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초·중·고교 입학식·개학식이 열린 2일, 경기 안양시 비산동 삼성래미안아파트 단지에 사는 샘모루초등학교 졸업생 48명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갈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안양교육청의 중학교 배정원칙에 반발해 배정을 거부했고, 안양교육청도 굽히지 않고 이들을 배정에서 제외해 버렸다. 전례 없는 일이다.

때문에 친구들이 입학식을 하기 위해 학교에 등교하는 이날, 13~14세 여자 어린이 45명은 오전 10시30분쯤 아파트 단지 내 분수대 앞에 모였다. 양로원으로 봉사활동을 가기 위해서다.

걸어서 15분 거리의 '요셉 마리아의 집'에 도착한 이들은 할머니들의 손톱도 깎아주고 어깨도 주물러줬다. 방 청소도 자원했다. 김주영양은 "보람있는 하루인 것 같다"면서도 "학교에 가지 못해 아쉽다"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초등학교 졸업생 48명이 중학교에 입학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전국에서 입학식·개학식이 열린 2일, 경기도 안양의 소녀 48명은 학교에 가지 않고 집 근처 양로원에 봉사활동 하러 갔다. 이들의 부모와 안양교육청이 학교 배정 원칙을 놓고 다투는 바람에 중학교를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a href=mailto:choish@chosun.com><font color=#000000>/ 안양=최순호기자</font><

◆이원화된 학교 배정 원칙

안양동구 학구(學區)에서는 이원화된 원칙에 따라 중학교가 배정된다. '평촌신도시' 거주 초등학생은 집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에 배정된다. 모두 걸어서 등·하교할 수 있는 거리다.

반면 '비(非)평촌 지역' 거주 초등학생은 20~30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관양중(남)·관양여중(여)에 1지망하고, 평촌 내 중학교를 2~9지망해 추첨으로 배정받는다. 관양중·관양여중이 아니면 버스를 타고 40~50분 가거나, 버스노선이 없는 평촌 내 학교로 주로 배정된다는 게 학부모들 주장이다.

1990년대 초 평촌신도시가 건설될 때 입주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도시특별법에 따라 평촌 지역에만 학교배정 특혜를 준 게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었던 비평촌 주민들은 지금까지 이를 감내해 왔다.

하지만 1년여 전 비산동에 3800가구의 삼성래미안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샘모루초등학교가 개교하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학부모들은 "우리도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평촌 내) 중학교로 배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아파트단지에서 가장 가까운 중학교는 760m 떨어져 있다.

◆평촌 주민들의 반발로 사태 악화

안양교육청은 1996년 이원화된 중학교 배정원칙을 단일화하려 했다. 하지만 평촌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해 무산됐다. 평촌에는 정부 과천청사 근무 공무원 등 중산층 이상이 주로 살고 있다.

이후 교육청은 비평촌 지역에 중학교를 더 세워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개교가 늦어져 올해와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 현재 평촌 지역에는 13개 초등학교와 9개 중학교가 있지만, 비평촌 지역에는 12개 초등학교와 2개 중학교가 있다.

◆헌법재판소로 간 사건

학부모들은 이 사건을 헌법재판소로 가져 갔다. 결과는 2주쯤 뒤 나온다. 그때까지 48명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학원강사를 초빙해 인근 교회나 성당에서 위탁수업을 받을 예정이다.

학부모 배영주(38)씨는 "학생들의 통학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잘못된 배정원칙만 고수하는 교육행정이 학부모들을 이렇게 들고일어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교육청 관계자는 "원칙에 따라 배정받은 다른 비평촌 지역 학생들과의 형평성 때문에 샘모루초등학교 학생들에게만 특혜를 줄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