실세의 힘’에 대한 군민들의 입담이다. 지난 1월 11일 평창 읍내의 한 다방 난롯가에 모여앉은 사람들은 앞다투어 ‘이광재’를 입에 올렸다. “열린우리당은 좋아하지 않는데 이광재는 다르게 보고 싶네. 젊은 사람이 일을 잘하니….”(식당업을 한다는 50대 이모씨) “실세라고 해서 빈말이다 싶었는데 다르긴 다르데…. 이 의원이 다 하지야 않았겠지만 아무래도 힘 있는 사람이 지역구 의원이 되니 좋은 일이 생기는 게 아닌가벼.”(운수업을 한다는 50대 남자) “두고봐야겠지만 젊은 사람이 금배지 오래 달겠네.”(30대 후반 다방 여 종업원)

군민들은 평창의 성취에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힘이 작용했다고 믿는 것 같았다. 평창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초선인 이 의원의 고향. 이 의원은 평창 초등학교와 정선군의 함백ㆍ예미초등학교, 함백ㆍ원주중학교와 원주고등학교를 나와 연세대학교에 들어갔다. 현재 태백ㆍ영월ㆍ평창ㆍ정선을 지역구로 둔 이 의원은 386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고향인 평창을 비롯, 지역구와 강원도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현해왔다.

사실 평창이 거둔 성취들은 이 의원이 평소 지역구에 공약 사항으로 내건 것이다. 이 의원의 홈페이지(www.yeskj.or.kr) ‘광재의 약속’이라는 코너에 들어가면 공약 1번이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다. 홈페이지에는 ‘동계올림픽의 국내 후보지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평창으로 확정하고, 2007년 IOC총회는 대통령 프로젝트 차원에서 준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2014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2005년 7월까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유치신청서를 제출한 뒤 2006년 1월 1차 후보 도시가 선정되고 2007년 7월 과테말라 IOC총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지역구인 평창이 전북 무주를 누르고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확정됐을 때 이 의원은 지역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구의 공이냐를 따지기보다 지금은 겸손하게 최종 유치를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두고 고민할 단계”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지만 이 의원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강원국회의원협의회 간사를 맡고 있는 이 의원은 작년 11월 주한 외국대사 초청 ‘강원관광발전을 위한 팸투어’를 기획, 35개국 주한대사와 그 가족들을 태백 삼척 영월 평창 정선 등으로 이끌었다. 당시 대사 및 가족들은 “강원도의 관광자원이 세계 유명 관광지와 비교해 손색없다”며 감탄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온두라스·남아공 대사들은 2014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 지원을 위한 강원도 홍보대사를 자원하기도 했다. 이 의원 역시 당시 행사에 대해 “동계올림픽의 메카인 유럽 국가 대사들에게 2014년 동계올림픽 강원도 유치를 위한 당위성을 홍보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동계올림픽 유치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탄광 지역 개발 사업비 확보에도 기여

서울대 농생대의 바이오 연구단지를 유치한 것도 사실상 이 의원의 작품. 이 의원은 작년 8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서울대 농생대 캠퍼스의 평창 유치를 공언했고 4개월여 만에 약속을 지켰다. 당시 이 의원은 서울대 농생대 캠퍼스 유치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 대해 “시장개방으로 위기에 처한 농촌과 농민에게 학계의 연구를 접목시켜 농업 생산물의 부가가치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당시 이 의원은 자신의 유치작업이 여당 실세 의원의 ‘지역구 챙기기’로 비치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며 “실제 이전 추진은 한나라당 소속인 평창군수가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실용주의적 차원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의정활동을 하는 것뿐이라는 의미였다.

지역구에 대한 이같은 작업들이 ‘새로운 의정활동’인지 ‘구태의연한 지역구 챙기기’인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 의원이 지역구의 미래에 대해 정책적으로 신경을 써온 것도 사실이다. 이 의원은 작년 6월 말 ‘백두대간 농업포럼’이라는 연구모임 창립을 주도했는데 이 모임은 강원도 고랭지 농업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게 목표다. 영월 태백 평창 정선 등 4개 시ㆍ군과 기초의원, 농업인 등이 참가하고 있는 이 모임은 지난해 12월 말 1차 임시총회를 열고 올해부터 백두대간 농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반조성과 기술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이 의원의 한 측근은 “올해 이 의원이 가장 신경 쓸 일 중 하나가 백두대간 포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미 평창은 ‘고랭지’라는 지역적 특성을 브랜드화시켜 또 다른 짭짤한 성과를 올린 바 있다. 현재 평창을 상징하는 대외적인 브랜드는 ‘해피(happy) 700’. 해발 700m의 고지대가 사람이 가장 쾌적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고도라는 점에 착안해 이같은 브랜드를 개발, 평창군의 이미지로 삼은 것이다. 이 ‘해피 700’ 브랜드는 작년에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행정자치부에서 선정한 지방자치단체 혁신 우수성공사례로 뽑히기도 했다.

이 의원이 지역구에 ‘힘’을 보여준 사례는 적지 않다. 이 의원은 당선 직후부터 강원도 폐광 지역 경제활성화를 위해 노력했고, 2005년 정부 예산에서 강원도 탄광지역개발사업비를 확보하는 데 적지않은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 강원도는 기획예산처로부터 탄광지역 개발사업비 905억여원을 편성받는 데 당초 요구 수준이 거의 100%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또 대표적인 폐광 지역인 영월군의 경우 폐광 대체산업 투자를 위한 지역투자기획단이 작년 9월 발족했는데 이 역시 이 의원이 주도했다.

이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직후인 작년 7월에는 행정자치부로부터 자신의 지역구 4개 군의 현안사업 해결을 위한 특별교부세 20억원을 따내 지역 언론사나 유지들로부터 ‘역시 이광재’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의원이 앞으로 지역구에 얼마나 더 많은 ‘선물’을 선사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그의 홈페이지에 있는 ‘광재의 약속’에는 ‘강원랜드의 수익구조를 개선하여 지방수입을 늘리겠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연수원을 유치하겠다’ ‘올림픽 타운을 건설하겠다’는 등 장밋빛 약속이 펼쳐져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 의원이 올림픽 재유치를 목표로 강원도에 올림픽 타운을 건설하겠다는 계획. 이 의원은 “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오대산 일대 320만평을 토지공사와 연계하여 콘도 등 숙박 시설, 스키장, 골프장을 갖춘 올림픽 타운을 건설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제는 사업계획서의 싸움”

이 의원은 ‘너무 지역만 챙긴다’는 말을 들을 만큼 주변에 강원도에 대한 의욕적인 청사진을 얘기하고 다닌다. 그의 지론은 “강원도를 ‘아시아의 스위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4계절 관광이 가능한 자연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관광지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양양의 바다, 설악 워터피아, 월정사 등 산사, 용평의 스키, 강원랜드의 카지노를 묶어 패키지 관광상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편다.

이 의원은 지역 개발을 위해서는 이제 단순한 정부 예산 확보가 문제가 아니라 “사업계획서의 싸움”이라는 입장이다. “사업계획서만 확실하면 돈은 세계 어디든지 있다”는 것. 그는 작년 11월 강원일보에 소개된 최현섭 강원대 총장과의 대담에서 “지금까지 강원도 무대접·푸대접 논리는 일면 타당하지만 누구를 탓해서 잘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우리 스스로가 베스트 사업계획서를 냈는데 들어주지 않을 때가 진실한 무대접”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행스러운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내 도(道) 출신 및 연고 의원이 20여명에 달해 힘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달빛극장’서 ‘적과의 동침’?
이명박 서울 시장과 친분 두터운 유인촌씨가 ‘단장’…
이광재 의원도 공연 즐겨

이광재 의원은 작년 12월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추억의 크리스마스를 평창에서…’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이 의원이 권유한 평창에서의 크리스마스 프로그램은 공연 관람. 작년 9월 평창군 봉평에 둥지를 튼 ‘달빛극장’에서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고 자랑했다.

연극인이자 탤런트인 유인촌씨(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가 이끄는 유시어터가 봉평 산골의 폐교를 개조해 만든 ‘달빛극장’은 작년 12월 뮤지컬의 주옥 같은 테마송을 모듬으로 소개하는 콘서트를 열어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전국에서 달빛이 가장 아름다운 고장’으로 평가받는 봉평의 분위기를 살려 공연장인 폐교를 고목과 메밀밭으로 단장, 달빛과 함께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유시어터 대표인 유길촌씨(유인촌씨 형)는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이 봉평의 달빛에 취했었다”며 “입소문이 퍼져 다른 고장에서도 공연장을 찾아 12월 내내 공연이 매진됐었다”고 말했다. 이 의원도 이 공연을 즐겼다고 한다.

호사가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은 유시어터를 이끄는 유인촌씨가 정치적으로는 이광재씨와 대척점에 있다는 점. 유씨는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꼽히는 이명박 서울시장과 친분이 두터운 사이다. 1980년대 후반 자신이 출연한 ‘전원일기’ 팀과 정주영 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정기 모임을 가진 것을 계기로 이 시장과 연을 맺었고 ‘야망의 세월’이라는 드라마에서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 역을 맡으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서울시의 기금을 받아 운영되는 서울문화재단의 초대 대표를 맡은 것도 이 시장과의 친분 때문. 일각에서는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이 시장의 유력한 정책참모 중 한 명으로 유 대표를 꼽는다.

열린우리당의 주요 인사인 이광재 의원으로서는 고향에서 ‘적과의 동침’을 하는 셈이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다. 이 의원은 오히려 ‘달빛극장’ 공연 참가를 권유하는 이메일에서 “3년 전 봉평의 작은 분교에서 밤을 지새워가며 달빛극장을 만들기 위해 유시어터 가족 여러분이 흘린 수없이 많은 땀방울이 이제는 강원도와 대한민국의 명소로 달빛극장을 키웠다”고 치켜세웠다.

이 기사는 주간조선의 허락을 얻어 게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