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은 늘 외롭다. 언어가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고, 무엇보다 문화 차이는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러나 생존의 기회를 찾아 이방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우리 스포츠계에도 이런 이방인들이 즐비하고, 우리는 그들을 '용병'이라고 부른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그들의 애환과 바람은 무엇일까.
이 친구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CD를 친지들에게 나눠주었다. 작사 작곡은 물론 혼자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기타에 노래까지 모두 도맡아 녹음한 만능 엔터테이너다. 대학에선 영상 제작을 공부했다. 그러나 현재 그의 직업은 프로 야구팀 투수. 두산 베어스의 맷 랜들이 그 주인공이다. 스물여덟의 나이,'코리안 드림'에 20대 막판의 젊음을 걸었다. 21일 현재 3승1패로 다승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는 랜들을 잠실 구장에서 만났다.
◆ 좌절과 행운
미국 서북부 오레곤주 포틀랜드시 인근의 작은 도시 밴쿠버에서 태어나 리치필드 고교에서 투수로 활약한 랜들은 아이다호주에 있는 루이스&클락 유니버시티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썩 괜찮은 투수였다. 그러나 지난 1997년 2학년을 마치고 그는 개인 사정으로 대학과 야구를 모두 그만둬야 했다.
그후 1년 반, 랜들은 도미노 피자집에서 피자 배달을 하면서 생활을 꾸려갔다. 야구의 희망은 아예 접었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 들었다. 루이스&클락 대학에는 일본 후쿠오카 지역 대학의 야구 선수들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담당자인 이케다 도모타카씨가 랜들의 일본행을 권유했다. 랜들은 야구를 그만둔지 1년 반만에 캐치볼 한번 해보고는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캠프에서 2주를 머물면서 4번의 불펜 피칭을 했다. 2군 고가 감독이 랜들을 점찍었고, 1999년 호크스의 2군에 입단했다.
◆ 두번째 방황
일본 야구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년간 호크스에 몸담았지만 그에게 주어진 1군 무대의 기회는 ⅓이닝이 전부였고, 무엇보다 실력 발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견디기 힘들었다. 설상가상 재계약에 실패, 다시 태평양을 건너면서 야구와는 영원히 '바이 바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간 고향에서 랜들은 문화적 충격을 겪어야 했다. 랜들은 "일본에서 거의 말을 안하고 사는데 익숙해지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도 모든 것이 너무 생소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워싱턴주와 캐나다 국경 인근의 베이커산 기슭에 위치한 벨링햄이라는 산골 마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1년여를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곡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보냈다. 이런 방황의 와중에 그의 머리를 스친 것은 '야구'였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것은 평생 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는 젊은 시절에만 도전할 수 있는 일이다.'
◆ 다시 온 행운과 부상
랜들은 행운아다. 두번이나 야구를 등졌는데도, 그에게 세번째 기회가 주어졌다. 2002년 6월부터 랜들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구해준 텍사스의 독립리그에서 4개월 뛴후. 11월 미야자키에서 열린 요미우리의 가을 캠프에 참석했다. 3주간 불펜 피칭과 웨이트 트레이닝, 러닝 등으로 몸을 만들며 다음 시즌을 준비했다. 태어나서 가장 열심히 야구를 한 시절이었다. 2003년 요미우리 2군팀과 계약을 맺었고, 1군에서 두번 선발로 등판해 1승1패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른손 약지와 새끼 손가락이 저리는 증상이 왔고, 통증과 마비 증세는 팔꿈치까지 올라왔다. 공을 잡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떨어뜨리는 일까지 생겼고, 정밀 검사 결과 어깨부터 팔꿈치에 이르는 부분의 신경계에 이상이 발견됐다. 수술이 불가피했다. 일본에서 수술을 받은 최초의 용병 랜들은 뼈를 깎는 재활 훈련으로 몇달만에 스프링 트레이닝에 합류, 요한 산타나와 마지막 한자리 다툼을 벌인 끝에 1군에 합류했다. 2004년 시즌 전반기 구원 투수로 3승을 거두며 맹활약을 펼치던 랜들은 선발 전업후 부진, 결국 방출됐다.
◆ 한국 야구, 일본 야구
요미우리 시절 팀 동료였고 친한 친구인 개리 레스가 두산 베어스를 떠나며 랜들을 소개했고, 지난 1월 팀에 합류한 랜들은 금방 팀 분위기에 녹아 들었다. 랜들은 "동료들이 나를 진정으로 반겨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며 "선수들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장기 레이스에서는 팀워크가 더욱 중요한데 우리 팀은 정말 분위기가 좋다"고 자랑했다.
일본 야구와 한국 야구의 차이점을 묻자 "이런 말을 하면 화를 내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지낸 2년보다 여기서 보낸 3개월 동안 훨씬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며 "일본 야구 풍토는 이기적이고 냉정한 분위기라 이곳이 훨씬 편안하다"고 말했다. 야구에 관한한 랜들은 한국과 일본의 큰 실력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랜들은 "실력은 아주 엇비슷한데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며 "한국 타자들은 미국식으로 파워를 앞세워 노려치고, 일본 타자들은 스피드와 맞추기에 주력해 다양한 구질을 노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 꿈과 현실
지금까지 네 경기에 등판한 랜들은 "동료들이 너무 잘 쳐줘서 승리를 얻었고, 한 경기를 제외하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캠퍼스 커플로 오래 사귀다 2년전 결혼한 부인 달시와 친지들은 랜들에게 마지막으로 미국 프로 야구에 도전해보길 원한다. 그러나 랜들은 "그동안 경험도, 좌절도 많이 겪었다. 이제 다시 마이너리그부터 시작하기 보다는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싶다"고 말했다.
맵다고 책에서 읽었던 한국 음식도 너무 맛있고 환경도 아주 마음에 들어한다. 여유가 생기면 아내와 고궁도 찾고 한국의 여러 곳을 둘러보겠다는 랜들의 올해 목표는 2세다. 아기를 갖고 싶은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한국에서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물론 부상없이 한 시즌을 소화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데 일조하는 것이 야구 선수로서 최고의 목표지만 '이방인' 랜들의 '코리안 드림'은 야구에서도, 생활에서도 무르익고 있다.
(스포츠조선 체육부 야구팀 부장대우 민훈기)